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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예화] 현실적으로 삽시다


“우리가 모독당하고 있듯이 그리고 어떤 자들이 우리가 그런 말을 한다고 헐뜯고 있듯이 우리는 과연 선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악이라도 행하자는 것입니까? 이런 자들을 심판을 받아 마땅합니다.” (롬 3:8)

레이날드 H. 굳윌은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적당히 열심인 그리스도인이기도 했다.

즉 이치에 합당한 한도 내에서 복음대로 살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그리스도인이었다.

토목기사로서 순조롭게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면 레이날드도 어느 누구 못지않게 자기의 신앙을 충실히 지켜 나갈 태세가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심도 깊은 신학적 토론에 빠져들지는 않았다.

그의 사고 자체는 너무나도 평범하고 실제적이었던 것이다.

근본적인 도덕 원칙 등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예를 들면 세상의 죄악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제시될 경우 그는 당장 “먹혀들어 갈까?” 라고 묻곤 했다.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만이 그의 주 관심사였다.

그가 보는 견지에서는 해결의 방도나 방안는 중요하지 않았다.

추구하는 목적만 달성할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정당한 수단, 방법을 철학적으로 꼬치꼬치 따지고 드는 것은 비현실적인 이론가의 구미에나 맞는 일이라며 공공연히 힐난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어쩌다 도덕 규범에 어긋난다라는 말을 듣기라도 하면 는 손가락질을 하면서 싸울 기세로 덤비며 소리치곤 했다.

“자네도 나처럼 토목 기사가 돼 봐.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탁상 공론할 여유가 없을걸.

처자식도 멱여 살려야지.

어쨌든 실제적이어야 한다고.

기회를 봐서 되어 가는 대로 실리를 추구하며 살아야 해!”

어느 날 밤, 레이날드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어두컴컴하고 한산한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옆에는 음울한 표정의 남자가 검은 옷을 입고 앉아 있었는데 레이날든 그가 사탄임을 금세 알아보았다.

사탄이 싸늘이 웃으며 말했다.

“여보시오, 레이날드.

언젠가는 당신을 이렇게 일대 일로 만나고 싶었소.

오늘 밤 여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술집에서 드디어 당신을 만나고 있으니 기분이 아주 그만이구먼….”

토목 기사는 의외라는 듯 깜짝 놀라 물었다.

“그래요?”

자기처럼 괜찮은 그리스도인에게 사탄이 관심을 가지다니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럼, 그럼! 우린 공통점이 많으니까.

아, 그건 그렇고 나를 그냥 악마라고 부르면 되오.

내 친구들이 다 그렇게 부르니까.”

사탄은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당신과 내가 공통점이 많단 말이오?

아, 악마 양반! 도대체 그 말이 무슨 뜻이오?”

레이날드는 껄끄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상대방이 불쾌하다는 것을 눈치챈 사탄은 그를 안심시키려는 듯 속삭였다.

“아, 별다른 얘기는 아니오. 당신이 본래 실제적이고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오.

당신과 나는 동일한 노선을 취하고 있소.

그러므로 우린 서로의 행동 방식을 이해할 수 있고 그 특징들을 비교 검토하여 배워둘 점도 있을 거요.”

토목 기사는 마음이 좀 놓였고 의기 양양하기까지 했다.

“그래요? 하긴 어떻게 하면 현실에 맞게 실리 위주로 일을 처리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은 늘 염두에 두고 있죠.

더구나 난 그리스도인이니만큼 대화와 협력을 꾀해야 하니까요.”

사탄은 꿀꺽꿀꺽 단숨에 맥주잔을 비웠다.

레이날드가 허심탄회하게 나오자 기분이 퍽 좋은 모양이었다.

“지당한 말이오. 협력과 협조는 밝은 미래를 여는 열쇠요.

그러니 우리 둘 사이를 갈라놓는 것 말고 되도록 일치점을 찾아봅시다.

예를 들면 당신과 내가 함께 협력할 수 있는 방도를 찾아봅시다.

실제적인 사람들답게!”

이쯤해서 사탄은 맥주를 몇 모금 더 마셨다.

레이날드도 따라 마셨다.

이제 레이날드는 사탄과 함께 있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사탄은 계속해서 말했다.

“본래 우리는 목적하는 바가 전혀 다르오.

