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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노트 — 흔들리지 않으려고 뿌리를 내리던 날들의 기록

sangkist

기도 노트를 꺼냈습니다. 표지가 낡았습니다. 모서리가 닳고, 몇 장은 구겨져 있습니다. 펼치면 날짜들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3년 전, 2년 전, 작년, 그리고 어제. 그 날짜들 옆에는 제가 썼지만 이제는 조금 낯선 글씨가 있습니다.

어떤 날의 기도는 짧습니다. “주님, 오늘도 지켜주세요.” 딱 그것뿐입니다. 어떤 날은 두 페이지를 꽉 채웠습니다. 무언가 절박했던 날이겠지요. 또 어떤 날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습니다. 빈 페이지가 그 자체로 그날의 기도였을 것입니다. 말로 꺼낼 수 없는 탄식, 롬 8:26이 말하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 성령의 기도를 기다린 날.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 로마서 8:26

기도 일기 노트 영성의 기록
기도 노트 — 흔들리지 않으려고 뿌리를 내리던 날들의 흔적

기도가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무릎을 꿇으면 잡념이 먼저 왔습니다. 오늘 할 일이 생각나고, 어제 못 한 말이 떠오르고, 내일이 걱정되었습니다. 그 잡념들 사이에서 하나님을 향해 말을 꺼내는 게 너무 어려웠습니다. 어떤 날은 5분을 못 버텼습니다. 기도를 마치면 왠지 실패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때 한 선배 신앙인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기도는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에요. 나타나는 것이 기도예요.”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나타남. 준비가 다 되지 않아도, 말이 정리되지 않아도, 그냥 그 자리에 오는 것. 그것이 기도라는 것.

그래서 기도 노트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문장을 다듬었습니다. 잘 쓴 문장으로 하나님께 아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날 것의 말들을 쓰게 되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무섭습니다.” “왜 이러십니까.” 그런 말들이 어느새 노트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날 것의 말들을 쓴 날이 오히려 하나님이 더 가까이 계신 것 같았습니다.

성경의 기도들도 그렇습니다. 시편의 기도는 종종 거칩니다. “어느 때까지니이까”(시 13:1), “주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나이까”(시 10:1). 다윗은 하나님께 정제된 신학 언어만 쓰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감정, 두려움, 분노, 절망을 그대로 아뢰었습니다. 그 솔직함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고 나는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짜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뿌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나무를 볼 때 우리는 줄기와 가지와 잎을 봅니다. 뿌리는 땅 아래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폭풍이 왔을 때 나무를 붙드는 것은 뿌리입니다. 기도도 그렇습니다. 기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를 내리는 행위입니다. 평온한 날의 기도는 고요히 땅속 깊이 내려갑니다. 그리고 폭풍 같은 날이 왔을 때, 그 뿌리가 우리를 붙듭니다.

기도하는 손 신앙의 뿌리
기도하는 손 — 보이지 않는 뿌리를 내리는 거룩한 행위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 시편 1:3

기도 노트의 몇 해 전 페이지들을 읽으면서 깨닫습니다. 그 절박하게 쓴 기도들이 다 어떻게 되었는지를. 어떤 것은 응답되었고, 어떤 것은 여전히 기다리는 중이고, 어떤 것은 내가 기도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이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응답받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기도들도 결국은 나를 더 깊은 곳으로 이끌었습니다.

기도는 결과를 받기 위한 수단만이 아닙니다. 기도는 그 자체로 하나님과의 동행입니다. 무릎을 꿇는 그 행위 안에, 손을 모으는 그 몸짓 안에, 말을 꺼내는 그 순간 안에 이미 하나님이 계십니다. 기다리는 기도, 울부짖는 기도, 감사의 기도, 침묵의 기도 — 모두 그 관계 안에 있습니다.

오늘도 기도 노트를 펼칩니다. 오늘의 날짜를 씁니다. 그리고 잠시 앉아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앉아 있습니다. 나타남.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나님은 완성된 기도보다 나타난 마음을 더 귀하게 보신다고, 오래된 이 기도 노트가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당신의 기도 노트에는 오늘 어떤 말이 적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