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매미의 노래는 짧다 — 한여름 오후에 배우는 시간의 신학


여름의 오후는 매미의 소리로 채워진다. 창을 조금 열어 두면 방 안까지 그 울음이 밀려들어오고, 나는 잠시 손을 멈추고 그 소리 안에 앉는다. 매미는 한여름의 절정을 노래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 생의 마지막을 부르고 있다. 오랜 유충의 시간을 흙 속에서 보낸 뒤, 마침내 지상으로 올라와 노래하는 시간이 고작 며칠에서 몇 주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그 울음이 조금 다르게 들렸다. 유난히 뜨겁게 부르는 것은, 유난히 짧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매미의 소음을 자주 불평한다. 창문 너머 나뭇가지에서 울려 퍼지는 그 소리를 도시의 방해물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짧은 생의 마지막 주간을 나무 위에서 목이 쉬도록 부르는 존재를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소음은 다른 이름을 얻는다. 그것은 절박한 예배 같기도 하고,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을 남기고 가려는 필사적인 문장 같기도 하다. 시편의 말씀이 문득 떠오른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매미는 자기 날을 계수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힘껏 부른다. 어쩌면 그것이 계수의 가장 정직한 방식일지 모른다.

여름의 나뭇잎은 유난히 진하다. 봄의 잎은 아직 옅고 부드럽지만, 여름의 잎은 짙은 초록으로 두꺼워지고 잎맥이 뚜렷해진다. 햇빛을 오래 견뎌 온 잎만이 그런 색을 낸다. 그리고 매미는 그런 잎 뒤에 붙어 운다. 잎이 만들어 준 그늘 아래에서, 자기가 만든 소리로 여름의 공기를 진동시킨다. 나무는 매미의 노래를 지지대처럼 붙들고, 매미는 나무의 그늘 아래에서 잠깐의 생을 마친다. 여름의 오후는 그 두 존재의 짧은 계약으로 흘러간다. 우리가 알아채든 알아채지 못하든, 세상은 그렇게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 주며 유지된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 시편 90:12

날을 계수한다는 것은 남은 날짜를 세는 일이 아니다. 그 말씀은 오히려 오늘이라는 하루가 얼마나 짧고 귀한지 알아채는 감각을 가르쳐 달라는 기도다. 어떤 사람은 여든까지 살고 어떤 사람은 사십에 세상을 떠난다. 매미는 며칠 노래하고 어떤 새는 몇 계절을 지저귄다. 시간을 정하는 것은 우리 몫이 아니다. 우리 몫은 다만 오늘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태도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오늘을 자주 낭비한다. 낭비하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낭비하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계획을 세우다가 오후가 저물고, 준비하다가 여름이 지나간다.

어느 해 여름, 나는 부산의 어느 뒷골목에서 죽은 매미를 밟을 뻔했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몸이 아스팔트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배가 위를 향해 뒤집힌 채였고, 다리는 조금 안쪽으로 오므라들어 있었다. 그 매미가 노래하던 며칠 전 오후를, 나는 아마 창문을 닫으며 지나갔을 것이다. 소음이라고 여겼던 그 소리는 어쩌면 어떤 존재의 마지막 예배였을지 모른다. 이후로 매미의 울음을 들으면 나는 창문을 조금 더 오래 열어 두게 되었다. 그 소리 안에 어떤 부탁이 담겨 있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안에 있는 힘껏 살아 달라는, 짧으니까 더 온전하라는 부탁.

여름은 늘 우리를 조급하게 만든다. 무언가를 놓치지 않으려고 여기저기 다니고, 인생의 절정처럼 착각하며 소비한다. 그러나 사실 여름의 본질은 절정이 아니라 지속이다. 뜨거움이 오래가는 것, 그 뜨거움을 견디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도 잎을 잃지 않는 것. 매미는 그 여름의 한복판에서 자기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을 소리로 채운다. 짧지만 완결된 여름을 하나 살아 낸 것이다. 우리도 그런 여름을 원한다. 길이보다 밀도로 기억되는 계절, 남에게 자랑할 만한 사건이 없어도 자기 안에서 온전했던 하루하루의 총합.

어떤 여름의 오후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럴 때 나는 오히려 창문을 열고 매미의 노래를 오래 듣는다. 아무 일도 없다는 사실이 사실은 특별한 축복임을 깨닫는 시간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이루라고 재촉하시기 전에, 우리 옆에 앉아 이 조용한 오후를 함께 보내고 계신다는 감각. 그 감각은 이력서에 쓸 수 없지만, 실은 우리를 가장 오래 지탱하는 힘이다. 시간을 계수한다는 것은 결국 이런 감각을 회복하는 일이다.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세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밀도 높은지 알아채는 일.

