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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새로우니 — 어제의 실패로 오늘을 시작하지 마십시오


눈을 떴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저는 어제 한 말이었습니다. 하지 말았어야 할 말. 이미 뱉어 버린 말. 그 말이 아침 이불 속까지 따라 들어와 있었습니다.

어제의 실패로 오늘을 시작하는 것. 우리는 그것을 너무 자주 합니다.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 - 매일 새로 내리는 은혜

어제를 오늘로 끌고 오지 마십시오

어제의 나는 어제에 있습니다. 오늘의 나는 오늘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제의 나를 굳이 오늘로 데려옵니다. 어제 화를 낸 나. 어제 게을렀던 나. 어제 기도하지 못한 나. 그 모든 나를 데려와 오늘 아침 식탁에 앉힙니다. 그리고 그 얼굴들을 보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러니 아침이 무거울 수밖에요.

성경은 다르게 말합니다. 아주 짧고, 아주 단호하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 예레미야애가 3:22-23

“아침마다 새로우니”

이 말씀을 쓴 사람은 형편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예레미야애가는 나라가 무너진 뒤에 쓰인 글입니다. 성전은 불탔고, 사람들은 끌려갔습니다. 남은 것은 폐허뿐이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그는 말합니다. 아침마다 새롭다고.

상황이 새로워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폐허는 여전히 폐허였습니다. 새로워진 것은 상황이 아니라 긍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어제 다 써 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아침, 또 새것으로 왔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침을 다시 맞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만나처럼 오는 은혜

광야의 만나를 기억하십니까. 하루치만 주어졌습니다. 욕심내어 이틀 치를 쌓아 둔 사람의 그릇에서는 벌레가 났습니다.

불편한 방식처럼 보입니다. 왜 일주일 치를 한 번에 주지 않으셨을까요.

그러나 그 불편함 안에 사랑이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나가야 했기 때문에, 그들은 매일 아침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은혜가 하루치인 이유는 인색해서가 아니라, 매일 만나고 싶으셔서입니다.

오늘 아침 당신에게 주어진 은혜도 딱 오늘치입니다. 어제 쓰다 남은 것이 아닙니다. 새것입니다.

해 뜨는 들판의 고요한 아침 풍경 - 오늘이라는 새 날

새로움은 느낌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오늘 아침도 그다지 새롭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몸은 무겁습니다. 걱정은 어제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통장도 그대로고, 그 사람과의 관계도 그대로입니다. 새로워진 것이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새롭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것 하나를 붙들어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새로움은 느낌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해가 떴다는 것은 내가 그것을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사실입니다. 커튼을 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어도 해는 이미 떠 있습니다. 내 기분이 해를 뜨게 하거나 지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긍휼도 그렇습니다. 내가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아침에도, 긍휼은 이미 도착해 있습니다. 내 감정이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느낌을 기다리지 마십시오. 사실을 붙드십시오. 느낌은 대개 나중에, 조용히 따라옵니다.

베드로의 아침

베드로를 생각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조용히 모른 척한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저주하며 맹세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닭이 울었습니다. 그는 밖에 나가 심히 통곡했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아마 우리와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눈을 뜨자마자 어제의 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을 것입니다.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고 외치던 자기 목소리가.

어제의 실패로 오늘을 시작하는 것. 베드로도 그것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디베랴 바닷가에 다시 아침이 옵니다. 예수님이 거기 서 계셨습니다. 손에 무엇을 들고 계셨습니까.

채찍이 아니었습니다. 조반이었습니다. 숯불이 피워져 있고, 그 위에 생선이 있고, 떡이 있었습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

부인의 밤을 건너온 사람에게 예수님이 건네신 첫마디는 추궁이 아니었습니다. 밥이었습니다. 따뜻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침에 베드로는 다시 부름을 받습니다. 세 번 부인한 사람에게 예수님은 세 번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의 부인 위에 세 번의 사랑 고백이 덮입니다.

실패는 끝이 아니었습니다. 실패 다음에 아침이 왔습니다. 그리고 그 아침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오늘 당신의 아침에도 그분이 계십니다.

오늘 아침, 이렇게 해 보십시오

첫째, 어제의 나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변명하지 말고, 그렇다고 자책에 오래 머물지도 말고, 그냥 이름을 불러 아뢰십시오. “어제 제가 그렇게 했습니다.” 그 한 문장이면 충분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아십니다.

둘째, 오늘의 나를 새로 받으십시오. 용서받은 사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과, 빚진 사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같은 하루인데, 걸음의 무게가 다릅니다.

셋째, 오늘치만 구하십시오. 이번 달 전체를 감당할 힘을 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오늘 하루를 살 힘만 구하십시오.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도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왜 하필 아침입니까

하나님은 왜 긍휼을 아침마다 새로 주신다고 하셨을까요. 저녁마다도 아니고, 정오마다도 아니고, 하필 아침입니다.

아침은 하루의 첫 시선이 정해지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눈을 뜨고 처음 삼 분. 그 삼 분 동안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그날 하루의 색을 정합니다. 어제의 후회로 시작한 날은 하루 종일 어제를 삽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의 목록으로 시작한 날은 하루 종일 쫓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긍휼로 시작한 날은, 하루 종일 그 긍휼 위에 서 있습니다.

거창한 새벽 기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못 하는 날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압니다. 아이를 깨워야 하고, 출근 준비를 해야 하고, 눈꺼풀은 무겁습니다.

그러니 딱 한 문장이면 됩니다. 이불 속에서라도 좋습니다.

“하나님, 오늘 아침에도 새 긍휼을 주셨습니다.”

그 한 문장이 하루의 첫 시선을 어제에서 하나님께로 돌려놓습니다. 작아 보이지만, 방향을 바꾸는 일은 원래 작은 데서 시작합니다. 배의 키가 배보다 작은 것처럼.

다시, 아침입니다

어제는 지나갔습니다. 어제의 실패도 함께 지나갔습니다. 그것을 굳이 오늘로 데려오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긍휼은 어제 소진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아침, 새로 도착해 있습니다. 이슬처럼, 소리 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눈을 떴습니다. 그러니 오늘도 살아 보겠습니다.

주님, 어제의 저를 주님 손에 둡니다. 오늘의 저를 새로 받습니다. 오늘 하루치의 은혜로 충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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