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이 공산주의의 종주국으로서 냉전 시대의 양극화 체제를 형성하며 한창 위세를 떨치고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천년을 넘긴 역사적 전통을 가진 러시아 정교회의 뿌리가 쉽사리 뽑힐 리가 없었으나, 그 냉엄한 철의 장막 아래에서도 신실한 기독교인들의 지하 교회가 살아 있었다.
어느 날 교인들이 은밀하고 깊숙한 창고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창고 문을 요란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겁에 질린 교인들은 마침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체념과 함께 단단히 마음을 가다듬고 문을 열어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소련군인 두 명이 기관단총을 들이대고 뛰어들었다.
“꼼짝 말고 손을 들어라! 너희들이 이 곳에서 모인다는 소식을 벌써부터 듣고 있었다. 너희들은 이제 끝장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살기를 원한다면 이 곳을 빠져나가라. 나가는 자는 스스로 기독교인임을 거부한 줄로 알고 살려 주겠다. 그러나 남은 자들은 다 죽을 각오를 하라. 모두 사살하겠다.”
군인들의 이 서슬 푸른 기세에 더러는 일어서서 슬금슬금 빠져나갔다. 하지만 많은 교인들이 요동 없이 담담히 앉아 있었다.
생사의 갈림길에 대한 선택이 끝나고 난 다음, 그 군인들은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이렇게 말했다.
“여러 성도들이여! 용서하십시오. 여러분들이야말로 참 기독교인입니다. 우리 또한 기독교인입니다. 같이 예배를 드리려고 찾아왔는데, 행여 이 안에 비 기독교인이나 첩자가 있을지 몰라서 그들을 내보내기 위해 한 짓이니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 가짜들은 다 나갔으니 안심하며 예배를 드리십시다.”
그리고 그들은 낮은 자세로 무릎을 꿇었다.
순교를 각오하고 그 자리에 남았던 참된 신앙의 사람들은, 뜨거운 감사의 기쁨으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얼싸안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시험과 환난의 강한 바람 앞에서, 알곡과 쭉정이는 서로 구별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증명한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