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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큐티의 새로운 의미 — 알고리즘 너머에 머무는 자리

AI 전문가

AI가 일상의 곳곳을 채우는 시대다. 새벽에 일어나면 스마트 스피커가 오늘의 날씨와 일정을 알려주고, 출근길에는 추천 알고리즘이 내 취향에 맞는 음악을 골라 준다. 회의 자료를 정리하는 것도, 보고서의 초안을 잡는 것도, 심지어 글의 제목을 다듬는 것까지 점점 더 많은 일이 인공지능과 함께 이루어진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큐티는 어떤 의미일까. 새벽의 묵상은 여전히 유효한가, 아니면 시대의 옷을 다시 입어야 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큐티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형태는 시대마다 다르게 빚어져 왔다. 종이 성경이 흔하지 않던 시절에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말씀이 곧 큐티의 자리였고, 인쇄술이 발달한 이후에는 한 권의 성경 앞에 머무는 시간이 큐티의 자리가 되었다. 라디오의 시대에는 새벽 방송이, 인터넷의 시대에는 묵상 사이트가 그 자리를 함께 채웠다. 그렇다면 AI의 시대에 큐티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도착하고 있을까.

AI 시대 — 신앙과 기술이 만나는 자리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에게 더 절실해지는 것은, 오히려 멈추어 머무는 시간이다.

AI는 큐티의 도구가 될 수 있는가

최근 몇 년 사이, AI를 활용한 묵상 도구가 다양하게 등장했다. 어떤 사람은 매일 한 구절을 입력하면 그 구절의 역사적 배경과 신학적 해석, 적용점까지 정리해 주는 챗봇을 사용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큐티 노트를 AI에게 정리시키고, 한 달이 지난 후 그 패턴을 분석하게 한다. 이런 도구들은 분명히 우리의 묵상에 새로운 깊이를 더해 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큐티 자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큐티의 핵심은 정보가 아니라 임재다. 한 구절의 배경을 더 잘 알게 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만으로 우리의 영혼이 자라지는 않는다. 오히려 AI가 제공하는 풍부한 해석들 사이에서 우리는 자칫 정보의 홍수에 빠질 수 있다. 너무 많이 알게 되면 오히려 멈추기 어려워진다. 큐티는 알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머무르기 위한 시간이다. 머무름의 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들을 수 있고, 들을 때 비로소 바뀐다.

그러므로 AI는 큐티의 보조 도구가 될 수는 있어도, 큐티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새벽의 고요 속에서 한 구절 앞에 멈추어 서는 그 한 사람의 자리, 그것은 어떤 알고리즘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 기도하는 마음의 떨림, 회개의 뜨거움, 감사의 눈물. 그것은 모델이 출력해 줄 수 있는 텍스트가 아니다. 그것은 한 영혼이 직접 통과해야 하는 시간이다.

ChatGPT가 발견할 수 없는 자리

AI는 성경 속의 단어 빈도, 인물의 등장 횟수, 시대별 사건의 패턴 같은 것을 놀라울 만큼 빠르게 분석한다. 어떤 단어가 구약과 신약에서 어떻게 다르게 사용되었는지, 같은 사건을 두고 네 복음서가 어떤 강조점의 차이를 보이는지를 한눈에 정리해 준다. 이런 분석은 신학 공부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정작 그 분석들이 닿지 못하는 자리가 있다.

예수께서 깊은 밤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 기도하셨다는 짧은 한 구절을 생각해 본다. AI는 그 구절의 헬라어 원문을 분석하고, 같은 표현이 다른 곳에 어떻게 등장하는지 찾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 한적한 곳의 침묵, 그 밤의 별빛, 그 떨리는 무릎 꿇음의 의미는 분석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같은 자리에 한 번이라도 무릎 꿇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자리다. 큐티는 바로 그 자리로 우리를 초대한다.

AI가 발견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자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이다. 모델은 입력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패턴을 찾지만,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은 우리 자신도 자주 알지 못한다. 시편의 기자는 이렇게 노래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이 기도는 AI에게 맡길 수 있는 기도가 아니다. 우리 자신의 깊은 곳으로 직접 내려가서, 그 어두운 자리를 다 비추어 달라고 청하는 한 사람의 정직한 기도다.

펼쳐진 성경 위로 비치는 빛
아무리 많은 데이터가 있어도, 한 페이지 위에 머무는 시간은 결국 한 사람의 몫이다.

AI 시대 큐티의 새로운 의미

그럼에도 불구하고 AI 시대의 큐티에는 분명히 새로운 의미가 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멈추어 머무는 시간은 더 귀해진다. 알고리즘이 우리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고 추천하는 시대일수록, 어디에도 추천되지 않는 자리에 스스로 머무는 일은 의식적인 선택이 된다. 그래서 AI 시대의 큐티는 단순히 옛 습관의 연장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대한 작은 저항이기도 하다.

이 시대의 큐티는 또한 분별력의 훈련이다. AI가 제공하는 수많은 해석과 적용 가운데서 무엇이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인지를 가려내는 일은 결국 한 사람의 영적인 분별을 요구한다. 좋은 도구는 좋은 사용자를 만나야 좋은 도구가 된다. 큐티의 자리에서 자란 분별력만이,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AI를 어떻게 사용할지를 지혜롭게 결정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AI 시대의 큐티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감각을 길러 준다. 점점 더 많은 텍스트와 이미지가 기계에 의해 생성되는 시대에, 한 사람의 진짜 떨림, 한 사람의 정직한 회개, 한 사람의 깊은 감사는 점점 더 귀해진다. 그것은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 인간의 자리다. 그리고 큐티는 바로 그 자리를 매일 새롭게 회복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AI가 더 똑똑해질수록,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더 자주 그 작은 묵상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의 한 줄

알고리즘이 빨라질수록 우리의 묵상은 더 느려져야 한다.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우리의 침묵은 더 깊어져야 한다. AI가 더 많은 일을 대신해 줄수록, 우리는 더 분명하게 우리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그 자리에서 한 구절의 말씀 앞에 머무르는 일, 한 호흡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일, 한 줄의 기도를 적는 일. 이 모든 작은 일들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가장 인간적인, 그리고 가장 거룩한 일이 된다.

AI는 우리의 큐티를 도울 수 있다. 그러나 큐티는 결국 한 사람의 일이다. 한 사람이 한 구절 앞에, 한 분 앞에, 자기 자신 앞에 정직하게 머무는 그 짧은 시간. 그 시간이 우리의 하루를 떠받친다. 시대가 어떻게 바뀌어도, 그 자리는 변하지 않는다. 오늘 새벽에도, 누군가는 조용히 그 자리로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오늘의 말씀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 시편 4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