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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묵상 콘텐츠 시대, 영적 분별은 어디에 있는가 — AI 시대 마음의 광야

AI 전문가

스마트폰을 켜는 순간, 우리는 이미 어떤 광야의 입구에 서 있다. 알고리즘은 우리에게 추천 묵상 콘텐츠를 한 줄로 늘어놓는다. 어제 우리가 어떤 영상에 머물렀는지, 어떤 글을 끝까지 읽었는지, 어떤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렀는지를 학습한 시스템은, 오늘 우리에게 가장 잘 ‘붙을’ 신앙 콘텐츠를 우선 노출한다. 그것은 친절한 일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영적 분별에 있어 가장 깊은 도전 가운데 하나다. 이 시대의 광야는 인적 없는 사막이 아니라, 추천 알고리즘이 빽빽이 채워 둔 화면의 무성한 시간 속에 있다.

AI 시대의 영적 분별은 단순한 콘텐츠 평가의 문제가 아니다. 콘텐츠 자체가 옳고 그른가의 차원을 넘어, ‘누가 나에게 이 콘텐츠를 골라 보여 주는가, 그리고 그 선별의 기준이 나의 영혼의 결과 맞닿아 있는가’의 차원이 함께 작동한다. 추천 시스템은 우리의 영적 성장이 아니라 우리의 체류 시간을 최적화한다. 더 머무를수록 더 잘 학습되고, 더 잘 학습될수록 더 정교하게 머무르게 만드는 루프. 그 루프 안에서 신앙은 자주 ‘선호’의 결로 환원된다. 좋아하는 본문, 좋아하는 강해, 좋아하는 분위기. 좋아함이 신앙이 되는 순간, 광야는 이미 사라진 것이다.

AI 시대의 알고리즘과 영적 분별 — 신경망 회로

이스라엘의 광야는 ‘좋아함’으로 들어선 자리가 아니었다. 출애굽기 16장의 만나는 ‘오늘 거둘 만큼만’ 거두라는 명령 아래 주어졌다. 더 많이 거두면 다음 날 벌레가 났다. 광야의 영성은 ‘오늘 분량’의 영성이다. 그러나 알고리즘의 시대는 다르다. 알고리즘은 우리에게 끝없이 다음 한 편, 다음 한 줄, 다음 한 영상의 만나를 권한다. 거두지 않으면 손해 보는 듯한 감각이 만들어진다. 그 감각이 만들어 내는 것이 정말 ‘만나’인가, 아니면 ‘다음 클릭을 위한 미끼’인가를 우리는 매일 분별해야 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로마서 12:2

로마서 12장 2절의 ‘분별’은 헬라어 도키마조(δοκιμάζω) 동사로, ‘시험을 통해 진짜를 가려낸다’는 의미를 가진다. AI 시대의 영적 분별은 콘텐츠를 ‘좋아함/싫어함’의 결로 가려내는 일이 아니라, ‘시험을 통해 본질을 가려내는’ 도키마조의 결로 다시 세워져야 한다. 알고리즘이 우리에게 친절하게 골라 준 한 편의 영상이, 정말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과 닿아 있는가. 그 질문 앞에 우리는 멈춰 서야 한다. 마음을 새롭게 함이 없이는 분별이 없다. 마음의 새로워짐은 알고리즘이 만들어 줄 수 없는 자리다.

구체적으로 몇 가지 영적 실천을 권한다. 첫째, 하루 한 번 ‘추천을 끄는 시간’을 가질 것. 모든 신앙 콘텐츠를 추천 큐레이션이 아니라 ‘스스로 고른 본문’으로 시작하는 시간. 단지 십 분이라도, 알고리즘이 골라 주지 않은 한 단락을 펴서 직접 읽는 시간. 둘째, 한 본문을 끝까지 읽는 훈련을 회복할 것. 알고리즘은 짧은 한 토막, 인상적인 한 줄로 자주 우리의 신앙을 ‘하이라이트’로 환원한다. 그러나 성경은 단편의 모음이 아니라 한 권의 흐름이다. 한 장을 통째로 읽고, 한 권을 끝까지 따라 읽는 훈련이 필요하다.

