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여성 선교사들이 목자로써 얼마나 신실하든, 우리는 여전히 여자이며, 남자들도 우리를 여자로서 볼 것이다.
사역지에서: 남자들이 접근할 때
Joe Moreno에 의해 전도 받아 주님께 나아온 한 남자가 있었다. 독일에서 볼리비아로 이민 온 이 새 신자는 Joe Moreno에게 성경을 배우기 위해 볼리비아의 Robore에 있던 우리 엔티엠 선교 본부를 자주 들렀다. 그는 Joe Moreno 와 함께 정글 탐사 여행까지도 한 번인가 두 번인가 다녀오기도 했다 (이때는 아요레 인디안들과의 접촉을 위해 정글 속으로 들어갔던 5명의 엔티엠 선교사들이 실종되고, 그들의 생존 여부를 알기 위해 정글수색을 하던 때이다. 몇 번의 정글 수색 후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하자 볼리비아 정부에서는 실종된 선교사들의 생존을 알기위한 수색을 포기했으나 평생 자신의 부족함을 이유로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기를 거절하고 일생동안 참 선교사의 삶을 살았던 Joe Moreno는 단독으로 정글수색을 계속하였다). 이 새 신자는 Joe Moreno 없을 때에도 선교본부를 계속 방문했다. 표면상으로는 그가 영적인 것에 매우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다른 자매들보다 스페인어가 서툴렀기 때문에 고지식하게 그의 모든 질문에 대답해주곤 하였다. 그리고 그의 방문의 실제 목적이 영적인 것에 관한 것이 아닌 것을 거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대화의 주제를 영적인 것에서 시작하여 곧 영어에 관한 이야기나 미국에 관한 것, 그리고 나에 관한 것들로 쉽게 바꿨다.
이 사람은 주님께서 나에게 실질적인 교훈을 가르쳐 주시는데 사용하셨던 사람이었다. 이 남자는 자신의 영적인 성숙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나와의 관계를 추구하였다. 후에 그의 긴 연애 편지에서 그는 자신이 주님을 영접하겠다고 고백하기 전부터 내가 거리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것을 그늘에서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Joe Moreno와 함께 정글수색을 다녀 온 것도 단지 나의 남편인 Bob이 죽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음을 밝혔다. (볼리비아의 Robore에서 사역하던 당시 노방 전도시에 Jean 선교사님은 찬송가를 아코디언으로 연주하였다.)
나는 역겨웠다. 그동안 그의 동기도 모르면서 그를 격려했었다. 나는 나의 서신을 그가 갖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확신하여 그에게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그가 올 때마다 냉정하게 대했고 나의 태도는 효과가 있었다.
많은 나라의 남자들은 외국 여자들에게 칭찬을 하며 접근한다. 대부분 남자들은 이 외국 여성들이 결혼한 여성이든, 결혼하지 않은 독신 여성이든 상관하지 않고 접근한다. 때때로 여성들은 이와 같은 관심을 보이는 남성들이 크리스챤인 경우에는 우쭐해한다.
그럼으로 종종 우리가 듣는 질문은 “ 주위에 남자가 접근할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다. 보통 이런 경우에 문제가 되는 것은 외국여성에게 접근하는 불신 남성의 경우이다.
이런 경우 먼저 생각해야할 것은 당신의 삶이 선한증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여성이 혼자 있을 때는, 결혼한 여성이나 독신여성이나, 남성을 자기의 집으로 들어오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 남성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면 여성이 둘이 있다 해도 상황이 더 나아지지는 않는다.
많은 문화권에서 남성들은 혼자서 여성 선교사의 집을 방문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그 여성 선교사가 그 마을에서 신뢰와 존경을 얻었다면 그 선교사에게는 문화적으로 예외가 허용될 것이다. 한 예를 들면 라틴 아메리카 한 작은 마을의 집의 문은 길 쪽을 향해 열려져 있다. 그리고 새로 이사 온 사람이 있으면 모든 동네 사람들이 그 집에 들러서 인사하는 것이 관습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인사하러 온 방문객이 남자임으로 인사차 방문한 그 남자를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문 앞에서 돌려보냈다면 이것은 당신이 그 마을 전체의 뺨을 때리는 것을 의미한다.
때로는 남성이 당신의 집을 방문하도록 초청해야 하는 때도 있다. 만약에 그가 진리를 갈망하고 있다면 그는 기꺼이 당신의 집을 방문할 수 있도록 환영 받아야 한다(선교지에는 선교사의 집 이외에는 성경을 공부할 수 있는 장소가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진리를 갈망하고 있는 가를 즉각적으로 항상 분별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당신이 남성을 집으로 들어오도록 하였다면 행인들이 볼 수 없도록 문을 닫고 단 둘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만약 남자를 처음부터 초청해야 할 수밖에 없다면 순전히 “업무적인 냉정한” 태도로 대하여야 한다.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 그것은 복음으로 영혼을 찾아오는 일이다. 이것은 대화가 당신 자신이나 당신의 고국에 대한 사적인 대화로 흐르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뜻이다. 이런 문제는 미혼이든 기혼이든 간에 매우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당신은 옷차림이나 웃음소리 그리고 목소리나 몸가짐 등에도 조심해야 된다. 특히 미혼 여성은, 여성의 감정이 주로 신체접촉으로 자극되는데 비해 남성의 감정은 보는 것만으로도 자극된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 남성이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이 심리적 현상은 세계 공통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여성의 부주의한 모습 – 도발적인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 허리를 굽히는 모습, 긴 의자에 느슨하게 앉아 있는 모습, 또는 신체의 어느 부분이 밖으로 노출되어 보이는 모습 등은 부적절하다는 말 이상으로 문제가 있는 모습이다.
