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거실 창가에 놓아둔 작은 화분 하나가 시들어 갔습니다. 물 주는 일을 자주 잊었고, 어느 날 문득 보니 잎은 누렇게 말라 떨어지고 줄기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이제 끝났구나 싶어 버릴까 하다가, 어쩐지 마음이 내키지 않아 그대로 두었습니다. 마른 흙에 물을 주고, 볕이 드는 자리로 옮겨 놓고는 큰 기대 없이 하루하루를 지나쳤습니다. 살아나리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몇 주가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아침, 앙상하던 줄기 끝에 아주 작은 초록빛이 돋아난 것을 보았습니다. 눈에 잘 띄지도 않을 만큼 여린 새순이었습니다. 그 작은 초록을 보는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 깊은 곳이 뭉클해졌습니다. 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것이 안에서는 여전히 생명을 붙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어 보이던 그 시간에, 뿌리는 조용히 다시 살아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화분을 바라보며 문득 내 삶을 떠올렸습니다. 우리에게도 시들어 버린 것 같은 계절이 있습니다. 마음의 물기가 다 말라 버려, 아무것도 자라날 것 같지 않은 메마른 시기 말입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관계가 어긋나고, 애써 온 일이 무너질 때, 우리는 스스로를 향해 이제 끝났다고 속삭이곤 합니다. 앙상한 줄기만 남은 화분처럼, 더는 아무 가능성도 남아 있지 않은 듯 느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버릴 때에도, 그분은 마른 뿌리 속에 여전히 생명을 감추어 두십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으로 우리를 판단하지 않으시고, 아직 남아 있는 아주 작은 가능성까지 귀히 여기십니다. 사람의 눈에는 끝난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눈에는 다시 시작될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 이사야 42:3
이 말씀은 언제 읽어도 마음을 어루만집니다. 상한 갈대는 이미 꺾여 쓸모없어 보이는 존재입니다. 꺼져가는 등불은 곧 사그라들 희미한 빛입니다. 세상은 그런 것들을 쉽게 내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마저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끝내 끄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연약한 것을 손으로 감싸, 다시 곧게 세우시고 다시 타오르게 하십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연약함은 하나님께 버려질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붙드실 이유가 됩니다. 우리가 가장 무너져 있을 때, 그분은 가장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스스로 일어설 힘조차 없을 때, 그분의 손이 우리를 받쳐 주십니다. 우리의 회복은 우리의 의지나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으시는 그분의 신실하심에서 흘러나옵니다.

다시 화분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새순이 돋은 뒤로 저는 그 화분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아침마다 잎을 살피고, 볕의 방향을 따라 자리를 옮겨 주고, 물을 잊지 않으려 애씁니다. 한 번 되살아난 생명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다시 살아난 우리를 그렇게 정성으로 돌보십니다. 회복은 한순간의 사건이 아니라, 그 후로도 이어지는 세심한 돌봄의 이야기입니다.
혹시 지금 마음이 시들어 있는 분이 계신다면, 그 화분을 떠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겉으로 아무 변화가 없어 보여도, 하나님은 지금 당신의 뿌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눈물로 지나는 이 계절이 결코 마지막이 아닙니다. 마른 줄기 끝에 다시 초록이 돋아날 날을, 그분은 이미 예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다만 그 자리에서 버티며, 다시 오실 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선한 일은 결코 중도에 멈추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 심으신 생명을 끝까지 자라게 하시고, 시작하신 그 일을 반드시 완성하십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무리 초라해 보여도, 하나님의 손안에서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피어날 것입니다. 반드시.
그 작은 화분은 지금도 창가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볼 때마다 저에게 조용히 말을 건넵니다. 포기하지 말라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너를 붙들고 계신 분이 있다고. 오늘 하루, 시들어 가는 마음에 다시 물을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그 손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곁에서 멈추지 않고 일하고 계십니다.
돌이켜 보면 성경은 다시 피어난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죽은 것 같던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에서 약속의 아들이 태어났고, 마른 뼈들이 가득하던 골짜기에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오자 큰 군대가 일어섰습니다. 무덤에 나흘이나 있던 나사로가 다시 걸어 나왔고, 십자가의 절망 끝에 부활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하나님의 이야기에서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의 문턱이었습니다. 그분께는 어떤 죽음도 마지막 단어가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의 메마른 계절도 그 자체로 완결된 결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음 이야기를 위한 겨울일 뿐입니다. 겨울은 나무에게 죽음이 아니라 쉼입니다. 잎을 떨군 나무는 죽은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음 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침묵과 기다림의 시간도 그러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그 시간에,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조용히 회복의 뿌리를 내리고 계십니다.
때로 우리는 회복이 극적인 사건으로 오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화분의 새순이 하루아침에 무성한 잎이 되지 않듯, 대부분의 회복은 아주 더디게 찾아옵니다. 오늘보다 아주 조금 나은 내일, 그 미세한 변화들이 쌓여 어느 날 문득 우리는 달라진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회복의 속도가 더디다고 하여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라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급함이 아니라 신뢰입니다. 정원사가 씨앗에게 빨리 자라라고 다그치지 않듯, 하나님은 우리를 재촉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알맞은 때에 물을 주시고, 볕을 비추시며, 인내로 기다리십니다. 우리도 자신에게 그런 인내를 허락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면, 나 또한 나를 함부로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 한 켠에도, 시들어 버린 것 같은 무언가가 있을지 모릅니다. 오래된 꿈, 식어 버린 관계, 지쳐 버린 믿음. 그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의 눈길이 머물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당신 안의 그 작은 불씨를, 그분은 지금도 두 손으로 감싸고 계십니다.
다시 피어나는 것은 화분만이 아닙니다. 우리도 그렇게 다시 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들고 오늘 하루를 살아 낼 때, 어느 아침 문득 우리 안에서도 초록빛 새순이 돋아나 있을 것입니다. 그날을 소망하며, 오늘도 마른 흙에 조용히 물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