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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토요일 새벽, 시편 121편을 다시 읽으며 — 산을 향하여 눈을 드는 자리

sangkist

오월 둘째 토요일 새벽 네 시 반, 부엌의 등을 가장 어둡게 해 두고 식탁에 앉습니다. 어제 어버이날에 받은 카네이션 한 송이가 아직 식탁 한쪽에 놓여 있고, 그 옆으로 펼쳐 둔 성경의 책장이 환기창에서 새어 들어오는 바람에 살짝 들립니다. 오늘 본문은 시편 121편. 짧은 여덟 절이 주말 새벽의 마음을 한 번 더 아래로 내려앉게 합니다. 내일이면 주일이고, 다음 한 주가 또다시 시작됩니다. 그 길목에서 시편의 한 순례자와 함께, 산을 향해 눈을 들어 봅니다.

새벽 산 위로 떠오르는 첫 빛
새벽 산 위로 떠오르는 첫 빛 — 시편 121편 묵상의 자리

새벽 네 시 반, 식탁 앞에서 듣는 첫 음성

시편 121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를 가진 열다섯 편의 노래(120~134편) 가운데 두 번째입니다. 예루살렘으로 절기를 지키러 올라가던 순례자들이 길에서 부르던 노래로 전해지지요. 1절의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는 질문이면서, 동시에 결단입니다. 위협이 도사리는 산길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대신 시선의 방향을 정하겠다는 결단.

오늘 새벽, 분당 정자동에 사는 김은주 자매(43)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 “선생님, 다음 주 화요일에 둘째 학교 상담이 잡혔어요. 또 무슨 말을 들을지 벌써 잠이 안 와요.” 자매는 중1 아들의 등교 거부 문제로 6개월째 씨름 중입니다. 토요일 이른 시간 메시지에는 잠을 잃은 마음이 그대로 묻어 있었습니다. 산이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산을 향해 눈을 든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우리는 이런 짧은 카톡에서 다시 만집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121:1-2, 개역개정)

질문이 답을 끌어내는 순서가 중요합니다. 도움을 먼저 구하고 나서 산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산을 향해 눈을 들고 그 다음에 도움의 출처를 묻는 순서. 시선을 들어야 답이 보이는 자리가 분명히 있습니다. 새벽 식탁 위에서 우리가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어쩌면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살짝 드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흔들리지 않게 하시는 분 — 본문의 구조 따라가기

시편 121편은 여덟 절짜리 짧은 노래지만 매우 정교한 구조를 가집니다. 1~2절은 1인칭(“나”), 3~8절은 2인칭(“너”)으로 시점이 바뀝니다. 마치 순례자 한 사람이 길에서 묻고, 곁에 동행하는 또 한 사람이 답해 주는 대화처럼 느껴집니다. 옛 유대 회당에서는 이 시편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응답송으로 부르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3~4절은 “지키시는 자”의 깨어 있음을 노래합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이 구절은 가나안 바알 신화에 대한 의도적 대조로 자주 읽힙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을 향해 “그가 잠이 들었으니 깨워야 하지 않겠느냐”(왕상 18:27)라고 조롱했던 바로 그 신과는 전혀 다른 분이라는 선언이지요. 새벽 네 시 반의 부엌에 깨어 있는 우리는, 그분이 더 먼저 깨어 계셨다는 그 한 사실 위에 마음을 누이게 됩니다.

5~6절은 “오른쪽 그늘”을 말합니다. 정오의 햇볕과 한밤의 달 — 즉 낮과 밤 모두를 가리키는 메리즘(merism), 양극단으로 전체를 표현하는 히브리 수사법입니다. 어떤 시간이든, 어떤 위협이든 그분이 그늘이 되신다는 약속이 들어 있습니다.

7~8절은 결론적 축복으로 닫힙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흥미로운 점은, ‘지키다’(שָׁמַר, 샤마르)라는 한 동사가 이 짧은 시편에서 무려 여섯 번 반복된다는 사실입니다. 한 단어가 본문 전체를 묶습니다. 안양 평촌의 한 가정 사역자인 이정민 목사(38)는 토요 새벽 모임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시편 121편은 여섯 번의 ‘지키신다’로 우리를 둘러서 안아 주는 본문이에요. 그 동사가 반복될 때마다 청년들의 굳은 표정이 천천히 풀리는 걸 자주 보았습니다.”

