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 반. 창문을 열었습니다. 아직 해가 다 오르지 않은 시간입니다. 마당 풀잎마다 작은 물방울이 맺혀 있었습니다. 밤새 아무 소리도 없었는데, 어느새 온 땅이 촉촉했습니다.
이슬은 소리 없이 내립니다. 비처럼 요란하지 않습니다. 천둥도 번개도 없습니다. 그런데 아침이 되면 풀잎 끝마다 어김없이 맺혀 있습니다. 오늘 아침, 그 작은 물방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 호세아 14:5
하나님은 이슬처럼 오십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슬에 비유했습니다. 폭우가 아니라 이슬입니다. 홍수가 아니라 이슬입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놓입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극적으로만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주 큰 은혜를 구합니다. 인생을 단번에 바꿔 줄 사건을 기다립니다. 기도의 응답이 벼락처럼 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많은 경우 이슬처럼 일하십니다. 아무도 모르는 밤사이에, 소리 없이, 그러나 빠짐없이.

어제도 은혜는 내렸습니다
돌아보면 그렇습니다. 어제 하루,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기적 같은 사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고, 밥을 먹었고, 사람들을 만났고, 밤에 잠들었습니다.
그 평범함이 사실은 이슬이었습니다. 소리 없이 내린 은혜였습니다.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도 하나님은 밤새 우리 삶을 적시고 계셨습니다. 이슬이 내리지 않은 밤은 없었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가 내릴 때도 그랬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밤에 이슬이 진에 내릴 때에 만나도 함께 내렸더라. 은혜는 이슬과 함께 옵니다. 조용한 시간에, 낮은 곳에 먼저 내립니다.
이슬을 받는 자세
이슬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해가 뜨면 곧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슬은 아침에만 만날 수 있습니다. 하루가 분주해지기 전, 마음이 시끄러워지기 전, 그 고요한 시간에만 볼 수 있습니다.
말씀도 그렇습니다. 하루 중 언제라도 읽을 수 있지만, 새벽의 말씀은 조금 다릅니다.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마음에 닿기 때문입니다. 빈 마음에 내리는 첫 물방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잠시 멈추어 보시기 바랍니다. 커피가 다 내려지기를 기다리는 그 몇 분이라도 좋습니다. 눈을 감고 물어보십시오. 어젯밤에도 내 삶에 이슬이 내렸는가. 오늘 내가 받은 은혜는 무엇인가.
백합화는 화려한 꽃이 아닙니다. 들에 피는 소박한 꽃입니다. 그러나 이슬을 머금은 백합화는 피어납니다. 백향목은 하루아침에 자라는 나무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슬을 머금은 백향목은 뿌리를 깊이 내립니다. 하나님의 이슬 같은 은혜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갑니다. 겉으로는 느리지만, 뿌리는 깊어지고 있습니다.
헤르몬의 이슬, 시온의 산들
시편 133편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가를 노래하면서, 그 아름다움을 헤르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다고 표현합니다. 헤르몬은 이스라엘 북쪽 끝에 있는 높은 산입니다. 시온은 남쪽 예루살렘에 있습니다. 지리적으로는 만날 수 없는 두 곳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헤르몬의 이슬이 시온에 내린다고 말합니다. 불가능한 거리를 건너오는 은혜. 닿을 수 없는 곳까지 찾아오는 촉촉함. 그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은혜가 도저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에게도, 도저히 회복될 수 없을 것 같은 관계에도, 이슬은 내립니다.
혹시 지금 마음속에 그런 사람이 있으신가요. 너무 멀어져 버린 가족, 오래 소식이 끊긴 친구,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자녀. 헤르몬에서 시온까지 이슬이 건너간다면, 그 사람에게도 은혜가 건너갈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그 이름을 놓고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슬이 마르기 전에
아침 이슬은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해가 높이 뜨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저는 새벽 묵상 시간에 세 가지를 적어 두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첫째, 오늘 받은 말씀 한 구절을 적습니다. 길게 쓰지 않습니다. 한 구절이면 충분합니다. 둘째, 그 말씀이 오늘 하루 어디에 닿을지 적습니다. 회사의 어떤 회의, 가족과의 어떤 대화, 마음속 어떤 걱정. 말씀이 삶의 구체적인 자리와 만나야 이슬이 뿌리까지 스며듭니다. 셋째, 감사 한 가지를 적습니다. 어제 내린 이슬을 세어 보는 일입니다.
이 세 줄을 적는 데 오 분이 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오 분이 하루의 온도를 바꿉니다. 분주함 속에서도 마음 한구석이 계속 촉촉합니다. 점심쯤 힘든 일이 생겨도, 아침에 적어 둔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이슬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뿌리로 내려간 것입니다.
이슬 한 방울은 작습니다. 그러나 사십 일 가뭄에도 이슬을 먹고 사는 풀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게 자랍니다. 하루하루의 작은 묵상이, 눈에 띄지 않는 새벽의 오 분이, 우리를 마르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 갑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요란한 은혜만 찾던 저를 용서해 주세요. 밤사이 소리 없이 내려 주신 이슬 같은 은혜를 이제야 봅니다. 오늘 하루도 그 은혜를 머금고 살게 해 주세요. 백합화처럼 피어나고, 백향목처럼 뿌리내리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짧은 묵상 하나가 하루를 바꿉니다. 내일 새벽에도 이슬은 내릴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다시 만나요.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
오늘의 묵상을 마치며 세 가지 질문을 남깁니다. 첫째, 지난 한 주 동안 내 삶에 소리 없이 내린 이슬은 무엇이었습니까. 당연하게 지나쳤지만 사실은 은혜였던 것을 하나만 떠올려 보십시오. 둘째, 나는 지금 폭우 같은 응답만 기다리느라 이슬 같은 응답을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셋째, 헤르몬에서 시온까지, 오늘 내 기도가 건너가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답을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슬은 재촉하지 않습니다. 다만 내일 새벽에도 어김없이 내릴 것입니다. 그 신실함을 믿고, 오늘 하루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아침이 촉촉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