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이 인간의 세상에 오셨다. 그러나 인간의 세상은 예수님과는 전혀 관계가 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세상이 본거지이며 근거지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떠나신다고 하니 제자들은 섭섭함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이 모습을 보면 답답함이 느껴진다. 아직 제자들은 예수님을 그 세상의 든든한 후견인이나 보스로 모시고 있다. 그래서 왜 예수님이 세상에 화끈하게 알려지지 않느냐고 묻는다(요14:22).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가를 세상적인 성공으로 평가를 하려는 경향이 짙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도 얼마나 외적으로 크게 보이는지 살핀다. 따르는 사람의 수, 건물의 크기, 지위, 타고 다니는 자동차 등등이다. 교회가 이미 세속적 가치에 빠져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 교회가 이룩하고 있는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도 관계가 없다면… 화려한 그것들이 몽땅 백지가 되어 버린 주식들이라면 어떻게 하려나? 그러나 이건 엄연한 사실이다.
그 분이 하늘로부터 내신 그 길을 따라 성령과 진리의 운동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업적이 아니면 하나도 남지 않고 모조리 불에 탄다. 나무와 풀과 짚으로 된 공력은 그 날 준공검사 때에 다 불에 타고 만다(고전3:13) 그러나 그리스도의 비밀을 간직하고 그 터 위에 같은 성분으로 집을 지어 그 비밀을 이룬 금 은 보석의 공력은 영원하다. 불에 타지 않는다. 사단이 왕인 세상, 그리고 그 속에 살고 있는 육체의 소욕, 즉 소유욕이나 명예욕, 안전에 대한 욕구, 남보다 나으려는 경쟁심 등에 사로잡혀 있다면 회개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은 온 세상의 왕이시지만 그 분이 없이 만들어 놓은 곳에는 관심이 없으시다. 아니 떠나신다. 그래서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신다. 다만 그 분의 존재와 기능과 역할을 세상에 알릴 뿐이다. 그 중에 있는 그 분의 양떼들이 그 분을 보고 따라 오게 하려고… 만약 우리가 진리의 복음을 안다면 세상의 매력에 끌려 사람들의 가치 기준에 얹혀 주저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나를 붙들려고 다가오는 그들을 피해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숨어야 한다. 요14장을 떠나 요15장의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로 나아가듯이 내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는 이 비밀의 숲 속에 숨어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분만이 우리의 영원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요14:3-3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