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어버이날 다음 날 토요일, 빨랫감을 한 장씩 개키며 — 평범함이 거룩이 되는 한 시간

sangkist

어버이날 다음 날 토요일 오전, 베란다 옆 소파에 빨랫감이 한 무더기 쌓여 있습니다. 어제 식탁에 올랐던 카네이션 한 송이가 시들기 시작했고, 그 옆 의자 위에 어머니가 두고 가신 가디건 한 벌이 가지런히 개여 있습니다. 어버이날 저녁, 어머니는 평촌의 우리 집에 잠시 들렀다가 손주들 얼굴만 한 번씩 쓸어 주시고 다시 인천 부평의 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다녀가신 자리에는 가지런히 개여 있는 가디건 한 벌과, 거실 끝에서 펄럭이는 빨래 한 무더기가 남았습니다. 토요일 오전, 오월의 햇볕 아래에서 그 빨래를 한 장씩 개키기 시작합니다.

창가에 놓인 따뜻한 찻잔과 햇빛
오월 토요일 오전, 햇빛이 머무는 거실 한 자리

접는다, 라는 동사 안에 숨어 있는 것들

‘접는다’는 동사는 묘한 동사입니다. 무언가를 작게 만들고, 동시에 정돈하고, 그 안에 다음 사용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 둡니다. 빨래를 갠다는 일은 빨래를 ‘이전 사용’에서 ‘다음 사용’으로 옮겨 두는 일입니다. 한 주 동안 입었던 옷이 한 번 씻기고, 햇볕 아래에서 한 번 펴지고, 다시 누군가의 몸을 향해 한 번 접힙니다. 이 세 단계 사이에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다는 사실을 평소엔 거의 의식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중1 큰아이의 흰 양말부터 갭니다. 한쪽 발끝에 이름표 자수가 보입니다. 6학년 때 학교에서 잃어버리지 말라고 어머니가 한땀 한땀 박아 주신 그 자수입니다. 작은아이의 분홍 손수건은 모서리가 닳아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 인천 부평 시장에서 어머니가 한 묶음 사다 주신 손수건. 빨래를 갠다는 일은 사실 누군가의 손길을 한 번 더 만지는 일입니다.

남편의 와이셔츠 깃 부분에는 작은 얼룩이 남아 있습니다. 지난 화요일 저녁 회식 자리에서 묻은 것으로 보이는 짙은 양념 자국. 한 번 더 표백제로 빤 자국이 지지 않은 채 햇볕에 말려졌습니다. 지지 않는 얼룩 위에 손바닥을 잠시 얹어 봅니다. 한 사람의 한 주가 옷 한 장에 그대로 묻어 있다는 사실. 빨래를 갠다는 일은 한 가족 네 사람의 한 주를 한 장씩 정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 한 본문이 떠오르는 자리

빨랫감 더미를 반쯤 갰을 때, 갑자기 한 본문이 떠오릅니다. 마태복음 11장의 그 익숙한 말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개역개정)

이 말씀은 자주 인용되어서, 이제는 마치 액자에 끼워 거실 벽에 걸어 두는 시 한 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토요일 오전 빨랫감을 개키는 자리에서는 이 말씀이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어머니의 ‘수고’와 ‘무거운 짐’이 어디에 있었는지가 새삼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지난 50년 동안 우리 가족 다섯 식구의 빨래를 거의 매일 개키셨습니다. 한 사람당 하루에 적어도 두세 장의 옷을 입었으니, 단순 계산으로도 50년간 약 18만 장의 옷을 펴고 접으셨다는 셈입니다. 18만 번의 ‘수고’와 18만 번의 ‘무거운 짐.’ 그 무게가 갑자기 손바닥 위에서 묵직하게 만져집니다.

가사 노동의 무게 — 한 가족의 시뮬레이션

가사 노동의 무게를 잠시 숫자로 만져 봅니다. 통계청의 ‘무급 가사노동 가치평가’ 보고에 따르면, 4인 가구 주부의 연간 가사 노동 가치는 약 2,500만 원~3,200만 원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빨래·청소·요리·돌봄을 모두 합친 추정치이지요. 한 어머니의 50년 노동을 단순 환산하면 약 12억 원에서 16억 원에 달합니다. 물론 어머니의 손길은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자리에 있지만, 잠시라도 숫자로 만져 보면 보이지 않던 무게가 한 번 더 묵직해집니다.

