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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이 가져야 할 본래 모습


본문: 마태복음 5: 13- 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16절)

중국 선교 초창기의 일입니다. 선교사가 여학교를 세워 교육하고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중국의 한 부호(富豪)가 찾아와서 자신의 딸을 맡기면서 선교사에게 부탁했습니다. ‘내 딸아이를 맡아 다른 학생들처럼 화장을 예쁘게 해주시오.’
선교사는 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화장을 시키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어째서 이 학교에 들어오는 학생마다 예뻐지는 것입니까?’ 선교사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영접하기 때문에 그들의 얼굴이 바뀌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마치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변한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복된 모습은 불신자들의 입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나오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선 사람이 받는 놀라운 축복은 그 자체가 강한 전도입니다. 반면에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는 그리스도인이 늘어날수록 교회를 비판하는 소리가 높아져만 갑니다. 슬프게도, 교인들의 일그러진 모습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시67:7)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발모랄 왕궁에 거하고 있을 때. 여왕의 모습을 전혀 감추어 변장을 하고 인근을 걸어 다니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여왕은 그가 신임하는 종 한 사람만 데리고 평복차림으로 옆문을 통해서 살짝 빠져나와 그 지역을 걸어서 가게 되었습니다. 평복차림의 여왕이 걸어가고 있는 길 앞에 마침 한 목동이 양떼를 몰면서 오고 있었습니다. 목동 소년은 여왕을 향해서 소리 쳤습니다.“얼른 길을 비켜요. 에잇 바보 같은 할머니 같으니라구!”이 말을 들은 여왕은 그냥 웃음을 지었습니다. 깜짝 놀란 종이 목동에게 달려가서 작은 목소리로 저분이 여왕 페하라고 말을 했습니다. “아, 그래요? 그러면 여왕님처럼 차리고 다니셔야죠”
여왕이 여왕으로서의 차림이 아니었기 때문에 목동이 실수를 했다는 이야기인데 오늘 우리 성도들은 누가 보더라도 성도라고 인정할만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성도는 성도답게 말을 하고 행동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성도가 성도답지 않을 때 본인도 망신을 당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따르는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소금이나 빛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이미 소금이요, 빛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려고 노력하면서 살아가야 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었으니, 소금과 빛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어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금이 소금답지 못하고. 빛이 빛답지 못하면 버림을 받게 될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엡5:9)

우리는 작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큰 죄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작은 죄 때문에 사람이 더 치사하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에 죄를 전염시키는 자가 아니라 맛을 내는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살맛나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교인 많은 게 자랑이 아닙니다. 바르게 사는 교인이 많아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헌신해야 합니다. 힘이 없다고 그 사명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초대 크리스천들은 대부분 사회 저층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정치력도 없었고, 사회적인 지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동하는 지도자도 없었고, 강력한 조직도 없었고, 캠페인을 벌인 적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의에 굶주려 있었고 성령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로마를 복음으로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는 보잘것 없는 존재라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은밀하게 사랑하고, 은밀하게 섬기고, 은밀하게 헌신해야 합니다. 소금이 중요해도 녹지 않는 소금은 소용없습니다. 소금은 형체까지 없어져야 진짜 소금 맛을 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녹아 없어지면서도 원래의 소금 맛은 항상 지킵니다. 그처럼 믿는 사람들은 형체는 없어져도 본질은 살아있어야 합니다. 요새 맛을 잃어버린 교인들이 많아서 그들로부터 예수 맛과 예수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요새 믿는 사람으로서 사회생활,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믿는 사람들이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상사에게 잘못 보이면 길이 막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도 복음을 위해서라면 출세도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실 하위직은 좀 고달파도 수명은 길 수 있습니다. 고위직에 오르면 오래 못가서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높은 자리보다 낮은 자리가 반드시 불행만은 아닙니다.
이제는 세상에서 출세를 못해도 사표 낼 각오를 하고 믿는 사람답게 떳떳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비겁하고 옹졸하게 살지 말고 멋있게 살려고 힘써서 어디에 가든지 변질되지 않는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길거리에 버려진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에서나 믿는 사람답게 잘 살아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형제들끼리 더욱 이해하고 사랑하고, 가정에서는 가족들끼리 서로 위해주고, 어디에 가든지 사랑과 평화를 전하고,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 주님과 복음만이 유일한 인생의 대안임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항상 세상 속에서 믿는 사람답게 주님의 빛을 비추며 사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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