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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의 경제학 — 하루치 은혜로 사는 법


오병이어 청지기입니다. 성경의 눈으로 돈과 소유를 다시 읽는 이 코너, 오늘은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경제 실험 하나를 살펴보려 합니다. 실험실은 광야였고, 실험 기간은 사십 년이었으며, 실험 재료는 하늘에서 내린 양식, 만나였습니다.

출애굽기 16장은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굶주림에 부딪히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아침마다 만나를 내려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데, 이 약속에는 독특한 규칙이 붙어 있었습니다.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둘 것. 그리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 것.

남긴 만나에는 벌레가 생겼다

경제학의 눈으로 보면 이 규칙은 이상합니다. 내일이 불확실한 광야에서 저축을 금지하다니요. 오늘 두 배로 거둬서 내일 몫을 쌓아 두는 것이야말로 합리적인 선택이 아닙니까. 실제로 그렇게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 결과를 담담하게 기록합니다.

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 출애굽기 16:20

쌓아 둔 만나는 하룻밤 사이에 부패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만나 경제의 첫 번째 원리를 만납니다. 은혜는 저장되지 않고, 날마다 새로 받는 것이라는 원리입니다. 만나는 사재기가 불가능한 양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십 년 동안 매일 아침, 백성들이 오늘의 공급자가 누구인지를 기억하도록 훈련시키신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출애굽기 16장 18절의 기록입니다.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다. 각 사람은 필요한 만큼 거두었다는 이 구절을, 훗날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헌금을 독려하면서 그대로 인용합니다. 넉넉한 자의 것이 부족한 자를 채우는 균등의 원리가 만나에서 나온 것입니다.

노랗게 익은 밀밭의 이삭
만나는 매일 아침 새로 거두는 양식이었습니다. 오늘의 필요는 오늘 채워집니다.

일용할 양식의 기도

이 광야의 훈련은 천오백 년 뒤 예수님의 기도문으로 이어집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주기도문의 이 간구는 만나 경제의 신약 버전입니다. 예수님은 평생 먹을 양식을 구하라고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의 양식, 하루치의 공급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저축이나 계획이 죄라는 말이 아닙니다. 잠언은 개미에게서 배우라며 여름에 양식을 예비하는 지혜를 칭찬하고, 요셉은 칠 년 풍년 동안 곡식을 저장하여 기근에서 두 민족을 살렸습니다. 성경은 계획하는 지혜와 쌓아 두는 탐욕을 구분합니다. 그 경계선은 금액이 아니라 마음에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의 어리석은 부자를 보십시오. 그의 문제는 곳간을 지은 것이 아니라, 곳간을 지은 뒤에 한 말에 있었습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는 자신의 안전을 하나님이 아니라 곳간에 두었습니다. 쌓아 둔 것이 공급자를 대체하는 순간, 지혜로운 저축은 어리석은 축적이 됩니다.

자족의 훈련 — 아굴의 기도

만나 경제의 정신을 한 편의 기도로 요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잠언 30장의 아굴입니다.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그는 이유도 정직하게 밝힙니다.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할까 두렵고, 가난해서 도둑질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렵다는 것입니다.

아굴은 돈이 영혼에 미치는 힘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결핍도 과잉도 영혼을 시험합니다. 그래서 그는 필요한 양식, 곧 하루치의 만나를 구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고백한 자족의 비결도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나무 도마 위에 놓인 빵 한 덩이
하루치의 빵으로 충분하다는 고백이 자족의 시작입니다.

안식일의 만나 — 쉼도 경제 원리다

만나 경제에는 한 가지 예외 조항이 있었습니다. 여섯째 날에는 이틀 치를 거두라는 것입니다. 일곱째 날, 안식일에는 만나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여섯째 날에 거둔 두 배의 만나는 다음 날 아침에도 썩지 않았습니다. 같은 만나인데, 탐욕으로 쌓은 만나는 부패했고 순종으로 예비한 만나는 신선했습니다.

여기에 만나 경제의 또 다른 원리가 있습니다. 쉼조차 공급 안에 설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만나는, 내가 하루를 멈추어도 세계가 무너지지 않으며 나의 생존이 나의 쉼 없는 노동에 달려 있지 않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일을 멈추는 날이 있어야 돈이 주인 행세를 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쉬지 못하는 사람은 대개 공급을 자기 손에서 찾는 사람입니다.

또 하나, 하나님은 만나 한 오멜을 항아리에 담아 증거궤 앞에 대대로 보관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저장이 금지된 양식이 단 하나, 기억을 위해서는 보존된 것입니다. 재정의 여정에서도 기억은 중요합니다. 지나온 공급의 역사를 기록해 두십시오. 통장 거래 내역이 아니라, 채워졌던 순간들의 목록 말입니다. 그 항아리가 다음 광야에서 우리를 지탱합니다.

오늘의 청지기에게 — 세 가지 적용

만나의 경제학을 오늘의 가계부로 가져와 봅니다. 첫째, 공급의 출처를 매일 확인하십시오. 월급날 하루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아침마다 오늘의 양식을 주시는 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식탁 기도는 만나 경제의 가장 오래된 실천입니다.

둘째, 저축의 목적을 점검하십시오. 무엇을 위해 모으고 있습니까. 목적이 있는 저축은 지혜이고, 목적이 불안뿐인 축적은 광야에 쌓아 둔 만나가 되기 쉽습니다. 정기적으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의 안전감은 잔고에서 옵니까, 공급자에게서 옵니까.

셋째, 흘려보내는 통로를 만드십시오. 만나는 매일 새로 내렸기에 움켜쥘 이유가 없었습니다. 은혜가 날마다 새롭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나눌 수 있습니다. 수입의 일부가 정기적으로 다른 사람의 필요로 흘러가도록 구조를 만들어 두면, 돈은 우상의 자리에서 내려와 도구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광야의 사십 년 동안 만나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내렸습니다. 신명기는 그 세월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루치씩 사는 삶은 불안한 삶이 아니라, 가장 오래 검증된 안전한 삶이었습니다. 오늘도 하루치의 은혜가 이미 내려 있습니다. 먹을 만큼 거두시고, 감사히 사시고, 넉넉히 나누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