산이 보이지 않을 때, 한 주의 묵상 시뮬레이션

주일을 시작하는 한 주, 시편 121편 한 절씩을 매일 묵상해 보면 어떨까요. 아래의 표는 정해진 정답이 아니라 한 가족이 시도해 볼 수 있는 묵상의 결을 한 주 분량으로 펼친 시뮬레이션입니다. 새벽 묵상이 어려운 분은 출근길 지하철 한 정거장, 혹은 자녀를 학교에 내려 주고 잠시 핸들 위에 손을 얹은 그 한 분만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요일 본문 한 줄 묵상 질문 적용의 한 자리
주일(5/10) 시 121:1-2 내 시선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예배 중, 산 위에 머무신 그분께 마음을 들기
월(5/11) 시 121:3 내가 ‘발이 흔들렸다’고 느낀 자리는 어디인가 출근길, 흔들렸던 한 결정 위에 그분의 손을 떠올리기
화(5/12) 시 121:4 그분이 졸지 않으심이 내게 어떤 위로인가 새벽에 깬 그 시간을 짧은 감사 기도로 채우기
수(5/13) 시 121:5 오늘 내 오른쪽에 누가 그늘이 되어 주었는가 그 한 사람에게 “오늘 그늘이 되어 줘 고마워요” 카톡 보내기
목(5/14) 시 121:6 한낮의 햇볕과 밤의 달 — 오늘의 위협은 무엇인가 그 위협을 한 줄 메모로 적고 옆에 “그분이 지키신다”라고 적기
금(5/15·스승의 날) 시 121:7 내 영혼이 지켜지는 자리는 어디인가 신앙의 스승이 되어 준 한 사람에게 짧은 손편지 쓰기
토(5/16) 시 121:8 출입을 지키신다는 약속을 어떻게 살아낼까 한 주를 돌아보며 가족과 짧은 감사 나눔

표는 어디까지나 시작점입니다. 어떤 날은 한 절을 읽고도 마음이 한 시간 동안 그 자리에 머물 수 있고, 어떤 날은 일곱 절을 다 읽고도 한 절도 마음에 머물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시편 121편의 약속은 우리가 잘 묵상하면 지켜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묵상을 잊은 그 시간에도 그분이 졸지 않으신다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지키신다’는 동사가 여섯 번 반복되는 자리

다시 한 번 본문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샤마르(שָׁמַר)’는 단순히 ‘바라본다’가 아니라 ‘둘러서 지켜본다’는 의미를 함께 가집니다. 양 떼를 둘러서 지키는 목자, 성문을 둘러서 지키는 파수꾼의 자리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동사이지요. 시편 121편 3·4·5·7(두 번)·8절 — 도합 여섯 번에 걸쳐 이 한 동사가 반복되며 본문을 한 겹 한 겹 더 두텁게 만들어 갑니다.

흥미롭게도 ‘여섯 번’이라는 숫자는 한 주의 노동일을 떠올리게 합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여섯 일상이 ‘지키신다’는 약속 위에 차곡차곡 얹힙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 날, 안식일에 우리는 그 ‘지키심’의 결과 위에 잠시 멈춰 앉습니다. 칼 바르트는 시편 121편을 두고 “순례자가 두려움 끝에 도달한 평정의 노래”라 평했는데, 그 평정은 우연한 평정이 아니라 한 동사가 여섯 번 반복되는 그 두께 위에 비로소 가능한 평정입니다.

김은주 자매에게 짧은 답장을 보냈습니다. “자매님, 이번 주 시편 121편 한 절씩만 같이 읽어 봐요. 목요일 그 상담실에 들어가시기 전, 차 안에서 7절 한 번만 소리 내어 읽으세요.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그 한 절이면 충분합니다.” 자매에게서 잠시 후 짧은 답이 왔습니다. “네, 해 볼게요. 고맙습니다.” 토요일 새벽의 식탁이 한 사람의 다음 주 화요일을 미리 데려와 안아 줍니다.