당신 같은 그리스도인 일당은 영혼 구원이 생의 전부겠지만 우리 반대당(주 하나님께 너무나도 불충실한 반대당)은 영혼들을 지옥에 빠뜨리는 것을 최고의 목적으로 하고 있소.

말 안 해도 다 알고들 있는 얘기겠죠.

하지만 목적은 다를지 몰라도 수단에 있어서만큼은 (친애하는 레이날드, 어떤 일을 하든지간에 수단이 중요한 것 아니오?) 당신과 나는 완벽한 협력을 꾀할 수 있소.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고….”

토목 기사는 신이 나서 말했다.

“물론이오. 결국 수단은 수단일 뿐이니까. 안 그렇소?”

사탄은 비밀스런 음모를 꾸미듯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그렇소. 수단은 수단일 뿐이오.

당신처럼 똑부러진 사람과 함께 일하게 되다니 너무나도 기쁘오.

불행히도 위에 계신 당신의 주 하나님은 언제까지고 목적과 수단을 분명히 구별하지 못하니 답답할 뿐이오.

올바른 목적을 위해서는 올바른 방법만 써야 한다고 고집하니… 어리석고 한심하오.

한마디로 원시적인 사고 방식을 벗어나지 못했소.”

레이날드는 주춤했다.

사실 지금까지 그는 어떤 일이든 수단 방법 가릴 필요 없이 목적한 바를 성취하면 그만이라고 말해 왔었다.

윤리적으로 올바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문제를 놓고 토론하는 것은 할 일 없는 신학자들의 소일거리로만 여겼다.

그런데 막상 악마에게서 직접 하나님은 부도덕한 수단을 반대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여러 가지로 생각이 얽혔다.

레이날드는 머리가 지끈 지끈 아프기 시작했다.

정말 미칠 것 같은 세상이다.

이런 철학적인 토론은 정말 그를 못 견디게 했다.

물론 그는 원칙적으로 주 하나님이 늘 올바르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악마가 하는 이야기도 그다지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었다.

올바른 목적을 달성한다 해서 구태여 올바른 방법만을 고집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좀 석연치 않은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좋은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는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 혼란스럽기만 했다.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 문제는 그렇다 치고 그냥 넘어가기로 하죠.”

레이날드가 얼버무렸다.

레이날드가 어쩔 수 없이 수긍을 하자 사탄은 회심의 미소를 띠며 선심을 쓰듯 말했다.

“양심적인 사람이군! 당장은 좀 의심이 가지만 그래도 주 하나님께 계속해서 충성한다 이 말이오?

좋소. 본받을 점이라 생각하는 바요.

당신 말대로 목적과 수단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는 잊어버립시다.

현실적인 면을 고려하는 것으로 충분하니까.”

토목 기사는 사탄의 그러한 실리적인 접근 방법이 퍽 마음에 들었다.

효율성이야말로 그가 제일로 치는 것이었다.

“바로 그거요. 나의 동업자다운 말씀이군요.

악마 양반, 현실적인 면을 모색하는 것으로 충분하고말고요.

우리가 어떻게하면 지금 이 상황에서 서로 함께 협력하여 서로 다른 목적일지라도 각자 뜻한 바를 성취할 수 있겠는지 말해 보시오.”

레이날드가 타협조로 나오자 사탄은 만족스러워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그렇지만 짐짓 태연함을 가장하고 냉정히 말했다.

“지금 당장은 구체적인 계획안이 없소.

하지만 말이 나온김에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통해 흔히 보고 들을 수 있는 몇 가지 상황을 한 번 가정해 보기로 하죠. 누가 알겠소?

당신이 정말 그러한 상황에 부닥치게 될지 말이오.

어쨌든 그러한 경우에 당신이 당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소.”

토목 기사는 좀이 쑤셨다.

“재밌군요. 악마 양반. 도대체 어떤 문제죠?”

사탄은 백일몽을 꾸기 시작한 사람처럼 최대한 편안한 자세를 취하며 의자 깊숙이 들어앉았다.

잠시 생각에 잠겨 아무 말 없던 사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어떤 미치광이가 시한 폭탄을 설치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몇 시간 안에 분명 그 시한 폭탄은 터져 버리고 말 텐데 아무도 그 시한 폭탄을 정확히 어느 지점에 설치했는지 알수가 없소.

