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햇볕3149] 노동과 고행


우리의 영혼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을 이신득의(以信得義)교리라고 하는데, 우리의 구원은 조건 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주이진 것이다. 맞습니다. 맞고요.

맞기는 맞는데, 오해하고 있는 것이 한가지 있어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육체’까지 모두 ‘구원’을 얻는 줄로 착각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육체의 행위는 믿기 전이나 믿은 후나 개차반 – 별로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육체’는 선정적인 영화 포스터만 봐도 뭐가 불끈 일어서고, 이쁜 여자들만 봐도 눈이 돌아가고, 누가 돈 좀 벌었다고 하면 그것이 옳은 방법인지 그른 방법인지를 따지지 않고 나도 좀 벌자 하면서 투기에 뛰어듭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예수를 믿으니 틀림없이 구원받아 천국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죄가 가득 차 있는 죄 주머니인 육체를 깨끗하게 비우지 않으면 영혼은 구원을 얻었을지 몰라도 ‘육체’의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옛날부터 육체를 비우는 방법으로 ‘고행(苦行:몸을 힘들게 하는 것)’이 행해졌습니다.

한 때 그 고행이 너무 지나쳐 거부감을 갖게 되었고, 요즘에는 육체의 고행이 ‘노동’으로 바뀌었습니다.

고행(노동)이 없는 기독교는 속 빈 강정입니다.

요즘 여기저기에서 ‘영성’이라는 말을 유행처럼 많이 사용하는데 고행(노동)이 빠진 ‘영성’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말 장난에 불과합니다. 이전에는 영성생활이란 ‘기도는 노동이다’라는 의미였습니다.

관련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