어린 시절,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 우리 마을 아이들은 매미채를 들고 뒷산에 올랐다. 손잡이가 긴 잠자리채에 헝겊 자루를 매단 것이었다. 우리는 나무 아래에서 매미를 잡으려고 조용히 다가갔다가, 발밑에서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순간 매미가 날아가면 다 같이 아쉬워했다. 그때는 매미가 얼마나 짧은 생을 살고 있는지 몰랐다. 그저 여름의 놀이 상대였을 뿐이다. 이제 어른이 되어 매미의 시간을 알고 나니, 어릴 적 잡았던 그 몇 마리가 마음에 남는다. 그들은 나에게 짧은 여름의 노래를 잠깐 나눠 준 것이었다.

여름의 시간은 참 이상하다. 밝은 낮이 길어서 시간이 넉넉해 보이는데, 정작 뒤돌아보면 여름은 늘 짧게 지나가 있다. 아이스크림이 다 녹기 전에 먹어야 했던 유년의 그 조바심과, 여름 저녁 물기 어린 창문 앞에서 느끼는 어떤 아쉬움은 아마 같은 마음일 것이다. 시간은 우리에게 주어지지만, 우리는 그 시간을 만들지 못한다. 다만 어떻게 대할지를 정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대함의 방식이 우리의 여름을, 우리의 인생을 결정한다.

땅속에서 매미가 보낸 유충의 시간은 짧게는 삼 년, 길게는 십칠 년이라고 한다. 지상의 며칠을 위해 그토록 오랜 시간을 어둠 속에서 기다리는 존재를 상상해 보면, 마음이 이상하게 조용해진다.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오늘의 노래처럼 짧아 보이는 하루 뒤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오래 준비하신 어떤 시간이 겹쳐져 있다. 지상에 오르기 전 우리는 오랜 흙 속을 지나왔다. 부모의 기도 속, 스승의 손길 속, 알지 못하는 이들의 격려 속을 통과해 이 자리에 서 있다. 그 모든 시간이 오늘의 노래 안에 녹아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싶다.

여름의 저녁이 되면 나무 아래에는 유난히 많은 매미의 흔적이 떨어져 있다. 껍질만 남긴 채 자기 몸을 벗고 날아간 자국들이다. 유충에서 성충으로 넘어오는 그 짧은 변태의 순간, 매미는 자기 껍질을 남겨 두고 떠난다. 남겨진 껍질은 놀랍도록 정교하다. 눈, 다리, 등의 무늬가 그대로 남아 있다. 옛것을 남기고 새것으로 넘어가는 그 자연의 방식이 나에게는 늘 어떤 신학처럼 보인다. 우리의 옛사람도 그렇게 껍질로 남는다면, 오늘 우리는 조금 더 가볍게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매미가 노래를 마치고 나면 여름도 서서히 물러간다. 처서가 지나고 밤바람이 서늘해지면 매미 소리는 잦아들고, 그 자리를 귀뚜라미가 이어받는다. 노래하는 존재는 바뀌지만 노래는 끊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시간은 그렇게 이어달리기처럼 흘러간다. 나의 여름이 끝나도 누군가의 가을이 시작되고,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 주며 살아간다. 매미의 노래가 잦아드는 저녁, 창문 앞에서 나는 조용히 감사한다. 짧은 노래를 온전히 부른 존재들 덕분에, 나의 하루도 한 곡의 짧은 노래로 완성되었다고. 오늘 저녁의 한 곡이 부끄럽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것이 여름의 오후가 나에게 가르쳐 준 시간의 신학이다.

매미는 몰라도 매미의 노래는 안다. 우리 삶의 모든 노력이 마지막에 남기는 것도 결국 소리 같은 것 아닐까. 누군가의 창가에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소리, 그러나 사라지기 전에 어떤 마음을 잠시 흔들었던 소리. 오늘의 나의 하루가 그런 소리로 남기를 바란다. 시끄럽지 않되 분명하게, 짧되 진심으로. 하나님께서 나의 짧은 노래를 오랜 여름의 한복판에서 들어 주시는 이 시간이, 어떤 계산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은혜라는 것을 안다. 여름은 아직 남아 있고, 매미의 노래도 몇 주는 더 이어질 것이다. 그동안 나는 창문을 조금 더 자주 열어 두고, 소음이 아닌 노래로 이 계절을 듣기로 한다. 시간을 계수하는 지혜가 어쩌면 그 소박한 창가의 태도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나의 노래가 완벽하지 않아도, 짧아도, 어쩌면 흔들려도 괜찮다. 다만 나의 나무 위에서, 나에게 주어진 나뭇잎 아래에서, 있는 힘껏 부르기로 한다. 그것이 매미가 나에게 가르쳐 준 여름의 시학이고, 어쩌면 여름의 신학이다.

관련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