인공지능 시대의 디지털 빛

셋째, ‘AI에게 묵상을 외주하지 않을 것.’ AI에게 묵상문을 ‘써 달라’고 청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자기 영혼의 골방까지 외주할 수는 없다. AI가 작성한 묵상문은 본문의 표면을 정리해 줄 수는 있어도, 우리의 마음의 흙 속까지 들어가 한 줄의 말씀이 천천히 적셔지는 시간을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 AI가 정리해 준 텍스트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뿐, 도착점이 될 수 없다. 영적 분별의 도착점은 늘 ‘마음의 흙’ 안에 있다.

넷째, 공동체의 ‘느린 대화’를 회복할 것. 알고리즘은 우리에게 가장 빠른 답을 가장 매끄럽게 보여 준다. 그러나 영적 분별의 결은 자주 느린 대화 안에서 자란다. 같은 본문을 두고 서너 사람이 둘러앉아 십 분, 이십 분 머무르며 서로의 결을 듣는 자리. 그 자리에서 알고리즘이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는 한 가지가 일어난다. ‘다른 사람의 광야가 내 광야로 옮겨 오는 일.’ 신앙 공동체는 그렇게 서로의 광야를 잇는 자리다.

다섯째, 한 주에 한 번 ‘디지털 안식’을 시도할 것. 출애굽기 16장 만나의 마지막 결은 ‘안식일’이었다. 알고리즘 시대의 안식은 단지 콘텐츠를 끄는 일을 넘어, ‘추천이 작동하지 않는 시간’ 자체를 우리의 일주일 안에 한 자리 확보하는 일이다. 그 자리는 처음에는 어색하다. 알고리즘이 권해 주지 않은 시간을 우리가 어떻게 채워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어색함이 곧 광야의 결이다. 광야의 어색함을 잠시 견디면, 우리는 그 자리에서 알고리즘이 결코 만들어 줄 수 없는 한 결을 만난다. ‘오직 그분과 마주하는 결.’

마음의 광야 — 알고리즘 바깥의 정적한 자리

AI 시대의 신학적 과제는 ‘기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결 위에 영성의 결을 다시 새기는 것’이다. 알고리즘은 도구다. 도구는 자기 안에 영성을 만들지 못한다. 그러나 도구를 쓰는 손에 영성의 결이 새겨져 있으면, 그 도구도 영성의 결을 따라 길을 낸다. 추천 알고리즘이 우리에게 주는 한 편의 영상도, 우리가 도키마조의 결로 시험해 보고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에 맞닿아 있는 자리를 발견한다면, 그 영상은 알고리즘의 자식이 아니라 광야의 손길이 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권한다. 알고리즘이 우리에게 추천하는 콘텐츠 목록을, 가끔 의도적으로 ‘열지 않는 훈련’을 가질 것. 좋아 보이는 추천 한 편을 그냥 지나치는 훈련. 그 한 편을 지나치는 결의 자리에 한 줄의 말씀을 펴는 훈련. 작은 의도의 자리에서 큰 분별의 결이 자란다. 마음을 새롭게 함은 그렇게 작은 멈춤들의 합으로 자란다.

AI 시대 마음의 광야는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추천 큐레이션이 잠시 멈춘 한 자리, 우리가 직접 한 줄을 펴서 읽기 시작한 한 자리, 누군가의 광야가 내 광야로 옮겨 오는 한 자리에 있다. 알고리즘이 가장 정교해진 이 시대에 우리는 ‘오늘 분량의 만나’를 다시 거두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분의 손길은 알고리즘 바깥에도 여전히 머무신다. 우리의 영적 분별은, 그 손길을 알아보는 결을 회복하는 일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