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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 앞에서, 가만히 서라 — 출애굽기 14장의 새벽 묵상

sangkist

이른 새벽, 잠에서 깨어 성경을 펼치는 순간이 있습니다. 어제까지 풀리지 않은 매듭이 머릿속에서 다시 엉키기 시작합니다. 직장에서의 결정, 회복되지 않는 관계, 다가오는 마감,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마음의 무게. 그렇게 무릎을 꿇고 앉아 펼친 본문이 출애굽기 14장이었습니다.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멈춰선 그 장면입니다. 뒤에서는 바로의 군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앞에는 깊고 푸른 바다가 가로놓여 있습니다. 발 밑에는 한 걸음도 디딜 곳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모세는 백성을 향해 두 번, 분명하게 말합니다.

바다 위로 떠오르는 새벽 빛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 출애굽기 14장 13~14절

가만히 서다, 라는 명령

가만히 서라. 가만히 있으라. 짧은 두 번의 명령이 본문에서 반복됩니다.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도망치고 싶은 그 마음, 무엇이든 해서라도 상황을 바꾸려는 그 본능을 향한 말씀입니다. 사람은 위기 앞에서 멈추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멈추는 것은 곧 무력함의 인정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다’는 두 발이 땅에 닿아 있는 자세입니다. 도망치지도, 무모하게 뛰어들지도 않는 자세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무릎이 꺾이려 할 때 그 무릎으로 똑바로 서는 일은 결코 수동적인 일이 아닙니다. 도망의 본능을 거스르는 신앙의 몸짓이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선다는 것은 곧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고백입니다. 내 발이 아니라 그분의 손을 의지하겠다는 결심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가만히 서라는 말씀에는 또 하나의 약속이 함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여호와께서 싸우시는 동안 우리에게 요청되는 일은 잠잠히 거기 머무는 것입니다. 분주하게 손을 놀려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야만 마음이 놓이는 우리에게, 이 말씀은 낯설고 어렵게 들립니다. 그러나 정말 두려운 자리, 정말 막힌 자리에서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내가 어떤 방향으로 한 걸음을 내디뎌도 그것은 또 다른 수렁으로 들어가는 길이라는 것을. 그 자리에서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머무는 것입니다. 그저, 잠잠히 머무는 것.

모세가 지팡이를 들었을 때 바다가 갈라졌습니다. 지팡이는 도구였습니다. 능력은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잊으면 우리의 손에 들린 모든 것은 짐이 되고, 그 짐을 못 견뎌 우리는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분의 손 끝에 닿아 있는 도구일 때, 작은 지팡이 하나가 바다를 가르는 길이 됩니다.

아침 햇살을 받은 펼친 성경

오늘 우리 앞의 홍해

본문을 읽으며 제 안에서 일어난 첫 번째 반응은 부끄러움이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순간 저는 가만히 있지 못했던가. 무엇이라도 결정해야 한다는 강박,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력,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무엇인가가 있다는 생각이 저를 끊임없이 떠밀어왔습니다. 그래서 자주 잘못된 방향으로 손을 뻗었고, 다시 거두어들이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그 모든 분주함의 뒤편에는 ‘내가 해내야 한다’는 작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앞에 놓인 홍해는 무엇입니까. 누구는 회복되지 않는 관계의 벽 앞에 서 있을 것이고, 누구는 더는 길이 보이지 않는 진로의 막다른 자리에 서 있을 것입니다. 또 누구는 자기 자신의 약함 앞에서 무릎이 꺾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자리는 우리의 힘으로 건널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가장 가까이 일하시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침묵 속의 적극성

가만히 서라는 명령은 결코 수동적인 침묵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장 적극적인 신뢰의 자세입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두 발을 땅에 붙이고, 도망치지 않고, 무모하게 뛰어들지도 않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바라보는 자세. 손에 쥐고 있던 것을 잠시 내려놓고, 마음 가운데 들끓던 계산을 잠시 멈추고, 그분이 행하시는 구원의 방식을 기다리는 자세. 그 자세야말로 이스라엘이 홍해 앞에서 배웠던 가장 큰 신앙의 첫 걸음이었습니다.

오늘 하루의 어느 순간, 우리 안에 다시 그 명령이 들려오기를 기도합니다. 가만히 서라. 두려워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그 음성을 듣고 우리는 그 자리에 잠시 멈출 것입니다. 한 호흡을 길게 내쉬고, 그분께서 행하시는 일을 묵묵히 기다릴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알게 될 것입니다. 갈라지지 않을 것 같았던 바다도, 그분 앞에서는 길이 된다는 것을. 막혔다고 생각한 자리에서 오히려 가장 또렷한 발자국이 시작된다는 것을.

지팡이는 도구일 뿐

출애굽기 14장을 다시 가만히 읽다 보면 이상한 장면 하나가 도드라집니다. 백성이 두려워 떨고 있을 때, 모세 자신도 마음으로는 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을 향해 단호한 말을 한 뒤 곧장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본문 15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상하지 않습니까. 가만히 서라 했던 백성에게 이번에는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가만히 서는 것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모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본문이 그려주는 그림은 분명합니다. 먼저 멈춰서서 신뢰의 자리에 두 발을 붙인 자만이, 다음 순간 한 걸음을 옮길 수 있습니다. 가만히 서는 일이 행동의 반대가 아니라, 가장 단단한 행동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습니다.

침묵 속에서 들려오는 부르심

오랜만에 새벽에 일어나, 형광등 대신 작은 스탠드 하나만 켜두고 본문을 묵상했습니다. 창 밖은 아직 어두웠습니다. 새 한 마리가 우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첫 차의 시동 소리, 그리고 펼친 성경 위에 놓인 제 두 손. 그 손은 어제까지 무엇인가를 늘 붙들고 놓지 못했던 손이었습니다. 무엇인가를 해내야 하루가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던 손이었습니다.

그 손을 잠시 내려놓고, 가만히 무릎 위에 올려두었을 때 비로소 한 줄의 말씀이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너는 멈출 수 있느냐. 멈춰서 나를 신뢰할 수 있느냐. 내가 너를 위하여 싸우는 것을 잠잠히 바라볼 수 있느냐. 그 음성 앞에서 저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답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답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 안의 들끓는 소음을 가라앉혀야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의 작은 결심

오늘 하루, 어떤 결정이 내려져야 할 순간이 올 것입니다. 어떤 문장이 입에서 나가야 할 순간이 있을 것이고, 어떤 답장을 보내야 할 순간이 있을 것이며, 어떤 사람의 얼굴을 다시 마주해야 할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그 모든 순간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첫 번째 자세는 가만히 서는 일입니다. 두 발을 단단히 땅에 디디고, 마음 안의 들끓음을 잠시 가라앉히고, 그분의 일하심을 신뢰하는 자세.

그 자세에서 출발한 한 마디는 결코 같지 않습니다. 그 자세에서 내디딘 한 걸음은 결코 같지 않습니다. 멈춤이 있는 발걸음은 단단하기 때문입니다. 침묵을 거친 한 마디는 무게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서라는 그 음성이, 오늘 하루 우리 안에서 다시 들려오기를. 두려움 속에서도 두 발로 그 자리에 서서,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것을 바라보는 우리가 되기를 마음 깊이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