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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나요? — 하박국과 함께 묻다

바이블 Q&A

안녕하세요, 바이블 Q&A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또 신앙생활을 하다가 생기는 질문들을 함께 풀어 가는 시간입니다. 오늘의 질문은 많은 분들이 보내 주신 질문이면서, 사실 저 자신도 오래 붙들고 있던 질문입니다.

Q. 간절히 기도하는데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나요?

“몇 년째 같은 제목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이 닫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듣고 계신지, 아니 계시기는 한 건지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런 의심이 드는 제가 잘못된 걸까요?”

먼저 이 말씀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그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 한가운데 있는 질문입니다. 성경은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을 책망하지 않고, 그의 이름으로 책 한 권을 남겨 두었습니다. 바로 하박국입니다.

A. 하박국도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하박국은 주전 7세기 말, 유다가 안에서는 불의로 썩어 가고 밖에서는 바벨론의 위협이 커져 가던 시대에 살았던 선지자입니다. 하박국서는 특이한 책입니다. 다른 선지서들이 하나님이 백성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면, 하박국서는 선지자가 하나님께 따져 묻는 말로 시작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 하박국 1:2

어느 때까지리이까.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선지자의 기도입니다.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신다는 항의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 본문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정직한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침묵을 향한 부르짖음도 기도라는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는 촛불
하박국은 어두운 시대 한가운데서 하나님께 정직하게 물었습니다.

Q. 그래서 하나님은 대답하셨나요?

대답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대답이 하박국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내가 바벨론을 일으켜 유다를 심판하겠다. 하박국은 귀를 의심했을 것입니다. 유다가 아무리 악해도, 바벨론은 그보다 더 악한 나라가 아닙니까. 어떻게 더 악한 자를 들어 덜 악한 자를 치신다는 말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배웁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깨어질 때, 그 대답이 우리가 기대한 대답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침묵보다 응답이 더 어렵다는 것을 잊습니다. 하박국은 두 번째 질문을 던지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리라.

파수꾼처럼 서서 기다리겠다는 것입니다. 이해되지 않는 대답 앞에서 떠나지 않고, 더 들으려고 자리를 지키는 것. 하박국서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기도의 두 번째 자세입니다.

Q. 기다리면 무엇을 받게 되나요?

하나님은 파수꾼의 자리에 선 하박국에게 두 가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는 묵시입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하나님의 시간표가 있다는 약속입니다. 더딘 것과 없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가 침묵이라 부르는 시간의 상당 부분은, 사실 아직 오지 않은 응답이 오고 있는 시간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유명한 구절입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훗날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와 히브리서가 세 번이나 인용하고, 종교개혁의 불씨가 된 문장이 바로 이 침묵의 한가운데서 주어졌습니다. 응답을 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것. 그것이 침묵의 계절에 하나님이 우리 안에 빚으시는 삶의 방식입니다.

고요한 밤하늘에 펼쳐진 별들
가장 어두운 밤에 별이 가장 선명하게 보입니다.

Q. 하박국의 마지막은 어떻게 되었나요?

하박국서 3장은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앙고백 중 하나로 끝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하박국의 상황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은 여전히 오고 있었습니다. 바뀐 것은 하박국 자신이었습니다. 어느 때까지냐고 묻던 사람이,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기뻐하겠다고 노래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침묵의 시간이 그를 빚은 것입니다.

Q. 침묵의 시간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실천적인 제안을 덧붙입니다. 첫째, 기도 일지를 쓰십시오. 하박국은 자신의 질문과 하나님의 대답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기록은 침묵의 시간을 견디는 파수대입니다. 몇 달 뒤에 다시 읽으면, 침묵인 줄 알았던 시간 속에 있었던 작은 응답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둘째, 공동체 안에 머무르십시오. 침묵의 계절에 가장 위험한 것은 고립입니다. 내 기도가 막힌 것 같을 때,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하늘을 여는 경우가 많습니다. 셋째, 이전에 받은 은혜를 자주 복기하십시오. 하박국 3장에서 선지자는 출애굽의 하나님을 길게 회상한 뒤에야 그 유명한 고백에 도달합니다. 과거의 신실하심이 현재의 침묵을 해석하는 열쇠입니다.

마지막으로, 침묵이 너무 길고 무거워서 마음이 무너질 것 같다면, 목회자나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의 선배에게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함께 묻는 질문은 혼자 묻는 질문보다 가볍습니다.

정리하며 — 침묵을 지나는 분에게

질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나요. 저는 모든 침묵의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그것을 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다만 하박국서가 보여 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침묵은 부재가 아니라는 것. 정직한 질문은 불신앙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침묵의 계절을 파수꾼처럼 통과한 사람은, 응답보다 더 큰 것, 곧 하나님 자신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응답 없는 기도를 붙들고 계신 분이 있다면, 하박국처럼 기도하셔도 됩니다. 어느 때까지입니까, 하고 물으셔도 됩니다. 다만 묻고 나서, 파수하는 자리에 서 계시기 바랍니다. 정한 때는 반드시 옵니다. 더딜지라도, 지체되지 않습니다.

덧붙여, 하박국이라는 이름의 뜻에 대해 한 가지만 더 나누고 싶습니다. 학자들은 이 이름이 껴안다라는 뜻의 히브리어에서 왔다고 봅니다. 질문으로 시작한 책의 주인공 이름이 껴안는 자라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과 씨름하듯 물었던 그 시간이, 결국은 하나님을 더 깊이 껴안는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질문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 질문도 기다리겠습니다. 여러분의 정직한 물음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필요한 강해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