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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일기 — 젖은 날들에도 뿌리는 자란다


칠월의 첫 월요일.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어제도 내렸고, 그제도 내렸다. 일기예보는 이번 주 내내 비 소식이라 한다. 장마가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창가에 앉아 오래 빗소리를 들었다. 빗소리는 이상하다. 시끄러운데 고요하다. 세상의 다른 소리들을 다 지우고, 저 혼자 남아서, 오히려 마음을 조용하게 만든다. 젖은 유리창 너머로 골목이 흐릿하다. 우산 하나가 천천히 지나간다.

빗방울이 맺힌 유리창 너머의 흐린 하늘
빗방울이 맺힌 창은 세상을 흐리게 하지만, 마음은 오히려 맑아진다.

장마철이 되면 마음도 눅눅해진다. 빨래는 마르지 않고, 신발은 축축하고, 하늘은 몇 날 며칠 낮게 내려앉아 있다. 해가 그립다. 뽀송한 것들이 그립다. 그런데 올해는 이 젖은 날들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기로 했다.

며칠 전, 화분을 내다 놓았다가 알게 된 것이 있다. 봄내 시들시들하던 로즈마리가 장마 들어 부쩍 자랐다. 해도 없는데, 빛도 부족한데, 줄기가 굵어지고 새잎이 돋았다. 식물을 아는 이에게 물으니 이렇게 말했다. 장마철에는 잎이 아니라 뿌리가 자라요.

뿌리가 자라는 계절.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비 오는 날의 시 한 편

그 말을 받아 적다가, 시가 되었다.

장마

해를 잃은 것이 아니라
해를 잠시 맡겨 둔 것이다

구름 위에는 여전히
한 번도 꺼진 적 없는 빛

젖은 흙 아래에서
뿌리는 제 일을 한다

보이지 않는 계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자라고

마른 날들이 다시 왔을 때
나무는 알게 되리라

제가 버틴 것이 아니라
내내 길러지고 있었음을

시를 쓰고 나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내 인생의 장마들이 지나갔다. 응답 없던 기도의 계절.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것 같던 시간들. 하늘이 낮고 어둡기만 하던 날들. 그때 나는 하나님이 해를 거두어 가셨다고 생각했다. 버림받았다고까지 생각한 밤도 있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시절에 자란 것들이 있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지만, 뿌리가 자랐다. 기도가 깊어졌다. 사람의 아픔을 읽는 눈이 생겼다. 마른 날에는 결코 배울 수 없는 것들이었다.

비에 젖어 더 짙어진 초록 잎사귀
비에 젖은 잎은 마른 잎보다 짙다. 젖은 계절은 색이 깊어지는 계절이다.

비는 헛되이 내리지 않는다

이사야서에는 비에 관한 오래된 약속이 있다. 오늘 같은 날 읽으면 빗소리와 함께 읽히는 말씀이다.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 이사야 55:10-11

비는 헛되이 내리지 않는다. 반드시 땅을 적시고, 싹을 내고, 씨 뿌리는 자에게 종자를 주고 나서야 돌아간다. 말씀도 그렇다고 하나님은 약속하신다. 내 삶에 내린 말씀 한 구절도, 눈물로 드린 기도 한 마디도, 헛되이 돌아가는 법이 없다.

오늘 내리는 이 비도 어딘가의 논을 채우고, 어딘가의 뿌리를 적시고, 어딘가의 우물을 깊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 인생에 내리는 이 눅눅한 계절도, 무엇인가를 반드시 자라게 하고 지나갈 것이다.

광야에도 우기가 있다

성경의 땅에도 우기가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을의 첫 비를 이른 비라 불렀고, 봄의 마지막 비를 늦은 비라 불렀다. 농부는 그 두 비 사이에서 일 년을 살았다. 이른 비가 내려야 딱딱하게 굳은 땅이 풀려서 씨를 뿌릴 수 있었고, 늦은 비가 내려야 이삭이 여물었다. 비가 없으면 파종도 없고 추수도 없었다.

그래서 성경에서 비는 저주가 아니라 언제나 복의 언어다. 신명기는 약속의 땅을 이렇게 소개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비를 흡수하는 땅. 나는 그 표현이 좋다. 젖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내리는 것을 남김없이 받아들이는 땅.

어쩌면 신앙이란 방수가 아니라 흡수인지도 모른다. 인생의 비를 튕겨 내는 기술이 아니라, 그 비를 뿌리까지 데려가는 능력. 같은 장마를 지나도 어떤 마음은 물에 잠기고, 어떤 마음은 물을 머금는다. 잠기는 마음과 머금는 마음의 차이는 깊이에 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큰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젖은 계절을 지나는 이에게

혹시 지금 인생의 장마를 지나고 계신 분이 있다면, 몇 가지를 나누고 싶다.

하나, 마르지 않는 것을 자책하지 말 것. 장마철에는 빨래가 마르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눈물이 마르지 않는 계절에는 우는 것이 정상이다. 젖은 채로 견디는 것도 믿음이다.

둘, 해를 의심하지 말 것. 구름이 아무리 두꺼워도 그 위의 해는 한 번도 꺼진 적이 없다. 보이지 않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다. 하나님의 침묵과 하나님의 부재는 다르다.

셋, 뿌리의 일을 신뢰할 것. 지금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라는 중이다. 장마가 끝난 뒤에야 알게 되는 성장이 있다.

넷, 함께 젖어 줄 것. 우산을 씌워 주는 사람보다 같이 비를 맞아 주는 사람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주변에 장마를 지나는 이가 있다면, 해결해 주려 하지 말고 곁에 있어 주자. 로마서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했다.

젖은 날의 기도

저녁이 되어도 비는 그치지 않는다. 우산을 쓰고 잠깐 골목을 걸었다. 처마 밑을 지나는데 빗물이 고인 웅덩이에 가로등 불빛이 비쳤다. 흐린 날에도 빛은 어딘가에 고여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오래 서 있었다.

방에 돌아와 일기장을 펴고 짧은 기도를 적는다. 하나님, 해가 보이지 않는 날에도 해를 의심하지 않게 해 주세요. 응답이 보이지 않는 계절에도 뿌리가 자라고 있음을 믿게 해 주세요. 이 장마가 끝나면, 저는 조금 더 깊어진 사람이고 싶습니다.

내일도 비가 온다고 한다. 내일의 비는 내일의 몫. 오늘은 오늘의 빗소리를 들으며 잠들기로 한다. 젖은 날들에도, 아니 젖은 날들이라서, 자라는 것들이 있다.

장마 뒤의 하늘을 미리 그리며

기상청은 다음 주쯤 장마가 물러간다고 한다. 장마가 걷힌 뒤의 하늘을 기억한다. 일 년 중 가장 파랗고 가장 높은 하늘. 씻긴 하늘은 씻기기 전보다 맑다. 그 하늘은 비가 만든 것이다. 비가 공기 중의 먼지를 다 데리고 내려갔기 때문에, 장마 뒤의 하늘은 그토록 투명하다.

우리 인생의 맑은 날들도 그렇게 온다. 눈물이 씻어 낸 마음 위에 오는 평안은, 눈물 이전의 평안보다 깊다. 시편 시인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하고 노래했다. 뿌리는 계절과 거두는 계절 사이에, 반드시 젖는 계절이 있다.

그러니 오늘의 비를 원망하지 않기로 한다. 이 비는 나를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기르며 지나가는 중이다. 젖은 날들의 일기는 여기까지. 창밖의 비는 여전하고, 나의 뿌리는 오늘도 조금 자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