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씨앗을 심고 기다리는 농부처럼, 항구에서 배를 기다리는 아내처럼, 수술실 밖에서 가족을 기다리는 부모처럼. 기다림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경험이다. 그리고 신앙의 길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기다린다. 응답을 기다린다. 치유를 기다린다. 회복을 기다린다. 때로는 무엇을 기다리는지조차 모른 채, 그저 지금 이 계절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나는 기다림이 길었던 시절을 기억한다. 기도가 쌓이고 또 쌓였지만 하늘은 침묵했다. 성경을 읽어도 말씀이 생생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예배 자리에 앉았지만 마음은 멀리 있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 외로웠는지. 주변 사람들은 기도하면 응답받는다고 했지만, 나는 왜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없었다. 혹시 내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나를 외면하시는 것인지. 기다림은 때로 자신을 의심하게 만든다.
성경에는 기다림의 사람들이 많다. 아브라함은 25년을 기다렸다. 약속의 아들 이삭을 받기까지. 하나님이 “네 자손이 하늘의 별 같이,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이미 75세였다. 그가 이삭을 얻은 것은 100세였다. 25년의 기다림. 그 기간 동안 아브라함은 흔들리기도 했다. 이스마엘을 낳는 인간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결국 이삭이 태어났다.
요셉은 13년을 기다렸다. 구덩이에서 감옥까지, 그 어두운 길을 걸었다. 17살에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이 이루어진 것은 30살이었다. 형제들에게 팔리고, 보디발의 집에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 그가 억울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하나님, 당신은 어디 계십니까?”라고 외치지 않았을까.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 그 모든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와 함께 계셨다. 그리고 요셉의 모든 기다림은 결국 하나님의 더 큰 계획 안에 있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며 광야를 전전했다. 이미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었지만, 현실은 도망자였다. 아둘람 굴에서, 엔게디에서, 십 광야에서. 그러나 그 기다림의 시간에 시편의 절반이 태어났다. 고난이 없었다면, 그 아름다운 찬양들도 없었을 것이다. 기다림은 그를 더 깊은 예배자로 만들었다.
여호와를 기다리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 이사야 40:31
이 말씀에서 나는 주목한다. 기다리는 자가 받는 힘이 어떤 것인지를. 단순히 견디는 힘이 아니다. 독수리처럼 날아오르는 힘이다. 기다림은 소극적인 인내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적극적인 신뢰의 행위인 것이다. 히브리어로 기다린다는 단어는 ‘카바’인데, 이것은 줄이나 끈을 꼬는 것, 즉 단단히 붙들어 매는 이미지다. 기다림은 느슨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단단히 매여 있는 것이다.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것이 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비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 하나님은 그 침묵 속에서도 일하고 계셨다. 마치 씨앗이 땅속에서 발아하는 시간처럼. 겉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내부에서는 생명이 준비되고 있었다.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오듯, 기다림이 지나야 응답이 온다. 그 기다림은 우리를 준비시키는 시간이기도 하다. 응답이 왔을 때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되도록.
기다림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고백이다. 내 힘으로, 내 지혜로, 내 시간표대로 되지 않을 때, 그래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붙드는 것. 이것이 믿음의 기다림이다. 야고보서는 말한다.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으라. 농부는 씨앗을 심고 나서 수확을 강요하지 않는다. 땅을 갈고 물을 주고 기다린다. 하나님의 시간을 믿기 때문이다.
오늘도 기다리는 누군가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당신의 기다림은 헛되지 않다. 하나님은 당신의 눈물을 보고 계신다. 당신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 그분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여도, 그분은 결코 자리를 비우신 적이 없다. 그리고 그분의 때에, 반드시 오신다. 기다림 끝에 오시는 분이 있다. 그분이 오실 때, 우리는 왜 그토록 오래 기다려야 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 기다림이 우리를 더 깊이, 더 강하게, 더 아름답게 만들었음을. 유월의 하늘 아래, 오늘도 기다리며 기도한다. 그리고 그 기도 속에서, 이미 응답하고 계신 하나님을 만난다.
기다림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다. 한나다. 사무엘상 1장에서 우리는 아이를 간구하며 성전에서 기도하는 한나를 만난다. 그녀는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했다. 엘리 제사장은 그녀가 술 취한 줄로 생각했다. 얼마나 처절한 기다림이었으면, 그 기도의 모습이 그렇게 보였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 기다림을 기억하셨다. 한나는 사무엘을 낳았다. 그리고 그 아이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선지자가 되었다.
기다림에도 종류가 있다. 적극적인 기다림과 소극적인 기다림. 소극적인 기다림은 그냥 앉아서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적극적인 기다림은 기다리는 동안에도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요셉은 기다리는 동안 감옥에서 최선을 다했다. 보디발의 집에서도, 감옥에서도, 그는 맡은 일에 충실했다. 하나님은 그 성실함을 보셨다. 기다림의 시간은 낭비되는 시간이 아니다. 그다음 계절을 위한 준비의 시간이다.
기다림 끝에 오시는 분이 계신다. 그분은 늦지도, 이르지도 않으신다. 그분의 때는 완벽하다. 우리가 그 완벽한 타이밍을 이해할 수 없을 때에도, 그것은 사실이다. 아브라함이 마침내 이삭을 안았을 때, 25년의 기다림은 한순간에 이해되었다. 요셉이 형들 앞에서 자신을 밝혔을 때, 13년의 고통은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우리의 기다림도 언젠가 그렇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손 안에서, 우리 삶의 모든 조각들이 맞춰지는 그 날이 올 것이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나도 기다린다. 완전한 이해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신다. 그 사실 하나가 기다림을 견디게 한다. 기다리는 자에게 새 힘을 주시는 분, 독수리처럼 날게 하시는 분. 그분을 향하여, 오늘도 기도의 손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