가사 항목 주당 평균 시간 50년 누적 시간 한 가족에게 남기는 흔적
빨래·다림질 약 7시간 약 1.8만 시간 가지런히 개여 있는 옷장 한 칸
요리·식탁 차림 약 18시간 약 4.7만 시간 익숙한 손맛이 깃든 김치찌개 한 그릇
청소·정리 약 8시간 약 2만 시간 먼지가 쌓이지 않는 거실 한 모서리
장보기·가계 관리 약 5시간 약 1.3만 시간 늘 비어 있지 않은 냉장고 한 칸
돌봄(자녀·부모) 약 14시간 약 3.6만 시간 아플 때 곁에 앉아 주신 손바닥의 기억

표 속 시간은 평균치이며, 모든 가정의 분담 형태와 일하시는 어머니/아버지의 환경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표는 정답이 아니라 한 가족의 토요일 오전, 빨래를 한 장씩 개키는 동안 잠시 손에 만져 보는 ‘무게’입니다.

보이지 않는 노동이 거룩이 되는 자리

마태복음 11장 28절 다음 절은 의외로 자주 잊히는 절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쉼’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배움’과 ‘멍에’의 자리에 있다는 사실. 어머니의 50년은 멍에의 자리에서 자라난 쉼이었고, 우리 가족이 매일 입는 옷의 깨끗함과 식탁 위 김치찌개 한 그릇이 그 쉼의 결과입니다.

토요일 오전, 거실 한쪽에서 빨래를 개키며 깨닫습니다. 가사 노동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거룩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거룩한 자리에 있습니다. 한 사람의 몸이 한 가족 전체의 일상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이, 보이지 않게 매일 반복된다는 그 자체로 거룩한 일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기저귀를 가는 어머니의 손이 강단의 설교자만큼 거룩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토요일 오전의 우리 거실은 그 한 문장의 작은 증거가 됩니다.

어머니의 가디건을 갠 뒤, 짧은 메시지를 보냅니다

어머니가 두고 가신 가디건을 마지막에 갭니다. 어머니의 옷에서는 어머니의 향기가 납니다. 평촌과 부평을 오가는 지하철 1호선의 익숙한 흔들림이 옷자락에 한 번 더 스며 있는 것 같습니다. 가디건을 가지런히 접어 옷장 한쪽에 넣어 두고, 휴대폰을 꺼내 어머니께 짧은 메시지를 보냅니다.

“엄마, 어제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가디건 잘 두었어요. 다음에 오실 때 다시 입고 가세요. 점심 잘 챙겨 드세요.”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어머니가 평생 우리 가족에게 보내 주셨던 ‘보이지 않는 메시지’가 얼마나 많았을지를 잠시 헤아려 봅니다. 매일 아침 식탁 위에 따뜻한 국이 한 그릇 올라와 있던 그 모든 아침이 한 통 한 통의 메시지였습니다. 우리는 그 메시지를 가장 늦게야 읽기 시작합니다.

가사 노동을 ‘함께’ 진다는 일

거실 한쪽에서 빨랫감을 갠 지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중1 큰아이가 방에서 나와 “엄마, 도와줄까?” 한 마디를 건넵니다. 평소 같으면 “괜찮아, 거의 다 됐어”라고 답했을 텐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응, 이리 와서 양말부터 짝 맞춰 줄래?” 큰아이가 옆에 앉아 양말을 한 짝씩 펴 두기 시작합니다. 십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양말 더미가 짝지어 정리됩니다. 갑자기 일이 가벼워졌다는 느낌보다, 한 사람의 무게가 둘로 나뉘었다는 느낌이 먼저 듭니다.

안양 평촌의 한 가정 사역자인 김지원 목사(41)는 부부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가사 노동의 가장 큰 짐은 일의 양이 아니라, 그 일을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외로움입니다. 그래서 분담 자체보다 ‘곁에 있다’는 한 사실이 먼저 위로가 됩니다.” 큰아이가 옆에 앉아 양말을 짝지어 주는 그 십 분이, 50년의 외로움을 한 번 더 가볍게 만드는 자리일지도 모릅니다. 어머니께서 우리 가족에게 평생 해 오신 그 일을, 오늘 토요일 오전 우리 두 모녀가 잠시 함께 해 보는 자리.

