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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 마지막 줄에 적힌 작은 숫자 하나 — 인플레이션 시대에 다시 펴 읽는 잠언 30장 8절의 기도


월말이 가까워지면 가계부 마지막 줄에 적힌 한 줄의 숫자가 늘 마음에 걸린다. 이번 달은 전 달보다 십칠만 원이 더 들었다. 특별히 사치한 항목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채소값이 조금 올랐고, 휘발유값이 한 번 더 올랐고, 아이의 학원 교재비가 새 학기를 맞아 변경되었을 뿐이다. 작은 인상들이 모여 한 달 끝에 두 자리 만 원짜리 차이를 만들어 낸다. 그 차이 앞에 앉아 있다 보면 자연스레 한 가지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인플레이션.

경제학 교과서가 가르치는 인플레이션의 정의는 단순하다. 같은 화폐로 살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이 줄어드는 현상이다. 그러나 가계부 앞에서 마주하는 인플레이션은 좀 더 사적인 얼굴을 갖는다. 그것은 우리의 노동 시간, 우리의 휴식 시간, 우리의 마음의 여유까지 조금씩 잠식해 들어온다. 십칠만 원의 차이는 단지 숫자가 아니라, 다음 달에 그만큼을 더 벌기 위해 추가로 일해야 할 시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은 신앙인에게도 결코 추상적인 거시 경제 지표가 아니다.

책상 위 펼쳐진 가계부와 작은 동전 그리고 펜이 놓인 풍경

잠언 마지막 부분의 한 기도가 떠올랐다. 아굴이라는 사람이 하나님께 두 가지를 구한다. 헛된 것과 거짓말을 멀리해 달라는 것이 첫째이고, 가난하게도 부하게도 마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만 먹이시기를 청하는 것이 둘째이다. 신학자들이 자주 짚어 주듯이, 이 기도는 단순한 경제적 중용의 청구가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자리를 잃지 않게 해 달라는 영적 청구이다. 너무 가난하면 도둑질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렵고, 너무 부유하면 하나님을 잊고 누구냐고 물을까 두렵다는 그의 고백 속에 모든 시대의 청지기가 마주하는 두 종류의 위험이 압축되어 있다.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 잠언 30장 8절

인플레이션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은 이 기도의 두 위험 가운데 어느 쪽에 더 가까워져 있을까. 표면적으로는 가난의 위험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물가는 오르고 임금은 그만큼 오르지 않으니, 매달 가계부 마지막 줄이 무거워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인플레이션의 진짜 위협은 가난 그 자체가 아니라 마음의 분주함이다.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압박, 더 빠르게 자산을 늘려야 한다는 조급함, 더 영리하게 투자해야 한다는 강박이 마음을 잠식할 때, 우리는 부유함의 위험에 더 가까워진다. 손에 쥔 것은 늘었으되 마음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는 역설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가정의 지출 항목을 천천히 분류해 보았다. 필수 지출과 그렇지 않은 지출 사이의 경계가 생각보다 모호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식비처럼 분명히 필수인 항목이 있는가 하면, 외식과 배달처럼 어느 쪽에도 속하기 어려운 회색 지대가 적지 않았다. 통신비, 구독 서비스, 작은 편의를 위한 지출들이 그 회색 지대를 점점 넓혀 가고 있었다. 인플레이션은 그 회색 지대를 그대로 둔 채 모든 항목을 일률적으로 올린다. 그래서 청지기 정신은 인플레이션 시대에 더 정교한 분류 작업을 요구한다.

시장 채소 가판대 앞 가격표를 바라보는 손과 영수증

아굴의 기도에서 가장 마음에 닿는 부분은 필요한 양식이라는 표현이다. 한국어로 옮기면 단순한 일용할 양식 같지만, 히브리어 원문은 좀 더 적극적인 뉘앙스를 가진다. 정확히 자기 몫만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분량을 가리킨다. 그것을 분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자기 몫의 경계는 시대와 환경, 가족의 상황과 부르심의 무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지기 정신의 핵심은 정해진 금액이 아니라, 매달 자기 몫의 경계를 그분 앞에서 다시 그리는 훈련에 있다.

구체적으로 우리 가정이 시도해 본 몇 가지 작은 훈련이 있다. 첫째는 가계부의 마지막 줄을 보기 전에 잠시 멈추고, 한 줄의 짧은 기도를 적는 일이다. 이번 달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이 무엇이었는지를 그분 앞에 묻는 한 줄이다. 둘째는 회색 지대에 속하는 지출 한 항목을 매달 한 가지씩 고르고, 그 항목이 정말 우리 몫인지 한 달간 천천히 분별하는 일이다. 셋째는 한 달 지출의 한 부분, 가능한 만큼을 따로 떼어 보이지 않는 손길이 필요한 곳에 흘려보내는 일이다. 이 세 가지는 모두 거창한 재테크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시대에 청지기의 마음을 지키는 작은 가드레일이 된다.

경제 뉴스를 보다 보면 더 영리한 자산 배분이 늘 정답처럼 제시된다. 인플레이션을 헤지하기 위해 어떤 자산에 몇 퍼센트를 두어야 한다는 표가 사방에 떠다닌다. 그 표들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청지기 정신은 무지를 미덕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 표들이 마음의 결을 정해 버리도록 두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잠언의 아굴은 자산 배분 표 앞에서 기도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마음이 두 위험 가운데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도록 매일 그분께 청했다. 그것이 모든 자산 배분 표보다 먼저 와야 하는 영적 배분이다.

오래된 성경 위에 놓인 작은 노트와 은빛 동전 몇 개

가계부의 마지막 줄에 적힌 십칠만 원이라는 차이 앞에서, 오늘 밤은 잠언 30장의 그 기도를 한 번 더 천천히 읽었다. 그 기도는 인플레이션을 막아 주지는 않는다. 채소값을 다시 내려 주지도, 휘발유값을 떨어뜨려 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기도는 마음의 자리를 지켜 준다. 가난의 두려움이 우리를 부정직하게 만들지 않도록, 부유함의 환상이 우리를 그분께 누구냐고 묻게 만들지 않도록, 그 기도는 매달 가계부를 펴는 손에 작은 균형추를 달아 준다.

인플레이션은 한동안 우리 곁에 머무를 것이다. 어떤 통화 정책도 그 흐름을 완전히 뒤집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흐름 안에서도 청지기의 자리는 여전히 가능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의 경계를 매달 다시 그리고, 회색 지대의 한 항목을 한 가지씩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그 모든 분별의 자리에 아굴의 기도를 한 줄 얹어 놓는 일. 그 작은 가드레일들이 인플레이션의 흐름 속에서도 마음을 지키는 디딤돌이 된다.

책상 위 가계부를 덮으며 짧은 한 줄을 끝에 적었다. 이번 달도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십칠만 원의 차이는 여전히 마음에 남았지만, 그 차이 위로 잠언 30장의 기도가 한 줄 흐르고 나니, 가계부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졌다. 인플레이션 시대의 청지기는 결국 숫자보다 먼저 마음의 결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가계부 마지막 줄 위에서 다시 한 번 천천히 새겨 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