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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하게 하는 자가 받게 되는 축복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마5:9)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에 의한 의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하나(join)가 된다. 평강이라는 말의  ‘에이레네’는 하나님과 연합된 상태를 말한다. 사실 죄 문제와 더불어 하나님과의 관계설정에 어정쩡한 분들이 많은데 산상수훈을 말하는 것이 너무 사치스럽지 않은가 하는 느낌도 받는다. 그러나 어차피 우리가 가야할 길이고 넘어야 할 산이다. 간혹 집회를 다녀보면 대접이 너무 과분하고 황홀하다. 촌놈인 내게는 거북한 일이다. 그래서 늘 교인들에게 ‘밥값하고 가기가 힘이 든다’고 엄살을 떤다. 그와 같이 남은 육체의 때에 하나님이 베푸신 과분한 은혜의 값과 부모가 주신 귀한 몸 값, 그리고 이 땅에서 먹은 엄청난 밥값을 하고 하나님께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8복이 이루어지려면 우선 하나님의 나라가 심령에 이루어진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로마서가 도움이 된다. 그리고 요한복음을 다시 보기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따라가면 자신이 이미 십자가를 건너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알게 된다. 이는 자신이 힘차게 주장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또 듣는 과정에서 얻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물론 성령의 역사이다. 말씀은 밖에서 들어오고 성령은 안에서 일하시므로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들었는지 성령의 음성을 들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 분의 역사가 동시에 하모니가 되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늘 안타까운 것은 온전한 복음을 듣지 못하는 분들의 이해력이다. 이 과정에서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가 필수다. 아마 이 8복을 사모하는 사람은 이미 지금까지의 기도가 멈추어 졌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컴퓨터에 깔려 있는 프로그램처럼 들은 바 반쪽 복음이 누룩처럼 그 사상에 깔려 있음을 본다. 포맷을 할 수 있는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나길 바란다. 그래서 이 산상수훈이 이루어져 가는 천국시민들이 되길 바란다. 이 천국시민의 대헌장이 우리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선언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8복을 바라보는 자리에서 그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가 되는 자리로 옮겨 앉아야 한다. 성령의 배고픔이 천국으로, 그 안에 천국을 모신 자의 애통함, 그 애통함에 다가오는 성령의 위로, 이중적인 자신을 두고 애통해 본 자 만이 포기할 수 있는 자아 곧 십자가를 짐, 그 곳에 임하는 천국자산을 쌓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영토, 당당히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배부름, 거기서 흘러나오는 긍휼과 하나님의 채우심, 그리고 오직 일편단심의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질주할 수 있는 축복, 이런 사람은 남을 화평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신에게 유 불리를 따지는 인간관계의 처세가 아니다. 몇몇 신앙인들을 만나보고 실망을 하는 점은 아직 자신의 처세술이 인생의 복된 기술인양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그건 타고난 육적인 조건일 뿐인데...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축복하신다. 타고난 자신의 재주를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남을 화평케 하는 것은 처세의 방법이 아니라 체질이 되어야 한다. 자신과의 친소관계를 따질 일이 아니다. 하나님과 화평하는 법을 먼저 터득하고(사실 이 공부가 만만치 않다) 그 다음 이웃과 화평하고, 그 사람들을 하나님과 그리고 피차 화평하게 하는 임무를 우리가 맡았다. 천국시민의 대 헌장 안에 있는 내용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탁하신 말씀이다(고후5:17) 그리고 이 화평은 우리가 하나님을 뵙기 위해선 거룩과 더불어 마땅히 이루어야 할 덕목이다(히12:14)

그런데 ‘화평케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데 기껏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기 위해 여기까지 깊숙이 따라가야 하는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복음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하고 반문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내가 하나님의 자녀다’고 스스로 확신하는 것과 하나님이 ‘너는 내 아들이야’하시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나님의 음성으로 ‘이는 내가 사랑하고 기뻐하는 아들이라’(마3:17)고 하신 것은 그 강도가 확연히 다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령을 따라 행할 때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4)는 하나님의 확정이 있음과 같이 화평케하는 사람에게도 ‘나의 기뻐하는 아들이라’는 어마어마한 확정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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