토요일의 자리에서 다시 듣는 약속

오늘은 토요일입니다. 한 주의 일과 한 주의 피로가 마지막 자락에 모여 있는 자리. 식탁 위 카네이션은 어제 어버이날의 마음을 기억하게 하고, 휴대폰 알림은 다음 주의 학교 상담과 회사 보고를 미리 떠올리게 합니다. 그 사이에 시편 121편이 놓여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이 한 절은 토요일에서 주일로 넘어가는 그 짧은 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약속입니다. 어제의 출(出)도 내일의 입(入)도, 아직 오지 않은 다음 주 화요일의 학교 상담실도, 그분이 지키신다는 그 한 약속 안에 이미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약속 위에 한 번 더 마음을 누입니다. 그리고 식탁 위 카네이션 옆에 성경을 다시 덮어 둡니다. 다음 새벽, 같은 자리에서 다시 펼치기 위해서.

창밖이 조금씩 밝아 옵니다. 산을 향하여 눈을 든다는 것이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식탁 위 펼친 본문 한 절을 천천히 다시 읽는 일이라는 사실. 그 작은 행위 안에 한 주가 들어 있고, 한 가족이 들어 있고, 졸지 않으시는 그분이 들어 계십니다. 시편 121편의 마지막 ‘영원’이라는 단어는 그래서 무겁지 않고 오히려 한 번 더 깊은 숨을 내쉬게 합니다. 영원까지 지키신다는 약속은, 오늘 새벽 한 번 더 숨을 들이쉴 수 있게 하는 가장 가까운 위로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시편 121편의 ‘산’은 시온 산을 가리키나요, 일반적인 산을 가리키나요?
학자마다 견해가 갈립니다. 시온 산을 가리키는 긍정의 시선으로 보는 입장(델리치)과, 우상 산당이 있던 위협의 산으로 해석하는 입장(키드너)이 모두 오래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평신도 묵상 자리에서는 두 시선을 모두 품고 본문을 읽어도 무방하며, 어떤 해석이든 결국 “나의 도움은 여호와에게서” 한 문장으로 모입니다.

Q2. 1~2절은 화자가 자기 자신에게 묻고 답하는 독백인가요?
독백으로도 읽을 수 있고, 1~2절은 순례자, 3~8절은 동행하는 제사장의 음성으로 보는 응답송 해석도 매우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부부가 1~2절과 3~8절을 나누어 읽어 보면 본문의 결이 한층 살아납니다.

Q3. “출입을 지키신다”는 약속은 사고나 질병으로부터의 보호를 의미하나요?
본문의 약속은 사고로부터의 면책이라기보다 영혼이 지켜진다는 약속에 더 가깝습니다. 시편 121편 자체가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한다”라고 말하지만, 신구약 전체 맥락은 환난 가운데서도 영혼이 지켜지는 보호로 이 약속을 풀어냅니다. 사고가 있어도 영혼이 흔들리지 않게 잡아 주신다는 위로로 받는 편이 본문의 결에 가깝습니다.

Q4. 매일 한 절씩 묵상하라는 권면은 어디에 근거하나요?
본문 자체가 그렇게 권면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 절씩 머무는 묵상은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일평생 시편을 곁에 두고 사용했던 방식이며, 한국 교회의 새벽 묵상 전통과도 잘 어울립니다. 한 절씩 머무는 묵상은 본문이 우리 안에서 천천히 자라는 시간을 만들어 줍니다.

Q5. 자녀와 함께 시편 121편을 묵상하려면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주일 점심상에서 한 절씩 돌아가며 소리 내어 읽고, “오늘 너에게 가장 와닿은 한 단어”를 한 사람당 하나씩 말하게 해 보세요. 어린 자녀에게는 1~2절만 함께 읽고, 동작(눈을 들어 위를 본다)을 더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한 절을 한 주 동안 식탁 위 메모지에 붙여 두는 것만으로도 가족 묵상이 시작됩니다.

※ 본 글의 등장인물 이름과 사례는 묵상의 결을 설명하기 위한 시뮬레이션이며, 실제 인물·기관과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