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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오후 골목길 작은 카페 창가에 부드럽게 내려앉는 햇살의 결 — 시편 19편 1절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한 줄


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오후, 동네 골목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가 익숙한 작은 카페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늘 같은 자리에 같은 모양으로 서 있는 카페였지만, 그날의 햇살은 어쩐 일인지 길 건너편 건물의 흰 벽을 한 번 부드럽게 매만지고는, 그 반사로 카페 창문 안쪽까지 비스듬히 닿아 있었습니다. 빛의 결은 한낮의 가장 뜨거운 시간을 지나, 늦은 오후의 결로 막 바뀌어 가는 중이었고, 그 미세한 변화가 창가의 마호가니 빛 테이블 위에 작은 무늬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미 익숙한 원두 향이 가장 먼저 손등을 스쳐 갔습니다. 사장님은 오랜만에 보는 손님이라며 잠시 눈인사를 보내셨고, 저는 늘 앉던 창가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았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햇살이 책상 위에 펴 놓은 공책의 한 모서리를 천천히 따라 흐르고 있었습니다. 한 줄, 두 줄, 손가락 한 마디씩 빛이 움직이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이 시간이 어쩌면 오늘 하루 중 가장 정직한 시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월 카페 창가 햇살과 커피 한 잔
카페 창가에 비스듬히 닿는 늦은 오후의 햇살.

오월의 마지막 주가 되면, 도시는 늘 어딘가 한 호흡을 가다듬는 듯한 분위기를 띱니다. 학기말 시험이 다가오는 학생들의 발걸음은 조금 더 빨라지고, 사무실 안에서는 한 분기의 정리가 다가오는 회의들이 이어지며, 거리에는 결혼식 청첩장과 어린이날 끝자락의 가족 외출이 함께 섞여 흘러갑니다. 그 한복판에서 한 잔의 커피 앞에 앉아 햇살의 결을 바라본다는 것은, 사실은 아주 작은 사치이자 동시에 아주 작은 묵상이 됩니다. 멈추어 본다는 것은 단지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는다는 의미를 넘어, 흘러가는 모든 것 위에 잠시 손을 얹어 보는 일에 가깝습니다.

창가에 닿은 햇살을 보며 시편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 시편 19편 1절

늘 같은 자리에 떠 있는 해, 늘 같은 결을 따라 움직이는 빛. 어쩌면 우리가 가장 자주 마주치면서도 가장 쉽게 잊고 사는 신비가 바로 ‘매일의 하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편 기자는 별과 해와 달이 사람의 언어 없이도 “하나님이 하신 일을 나타낸다”고 노래했습니다. 카페 창가에 비스듬히 내려앉은 한 줄의 빛 역시, 누군가가 마이크 앞에서 설교하는 음성처럼 큰 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그 자체로 한 편의 작은 강해가 되어 다가왔습니다.

아메리카노가 도착했습니다. 김이 가늘게 피어오르며 잔의 가장자리를 한 번 두드리고는, 햇살이 닿은 자리 쪽으로 천천히 흘러갔습니다. 그 김의 결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니, 책상 위에 놓아 둔 공책의 첫 줄에는 아직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가끔은 무엇을 적어야 할지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이 한꺼번에 떠올라서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날이 있습니다. 그날의 카페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한 주의 일정이 가득 차 있었고, 한 달의 마무리가 어깨에 얹혀 있었으며, 그 위로 다음 달의 일정이 미리부터 손짓하고 있었습니다.

오후 카페 내부 따뜻한 햇살의 결
오후 카페 내부에 천천히 번지는 따뜻한 빛의 결.

그런 자리에서는 거창한 결심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오히려 가장 도움이 된 것은, 창가의 햇살이 바뀌어 가는 한 시간 동안 ‘그저 빛의 결을 따라 시선이 흐르도록 두는 일’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빛은 공책의 절반쯤을 지나가고, 어느 순간에는 잔의 손잡이 옆을 천천히 감싸 안고 있었습니다. 그 작은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면, 어떻게든 풀어야 할 것 같았던 어떤 매듭이 사실은 ‘오늘 안에 다 풀지 않아도 되는 매듭’이었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곤 합니다.

사도행전 17장 28절은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한다”라고 적어 두었습니다. 너무 익숙한 구절이지만, 오월 마지막 주 금요일의 카페 창가에서 다시 읽으니, 햇살 한 줄의 ‘움직임’과 ‘존재’ 모두가 우리의 호흡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손 안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햇살의 방향을 정할 수 없고, 우리의 의지로 한 시간을 늘리거나 줄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잠시 멈추어 보는 일, 한 잔의 커피를 천천히 마시는 일, 빛이 움직이는 결을 따라 마음을 한 번 쓸어내려 보는 일은 우리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윽고 햇살이 카페 창가의 끝자락까지 닿았을 때, 공책의 첫 줄에 비로소 짧은 문장을 적었습니다. ‘오늘은 다 풀지 못해도 괜찮다.’ 그 한 줄은 그 자체로 이미 한 편의 기도 같았습니다. 무엇인가를 해결하기 위한 결심이라기보다는, 오늘 하루의 한계를 다시 인정하는 자리에서 출발하는 작은 고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백이 적힌 그 자리에 다시 햇살이 잠시 내려앉아, 마치 “그래도 괜찮다”라고 한 줄 한 줄 따라 쓰는 것 같았습니다.

한 잔의 커피와 창가의 부드러운 햇살
한 잔의 커피 위로 흐르는 햇살, 잠시 멈춰 본 시간.

카페를 나서며 다시 길 건너편의 흰 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벽은 오늘 오후 내내 카페 창문으로 햇살을 한 번 더 보내 준 ‘이름 없는 협력자’였습니다. 시편 19편의 첫 구절처럼, 그 벽 또한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빛을 반사해 주는 일을 잠잠히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하루도 그 벽 같은 자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빛이라고 자처할 수는 없지만, 우리 자리에서 누군가의 창문 안쪽으로 햇살의 결을 한 번 더 비추어 줄 수는 있습니다.

골목길에는 그날따라 작은 화분을 내어 놓은 가게가 평소보다 한두 군데 더 있었습니다. 한 가게는 손으로 그린 작은 표지판을 의자 옆에 세워 두었고, 그 표지판에는 ‘오늘은 햇살이 좋습니다, 한 잔 쉬어 가세요’라는 한 줄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한 줄을 보면서, 결국 오월의 마지막 금요일 오후가 우리에게 권한 것은 거창한 휴식이 아니라 이런 작은 ‘쉬어 가세요’의 음성이라는 사실이 새삼 다가왔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그리고 곁에서 함께 걷고 있는 가족과 동료에게도 같은 음성을 한 번씩 건네 보아야겠다는 마음이 천천히 자리 잡았습니다.

골목길을 따라 다시 걸음을 옮기며, 오월의 마지막 금요일 오후가 그대로 등 뒤로 흘러가도록 두었습니다. 카페 안에서 흘러간 그 한 시간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햇살의 결 위에 잠시 손을 얹어 본 그 시간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단지 흘러간 시간이 아니라 ‘한 줄 적힌 하루’가 되어 다음 한 주를 향해 천천히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 줄 위로, 시편의 노래는 오늘도 여전히 하늘에서 한 번, 거리에서 한 번, 카페의 창가에서 한 번 더 조용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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