어떻게든 폭탄 설치 장소를 알아내서 폭발하기 전에 얼른 떼어 내어 수십 명의 목숨을 구해야만 하오.

이때 그 미치광이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 방법이든 괜찮다고 생각하오?”

“물론이죠.”

토목 기사가 더 생각해 볼 것도 없다는 듯 딱 잘라 말했다.

“고문을 해도?”

사탄이 재차 물었다.

“고문을 해서라도 알아낼 건 알아내야죠.

무슨 일이든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하니까요.

수십 명의 목숨이 달려 있는데 한 사람쯤 고통당하는 것이 뭐 대순가요?”

토목 기사의 대답이었다.

사탄이 말했다.

“아주 좋소.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바요.

그런데 수많은 도덕군자들은 고문이라는 말만 들어도 헛구역질을 한단 말이오.”

토목 기사는 참기 어렵다는 듯 비꼬아 말했다.

“쳇, 허약한 군상들! 이 세상에 살다 보면 두 손을 더럽힐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죠.”

사탄도 빈정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글쎄 그런 모양이오. 어쨌든 당신과 나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의견 일치를 보고 있소.

자, 이번에는 정치적인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자꾸만 되풀이하여 제기되는 건데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정부가 경제 상황을 (은행의 지불 청구의 쇄도라든지 주식 시장의 시세 폭락 등) 허위 보도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오?”

토목 기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굳은 어조로 딱 잘라 말했다.

“물론 괜찮죠.”

사탄은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소. 그렇다면 이런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오?

이단설을 퍼뜨리고 다니는 종교적인 광신자들을 일소하기 위해 그들을 모두 닥치는 대로 잡아죽일 수도 있소?”

“죽일 수도 있죠.”

레이날드가 호전적으로 말했다.

“나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오.

또 다른 문제인데, 되도록이면 빨리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인구 밀집 지역에 폭탄을 투하하여 겁을 주는 방법은 어떻게 생각하오?”

“꼭 살려 두어야 할 사람을 더 이상 희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면 못할 것도 없죠.”

“그 점 역시 동감이오. 사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리도록 부추긴 것은 바로 나요.

그럼 이건 어떻게 생각하오?

어떤 테러 집단이 열명의 인질을 잡고서 경찰더러 인질을 석방하는 대신 무고한 사람 하나
(순전히 무작위로 고른, 말하자면 전화 번호부를 뒤지든가 하여)를 총살하라고 한다면 당신 같으면 어쩌겠소?”

레이날드는 그 문제를 간단히 생각해 본 다음 아무 꺼리낌도 없이 자신 있게 말했다.

“한 사람은 희생시켜 열 사람을 구한다? 물론 한 사람을 희생시켜야겠죠.”

바로 그 순간 현관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레이날드는 꿈에서 깨어났다.

그는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다.

아주 강한 인상의 결찰 국장이 두 사람의 건장한 경찰을 양 옆에 하나씩 세우고 서 있었다.

“나는 경찰 국장 매스터슨이오. 당신이 레이날드 H.굳윌이오?”

여전히 딱딱한 표정으로 그가 물었다.

“아, 네 그런데요. 제가 맞습니다.

뭐 잘못됐나요. 국장님?

말을 마치자 레이날드는 쥐도 새도 모르게 당장 경찰 본부로 끌려갔다.

어떤 테러 집단이 한두 시간 전 열두 명의 인질을 잡아 놓고서 인질 석방을 조건으로 전화 번호부에서 무작위로 레이날드 H.굳윌이란 이름을 골라내서 총살시키라고 억지를 부린다는 이야기였다.

만일 이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면 한 시간마다 한 명씩 인질을 죽일 것이라고 했다.

이미 두 명의 인질을 끌어다 죽였으며 테러 집단은 한치의 양보도 하려 들지 않는다고 했다.

레이날드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불행한 일이지만 남은 열명의 목숨을 구하려면 한 사람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총살형 집행 대원에 의해 질질 끌려가면서 레이날드는 성수그릇에 빠진 악마처럼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저주를 퍼부었다.

“불공평해! 불공평하다고!”

사형 집행 후, 경찰 국장 매스터슨은 음울한 표정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물론 불공평한 일이오. 굳윌 씨.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소.”

‘영혼에서 샘솟는 아름다운 이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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