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솔직하게 대답한다.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고. 알람을 끄고, 카카오톡을 확인하고, 뉴스 헤드라인을 훑고, 인스타그램을 열어본다. 그렇게 아침의 첫 십 분, 이십 분이 흘러간다. 침대를 벗어나기도 전에 우리의 주의는 이미 수십 개의 방향으로 분산되어 있다. 그 상태로 하루가 시작된다. 그 상태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앉으려 한다.
골로새서 3장 2절 말씀이 이 시대에 유독 날카롭게 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 골로새서 3장 2절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는 스마트폰도, SNS도, 유튜브 알림도 없었다. 하지만 그가 경고한 땅의 것들은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 앞에 있다. 오히려 그 형태가 훨씬 더 정교해지고 더 매력적으로 진화했을 뿐이다. 오늘의 땅의 것들은 우리의 손 안에 들어와 있고, 언제든 우리의 눈길을 끌려고 기다린다. 알림 하나가 뜰 때마다 우리의 시선은 자동으로 그쪽으로 향한다. 무의식적으로, 반사적으로.
위의 것을 생각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세상일에 무관심하라는 뜻으로 읽는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다. 바울은 그 앞 절에서 이미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실재다. 그 실재를 중심에 두고 살라는 것이다. 매일의 결정, 관계, 시간 사용, 말 한마디가 그 중심으로부터 흘러나오게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더 깊은 중심을 가지고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마트폰 사용 습관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침에 말씀보다 먼저 뉴스를 열면, 그날 하루의 중심이 뉴스가 될 위험이 있다. 기도보다 먼저 카카오톡을 확인하면, 그날의 첫 관심이 사람들의 말에 쏠린다. 우리가 하루 중 가장 먼저 무엇을 향하는지가 그날의 방향을 정하는 경우가 많다. 완벽하게 할 수는 없지만, 의도적으로 아침의 첫 시선을 위의 것을 향해 두는 연습이 필요하다.
실천적인 제안을 하자면 이렇다. 아침에 일어나서 스마트폰을 손에 들기 전에, 딱 오 분만 눈을 감고 앉아 있는 것. 어떤 특별한 기도 문구가 없어도 좋다. 그냥 오늘도 하나님 앞에 있다는 사실을 마음속으로 떠올리는 것. 그 짧은 순간이 하루 전체의 방향을 조금씩 바꾼다. 물론 오 분 뒤에 스마트폰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하루의 첫 순간만큼은 위의 것을 향해 있었다는 것, 그것이 쌓이면 달라진다.

골로새서 3장은 계속해서 구체적인 삶의 영역들을 이야기한다. 분노, 악의, 비방, 거짓말을 벗어버리고,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입으라고 말한다. 이것이 위의 것을 생각하는 삶의 모습이다. 추상적인 영성이 아니라, 일상의 말 한마디, 반응 하나에 드러나는 영성. 스마트폰을 보다가 누군가를 비교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일 때, 그 자리에서 위의 것을 떠올리는 것. 댓글을 달기 전에 잠깐 멈추고 이것이 위로부터 오는 말인지 아닌지를 묻는 것.
이것이 2026년의 우리에게 골로새서 3장 2절이 건네는 도전이다. 이 말씀은 스마트폰을 버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우리 삶의 중심이 되지 않게 하라고 한다. 위의 것이 중심이 될 때, 땅의 것들도 제자리를 찾는다. 스마트폰도, 뉴스도, SNS도, 우리 손 안에 있는 도구가 되지 주인이 되지 않는다. 그 질서가 회복될 때 우리는 이 복잡한 시대 안에서도 고요한 중심을 가지고 살 수 있다.
오늘 하루, 위의 것을 먼저 생각하는 작은 연습 하나씩을 더해가기를 바란다.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아침의 첫 오 분, 식사 전의 짧은 감사, 잠들기 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드리는 짧은 기도. 그런 작은 실천들이 골로새서 3장 2절의 말씀을 오늘 우리 삶에 살아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