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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어둠을 가르는 작은 등불 — 깊은 침묵 속에 들려오는 주님의 부르심

sangkist

새벽 네 시 반, 거실에 작은 등 하나를 켭니다. 노란 불빛은 식탁 위에 놓인 펼쳐진 성경을 비추고, 그 옆에 식어가는 커피잔을 비춥니다. 아직 잠든 가족들의 숨소리만이 집 안을 채우는 이 시간, 저는 작은 의자에 앉아 한참을 그대로 있습니다. 어떤 기도의 말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무엇을 구해야 할지, 무엇을 감사해야 할지조차 정리되지 않은 채로 그저 가만히 있습니다.

이상한 일은, 이런 무력함 가운데 오히려 마음 깊은 곳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평소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일정과 걱정, 어제 누군가에게서 받은 상처와 내일을 향한 불안이 한 겹 한 겹 가라앉습니다. 마치 흙탕물을 그대로 두면 시간이 흐를수록 가라앉아 맑아지듯, 정신없이 흐르던 마음이 작은 등불 앞에서 잠잠해지는 것을 봅니다. 손을 움직이지 않고, 입을 열지 않고, 머리를 굴리지 않을 때 비로소 가슴이 일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됩니다.

주님은 늘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그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편 46편 10절

가만히 있는 것. 이 짧은 한 마디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새벽 한가운데에 앉아 비로소 알게 됩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계획을 멈추지 못하고, 입에서 변명을 그치지 못합니다. 그렇게 분주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먼저 멈춤을 명령하십니다. 무엇을 행하기 전에, 누구의 하나님이신지를 먼저 알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분주함은 종종 사명처럼 위장됩니다.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책임져야 할 사람이 많아서, 응답해야 할 메시지가 많아서 우리는 멈추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분주함의 뿌리는 사명이 아니라 두려움일 때가 많습니다. 멈추면 잊혀질까 봐, 멈추면 뒤처질까 봐, 멈추면 누군가가 나를 약하다고 여길까 봐. 그 두려움은 좀처럼 입 밖에 내지 못하지만, 우리의 손과 발과 마음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합니다. 그러나 새벽의 등불 앞에서는 그 두려움도 빛 아래 가만히 누이게 됩니다.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위에 한 분의 시선이 머문다는 사실을 다시 기억하게 됩니다.

새벽의 작은 등불

새벽의 침묵 속에서 가장 먼저 들려오는 것은 거창한 음성이 아니라 제 안의 부끄러움입니다. 어제 내가 던진 말 한마디, 그 말 뒤에 숨어 있던 자기 보호의 마음, 가족에게 짜증을 냈던 순간의 작은 교만, 같은 교회 식구를 비교하던 시선들. 가만히 있을수록, 그 모든 것이 분명해집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를 정직하게 세우는 자리, 그것이 바로 침묵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신기한 일은, 그 부끄러움이 저를 짓누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부끄러움 위로 따뜻한 빛이 천천히 덮입니다. “괜찮다, 내가 너를 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 그 마음이 등불보다 환하게 가슴에 켜집니다. 죄책감으로 끝나지 않고 회개로, 회개에서 다시 사랑으로 옮겨가는 그 흐름이 새벽 미명 속에서 조용히 일어납니다.

이 모든 흐름은 누군가의 가르침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그저 가만히 있어 본 자만이 알게 되는 비밀입니다. 책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고, 설교로는 다 옮길 수 없는 그 자리의 따뜻함은, 발을 멈춘 사람에게만 허락된 선물입니다. 그래서 새벽의 묵상은 정보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 머무르기 위함입니다. 머무름이야말로 가장 깊은 기도의 다른 이름입니다.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이사야 30장 15절

이사야 선지자가 전한 이 말씀은 분주함이 곧 신앙의 깊이라고 믿어 온 우리에게 정직한 경고가 됩니다. 더 많은 일이 더 큰 사명이 아니라는 것. 더 큰 목소리가 더 강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돌이켜 조용히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구원의 자리에 다시 서게 된다는 것. 새벽의 작은 등불 앞에서 이 말씀은 비로소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읽힙니다.

조용한 새벽 창가의 빛

창문 밖이 천천히 푸르게 밝아 옵니다. 멀리서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는 소리, 새벽 운동을 나선 누군가의 발걸음, 그리고 잠시 후면 일어날 가족들의 작은 인기척. 다시 하루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나 새벽의 침묵을 통과한 마음은 어제와 같지 않습니다. 똑같은 일터로 향하지만, 어제보다 한 뼘 더 깊은 자리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똑같은 사람을 만나지만, 어제보다 조금 더 부드러운 시선을 건넬 수 있을 것입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잠시 가만히 있을 수 있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오늘의 발걸음은 어제와 다른 깊이를 가집니다. 우리는 종종 깊이를 큰 결단으로 만들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깊이는 머무름의 시간이 쌓일 때 자라납니다. 한 번의 거창한 결단보다 오백 번의 작은 머무름이 한 사람의 신앙을 더 단단하게 합니다. 이것이 새벽의 등불 앞에서 배우는 가장 단순한 진실입니다.

주님 앞에서 가만히 있어 본 사람만이, 사람들 앞에서도 가만히 있어줄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분노 앞에서 곧바로 변명하지 않고, 누군가의 침묵 앞에서 그 침묵을 함부로 깨지 않으며, 누군가의 눈물 앞에서 서둘러 해석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다시 이 새벽의 자리로, 작은 등불 앞으로 돌아오겠습니다.

혹시 오늘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도, 마음이 너무 시끄러워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잠시만 모든 말을 멈춰 보시면 좋겠습니다. 거창한 묵상이 아니어도, 멋진 말이 아니어도, 그저 작은 등 하나 켜고 가만히 있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분명히, 부드럽게, 그러나 또렷하게 우리를 만나주실 것입니다.

새벽의 시간은 짧고, 일상의 시간은 깁니다. 그러나 짧은 시간에 빚어진 마음의 결이, 그 긴 시간 전체를 천천히 바꿔놓습니다. 한 잔의 떨어지는 물방울이 단단한 돌을 천천히 깎듯, 우리의 작은 머무름 하나가 평소의 거친 결을 부드럽게 다듬어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벽으로 돌아갑니다. 거기서 다듬어진 마음으로 일상의 한복판을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새벽이 깊어 갑니다. 작은 등은 여전히 켜져 있고, 마음에는 한 줄의 기도가 천천히 떠오릅니다. “주님, 오늘 저를 가만히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 가만함 속에서 당신이 누구이신지 다시 알게 해 주십시오.” 그 한 줄이면 오늘의 묵상은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