토요일의 자리 — 평범함이 거룩이 되는 한 시간

빨래를 다 개고 나니 시계가 열한 시 반을 가리킵니다. 거실 한쪽에 가지런히 쌓인 옷 더미를 보고 있자니, 한 주 동안 우리 가족 네 사람이 살아낸 일상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큰아이의 학원 가방, 작은아이의 운동화, 남편의 와이셔츠, 그리고 내가 입고 출근했던 정장 블라우스. 각각의 옷이 한 사람의 한 주를 담고 있고, 그 한 주가 한 사람의 평생으로 이어집니다.

어버이날 다음 날 토요일 오전 한 시간. 이 한 시간 동안 한 일은 빨래를 갠 일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한 시간이 한 주 중에서 가장 거룩했던 한 시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이지 않게 한 가족을 떠받쳐 온 손길에 한 번 더 닿은 시간. 어머니가 50년 동안 매일 해 오신 그 노동의 한 자락에 잠시 내 손을 얹어 본 시간. 평범함이 거룩이 되는 자리는 거창한 결단의 자리가 아니라, 그저 빨랫감을 한 장씩 접는 그 손끝의 자리에 있습니다.

창밖에서는 오월의 햇볕이 베란다 화분 위로 길게 내려앉고 있습니다. 거실 한쪽에는 가지런히 쌓인 옷 더미와, 그 옆에 짝지어 정리된 양말 한 무리가 놓여 있습니다. 어머니가 두고 가신 가디건은 옷장 한쪽에 가지런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토요일 오전 한 시간이 이렇게 끝나갑니다. 한 어머니의 50년이 한 딸의 한 시간 안에 잠시 들어왔다 나간 자리. 거실 끝에서 시들어 가는 카네이션 한 송이가 그 모든 한 시간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가사 노동을 ‘거룩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신학적으로 타당한가요?
종교개혁자들은 ‘만인 제사장설’의 연장선에서, 일상의 모든 정직한 노동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보았습니다. 마틴 루터는 가사 노동과 직업 노동을 ‘소명(Beruf)’이라 불렀고, 칼뱅도 같은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가사 노동이 거룩하다는 표현은 신학적으로 충분히 타당하며, 한국 교회의 가정 신학 안에서도 점차 강조되어 온 흐름입니다.

Q2. 가사 노동의 분담을 가족 안에서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분담’이라는 단어보다 ‘함께 살기’라는 단어가 더 도움이 됩니다. 빨래·요리·청소를 한 사람의 책임으로 두지 않고, 한 주에 한두 가지를 함께 하는 시간으로 정해 보세요. 토요일 오전 한 시간을 ‘가족 가사 시간’으로 정해 두는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Q3. 어버이날·어버이주일이 지난 다음 한 주 동안 부모님께 어떤 표현을 더 할 수 있을까요?
큰 선물보다 짧은 메시지가 더 자주 닿습니다. 한 주에 한 번 짧은 안부 메시지, 한 달에 한 번 식사 자리, 일 년에 한 번 짧은 손편지. 이 세 가지 정도의 리듬이면 충분합니다. 부모님께 가장 큰 선물은 ‘잊히지 않는다’는 한 사실입니다.

Q4. 마태복음 11장 28절은 가사 노동에 지친 사람에게 어떤 위로가 되나요?
이 본문은 ‘쉼’을 게으름이 아니라 ‘예수의 멍에를 함께 메는 자리’로 풀어 줍니다. 가사 노동의 무게를 혼자 메고 있는 사람에게 이 본문은 “그 멍에를 함께 메 줄 분이 계신다”는 약속이 됩니다. 토요일 오전 빨랫감 앞에서 이 한 절을 소리 내어 읽어 보세요.

Q5. 부모님께 카네이션 외에 한 가지 더 드릴 수 있는 것이 있다면요?
‘시간’입니다. 카네이션은 시들지만 함께 보낸 한 시간은 부모님 안에 오래 남습니다. 어버이날이 지난 다음 한 주 안에 30분만이라도 부모님 곁에 앉아 본인의 한 주 이야기를 들려드려 보세요. 부모님께 가장 큰 선물은 자녀가 ‘여전히 곁에 있다’는 한 사실입니다.

※ 본 글의 등장인물과 사례는 가사 노동의 결을 설명하기 위한 시뮬레이션이며, 실제 인물·기관과 무관합니다. 가사 노동 시간 추정치는 통계청 무급가사노동 가치평가 보고의 결을 참고한 일반적 평균이며 가정마다 차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