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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아끼라” — 유월의 여름 문턱에서 에베소서 5장을 펼치며


유월이 깊어지고 있다. 창문을 열면 이미 아침 여섯 시의 햇살이 제법 따갑다. 계절의 빠름이 새삼 놀랍다. 봄이 왔다 싶었는데, 어느새 여름의 문턱에 서 있다. 하루가, 한 주가, 한 달이 이렇게 흘러간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그 흐름 앞에 그저 서 있다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차 싶어 가슴을 치곤 한다. 세월이 이렇게 빠르다는 것을, 해마다 실감하면서도 해마다 잊어버린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 에베소서 5:15-16

에베소서 5장 15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여기서 ‘세월을 아끼라’는 헬라어 원문에서 ‘엑사고라조(ἐξαγοράζω)’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 오다, 즉 값을 치르고 되사다는 뜻이다. 시간은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값을 치르고 의도적으로 사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시간은 저절로 의미 있게 쓰이지 않는다. 누군가 결단하고 선택해야 한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 에베소는 로마 제국 아시아 주의 수도로 풍요롭고 번창한 도시였다. 온갖 쾌락과 유혹과 소음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아르테미스 신전이 자리한 그 도시에는 제국의 문화가 숨 쉬고 있었다. 그 속에서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물으며 바울은 이 권면을 건넨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2026년 역시 그 에베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콘텐츠의 홍수, 디지털 자극의 쓰나미 속에서, 시간은 조용히 새어 나간다.

아침이면 스마트폰 알림 소리에 잠이 깨고, 하루 종일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하루를 보낸다. 숏폼 영상 하나, SNS 피드 하나에 손이 가다 보면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저녁에는 지쳐서 침대에 쓰러지고, 문득 하루를 되돌아보면 정말 소중한 일에 시간을 얼마나 썼는지 의문이 든다. 그 의문이 불편하게 가슴을 찌를 때, 에베소서의 이 말씀이 새롭게 들린다. “세월을 아끼라.”

아침 빛 속 성경 묵상

시간은 되찾을 수 없다. 어제 흘려보낸 한 시간을 오늘 다시 살 수는 없다. 그러나 바울의 권면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대한 결단을 향하고 있다. 지혜롭게 행하라. 지금 당신의 손에 주어진 이 하루를, 이 한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 주의 깊게 생각하라. 지혜로운 자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며, 그 방향으로 발을 옮기는 자다.

기도하는 자가 시간을 가장 잘 사용한다는 말이 있다. 기도는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효율적인 시간의 투자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 하루 전체를 의미 있게 만드는 뿌리가 된다. 마치 나무가 땅속 깊은 뿌리 덕분에 가지와 잎을 뻗을 수 있듯이, 하나님과의 시간이 깊어질수록 하루의 나머지 시간들이 더 풍요롭게 살아난다. 기도는 시간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거룩하게 만드는 일이다.

세월을 아낀다는 것은 일을 더 많이 하라는 것이 아니다. 더 바빠지라는 것도 아니다. 바울이 말하는 지혜는 양보다 질에 대한 것이다.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알고, 그 목적에 부합하는 일들에 시간을 쓰라는 것이다. 크리스천에게 그 목적은 분명하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 목적을 중심에 놓고 하루를 설계할 때, 우리는 비로소 시간을 아끼는 자로 살 수 있다. 목적 없이 바쁜 것은 아끼는 것이 아니다. 목적을 알고 집중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세월을 아끼는 삶이다.

여명의 일출

어떤 날은 아주 바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을 하지 못한 날이 있고, 어떤 날은 조용하게 보냈지만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 있었던 날이 있다. 시간의 질은 분량이 아니라 방향에 달려 있다. 내가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내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하루의 의미를 결정한다. 그 방향이 하나님을 향할 때, 아무리 평범한 하루도 거룩한 하루가 된다. 하나님 앞에서 보낸 한 시간은, 세상을 향해 달린 열두 시간보다 더 풍성할 수 있다.

유월의 아침,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이 말씀을 다시 읽는다. 오늘 나는 무엇을 위해 이 하루를 살 것인가? 어떤 일에 내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것인가? 그리고 하루의 끝에 돌아볼 때, 나는 무엇을 기억하고 싶은가? 이 질문들이 아침 묵상 자리에서 천천히 마음을 채운다. 급하지 않게, 서두르지 않게, 하지만 분명하게.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지를 하나님 앞에서 생각해 보는 것, 그것이 말씀 묵상이 주는 선물이다.

세월을 아끼는 것은 거창한 삶의 변혁이 아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께 이 하루를 드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짧은 기도 한 줄, 성경 한 구절, 감사 한 마디. 그 작은 결단들이 모여 우리의 하루를,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간다. 거대한 변화는 늘 작은 결단에서 비롯된다. 유명한 신학자도, 헌신된 선교사도, 모두 작은 아침의 결단들로 그 삶이 쌓였다.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느냐가 하루 전체의 방향을 결정한다. 아침에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은 하루를 다른 각도로 본다. 문제가 닥쳐도 그 문제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관계에서 갈등이 생겨도 “이 사람을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라는 시각이 생긴다. 아침 말씀 묵상은 단순히 좋은 습관이 아니라, 하루를 하나님의 눈으로 살게 해주는 렌즈다. 그 렌즈를 매일 아침 장착하는 것이 데일리 QT의 본질이다. 바쁠수록, 힘들수록, 그 렌즈가 더 필요하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 시편 90:12

날을 세는 것은 숫자를 아는 것이 아니라 날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다. 그 소중함을 아는 자만이 오늘을 참으로 살 수 있다. 시편 기자의 이 기도가 오늘 나의 기도가 된다. 하루를 선물로 알고, 감사함으로 받고, 의미 있게 사용하는 지혜를 달라는 기도. 유월의 여름 문턱에서, 나는 이 기도로 하루를 연다. 세월은 아낄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오늘을 내려놓는 자에게 주어지는 은혜다. 아껴진 시간은 하나님의 손 안에서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지고, 더 아름다워진다. 그 믿음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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