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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십자가


햇살 밝은 은총을 이파리마다
녹음으로 펼쳐 보인 순례의 길
뿌리를 흔드는 폭풍우에도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는
나뭇가지의 자세를 풀지 않았다.

무릎을 꿇은 그림자에 피맺힌
그늘의 멍 자국이 짙어만 갔다.

오병이어 기적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말씀의 한 획 한 자
거룩한 성령체로 익혀나갔다.

흰 비둘기의 깃털 같은
허공이 포근하게 감싼 과일에
햇무리가 눈부신 광채를 둘렀다.

한 시절 주름살 접힌 고뇌로
결실의 축복에 십자가를 짊어져야할 때
하늘빛에 푸르게 날이 섰다.

서릿발이 잎맥에 못을 박는
고통이 나이테를 휘감아
우주의 울림으로 퍼져나갔다.

흥건히 핏물 번진 단풍
한 잎 두 잎 숨결이 졌다.

새날의 부활로
열매가 조용히 꼭지를 놓았다.

닭이 세 번 목울대를 돋운 새벽녘
십자모양 야광 띠를 두른 청소부가
죄의 쓸개즙같이 얼룩진 길을
빛살무늬 선명히 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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