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거절을 당하고
핍박과 조롱과 멸시를 당하는 이들…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하고
개종을 강요당하는 극한 상황 앞에서도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치지 않습니다.
로마의 박해 속에 고난을 참다못해
사단의 발 앞에 무릎 꿇어 버리거나
어찌할 바를 몰라 두려워하는
연약한 성도들을 향해 외치는 음성이 있습니다.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야고보서5:7-8)
성도가 고난을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은
고난을 참아낼 만해서 참는 것이 아니며
고갯길을 넘어가듯이
발등에 떨어진 고난이 눈 한번 찔끔 감으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다만 다시 오실 예수님의 강림입니다.
예수님의 다시오심은
농부가 확신하는 열매보다 더 확실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고난당하는 성도들을 향한 또 한번의 외침은
주의 이름으로 선포하며
고난과 오래 참음으로 본을 보였던 선지자들과
인내함으로 복을 받았던 욥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불순종하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며
완성될 거룩한 나라를 꿈꾸던 사람들…
이 선지자들로 참고 인내케 한 것은
이 땅에서 받아 누리는 어떤 복이 아니라
장차 임할 하나님의 나라의 임재였습니다.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약5:11)
고난 중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용기가 되고 본이 되는 욥의 고난 이야기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앞에서도
참고 이겨낸 욥에게 주신 결말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욥의 축복은
갑절의 재산을 받은 것과
그가 다시 얻은 자녀들에 관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작은 복에 불과하며
욥이 얻은 진정한 축복은 다른 것에 있었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이렇게 고백하던 욥이 다시 고백하는 말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42:5)
고난을 통해 욥이 얻은 것은 주를 아는 지식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희미하게 알고 있던 주님을
이제는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듯이 보았던 것입니다.
주님을 알아가는 것…
그 주님을 다시 만나는 것…
오늘을 이기게 하는 성도의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