자, 그러면 남성이 방문했을 때, 당신의 할 일은 하나님의 기준에 맞게 당신의 태도를 갖추는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남성 한 사람이 혼자 있는 여성을 방문할 때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남성이 두 명의 여성을 방문할 때도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할 가장 필수적인 사항으로 받아들여야한다. 만약 당신이 그들에게 의자를 주어 앉게 하거나, 또는 집안일을 이 일 저 일 하면서 이야기 한다면, 그들은 당신에 대해서 아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그들은 확실히 더 오래 머물거나 더 자주 찾아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당신이 그런 식으로 대했다면, 그것은 순전히 업무적인 입장에서 볼 때 방문객에 대해 오히려 더 역겹도록 무례하게 행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Joe Moreno 가 낯선 방문객과의 대화에서 좋은 예를 우리에게보여주었다. 한 번은 꽤 술이 취한 한 사업가가 Joe Moreno를 만나러 온 적이 있었다. 우리가 Joe Moreno 에게 그 사람을 만나도록 하도록 했다. Joe가 말하길,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왔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복음을 들으려고 찾아 왔을지도 모르겠군요.” 그 후 네 시간이 지난 후 그 사람은 온전한 정신이 되어 구원의 믿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처럼 그가 정말 영적인 갈급함이 있어서 찾아 왔다면, 그는 주님을 만나서 생수를 얻고 영적인 목마름을 해결하여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다른 어떤 동기를 갖고 찾아 왔다면,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것을 말할 때에, 그는 포기하고 돌아갈 것이다.
Joe Moreno는 로베레의 한 작은 모임에서 우리에게 남성들의 방문을 환영하는 일에 대히여 경고했다. “당신들 여자들은 여자들을 만나 웃으며 반갑게 대하는 것처럼 남자들을 만나서 그렇게 똑같이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찾아오는 사람들을 기쁘게 맞이하는 일, 작별할 때 미소와 함께 악수하는 일 등이 그들을 또 방문해주기를 은근히 암시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Joe의 경고를 크게 받아들여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일단 Joe의 충고를 따르기로 했다. 그래서 남자들과 이야기할 때는 웃음을 절제하기로 했다. 물론 이 일은 어느 정도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우리는 남자들을 대할 때 미소를 절제했던 만큼을 그들의 부인을 만날 때 쏟아 부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우리가 철길 주변에 출몰하는 아요레 인디안을 접촉하기 위해 철길 주변을 오르 내리며 일을 계속 하고 있을 때였다. Joe의 사역을 돕는 어느 볼리비아 남자 한 사람이 나의 동역자로 들어온 신입 선교사에 대해 이런 부탁을 하였다. “저 신입 선교사에게 나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 웃지 좀 말아달라고 이야기 해주시겠습니까?“
그가 나에게 이런 말을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이미 내가 오래전부터 남자들을 보고 필요 이상으로 친절해서는 안 되는 Joe의 교훈을 실천하고 있었던데 대한 칭찬으로 느껴졌다. 그는 말을 계속 했다. “당신들 여자 선교사들 때문에 내가 이 철도국 불신자들에게 얼마나 구박을 받는지 이해하지 못하실 겁니다.” 비록 그의 부인이 우리 철로 변 캠프에 함께 살고 있었음에도우리의 웃는 자유가 그에게는 ‘훼방거리’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산호세에 사역하고 있을 때, 나는 어떤 남자에게 우리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내가 Dorothy Dye(엔티엠의 최초의 5명의 순교자 중의 한 사람인 Bob Dye의 형의 미망인)와 함께 동역하고 있었을 때인데, 한 남자가 자주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는 악수를 해도 일부러 시간을 길게 끌면서 손을 잡고 흔들었다. 나는 그가 복음을 들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가 던지는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해서도 대단히 사무적으로 대했다. Dorothy는 내가 왜 그러는지 잘 몰라 어리둥절해 있었다. 그러나 어느날 그 남자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제가 부인을 사랑하는 것도 죄가 됩니까?”
“분명히 그렇지요” 나는 그가 자기 본심을 더 말하려는 것을 막으며 말했다. 그리고 간음죄를 지은 자들이 갈 곳에 대해 기록된 요한계시록 21:8의 말씀을 얼른 인용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요한계시록 21:8)
“하지만, 부인은 지금 자유로운 몸이지 않습니까?” 그가 말했다.
한번은 Dorothy가 로베레에 가서 없을 때 그가 집으로 찾아 왔다. 저녁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때였다.
“안녕하세요?” 들어오라고 하는 대답을 기대하며 그가 말했다
.“복음에 관한 글을 쓰려고 하는데 자료를 좀 얻으려고 찾아왔습니다.”
“예, 안녕하세요?” 나도 답례로 인사를 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집안에는 한 발짝도 발걸음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했다. “지금은 집에 손님이 오시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시간입니다.” 내가 계속 말했다. “벌써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그는 내 말의 뜻을 이해하고 점잖게 돌아갔다. 물론 나는 그를 들어오게 하고, 옆집 여자를 불러 함께 있을 수도 있었다. 아마 의사를 부른 경우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처럼 방문한 이유가 명백히 개인적인 것일 경우에는 서성거리도록 놔두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했을 때, 그 남자도 ‘글을 쓰기 위한 자료’를 얻기 위해 뜸들이는 것을 일찌감치 포기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