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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진 자리에서 —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손


넘어져 본 사람만이 아는 마음이 있습니다. 길을 걷다 발을 헛디뎌 무릎이 까지는 그런 넘어짐이 아니라, 삶의 한가운데서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그런 넘어짐 말입니다. 애써 쌓아 온 것이 한순간에 흔들릴 때, 믿었던 것에 배신당했을 때, 혹은 나 자신에게 깊이 실망했을 때. 그럴 때 우리는 몸이 아니라 마음으로 주저앉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한동안 일어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넘어진 자리의 가장 무서운 점은 통증이 아닙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하는 의심입니다. 넘어진 순간보다, 넘어진 채로 머무는 시간이 우리를 더 깊이 갉아먹습니다. 어두운 바닥에 앉아 있다 보면, 이 어둠이 영영 걷히지 않을 것 같고, 나만 이렇게 뒤처진 것 같고, 다시는 예전처럼 걸을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슬며시 마음을 덮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넘어짐을 끝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넘어짐 다음에 무엇이 오는지를 더 길게 이야기합니다. 선지자 미가는 원수가 자기를 비웃으며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조롱하던 그 캄캄한 시간에, 이를 악물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 미가 7:8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이 문장에는 넘어짐을 부인하는 어떤 허세도 없습니다. 미가는 자기가 넘어졌다는 사실을 굳이 감추지 않습니다. 그는 엎드러졌다고, 어두운 데에 앉아 있다고 정직하게 인정합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선언합니다. 그러나 나는 일어날 것이라고. 신앙은 넘어지지 않는 힘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힘입니다.

숲 사이로 내리는 햇살이 비추는 길

잠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의인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난다고. 여기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것은, 의인이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의인도 넘어집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일곱 번, 곧 수없이 넘어집니다. 다만 그를 의인 되게 하는 것은 넘어지지 않음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남입니다. 의로움은 완벽한 균형이 아니라, 끈질긴 일어섬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일어섬의 힘을 어디서 얻을까요. 미가의 고백을 다시 들여다보면 답이 보입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그는 자기 의지력으로 벌떡 일어나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의지한 것은 자기 안의 결심이 아니라, 어둠 가운데로 찾아오시는 빛이었습니다. 우리를 일으키는 힘은 우리 바깥에서 옵니다. 넘어진 자리로 몸을 굽혀 내려오시는 손이 있기에, 우리는 다시 설 수 있습니다.

어쩌면 넘어진 자리는 우리가 그 손을 가장 분명히 경험하는 자리인지도 모릅니다. 잘 걷고 있을 때 우리는 누가 우리를 붙들고 있는지 잘 느끼지 못합니다. 넘어져 더 이상 내 힘으로 어쩔 수 없을 때, 비로소 나를 붙드는 손의 무게가 또렷해집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인생에서 가장 깊이 넘어졌던 그 자리를, 훗날 가장 깊이 은혜를 만난 자리로 기억합니다.

노을빛에 물든 황금빛 밀밭

밀알 하나가 떠오릅니다. 그것은 땅에 떨어져 묻혀야만 싹을 틔웁니다. 떨어짐이 없으면 자람도 없습니다. 우리의 넘어짐도 그러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저 추락처럼만 느껴지는 이 시간이, 사실은 더 깊이 뿌리내리기 위한 묻힘일 수 있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 떨어진 씨앗이 가장 풍성한 열매를 맺듯, 가장 깊이 무너진 마음이 훗날 가장 단단한 믿음으로 자랍니다.

물론 넘어진 당사자에게 이런 말은 한가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일어나라는 말이 도리어 부담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미가도 어두운 데에 한동안 앉아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장 벌떡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일어날 것이라는 한 줄의 소망을 꺼뜨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 작은 불씨 하나만 살아 있으면, 우리는 결국 일어납니다.

다시 일어선 사람은 넘어지기 전과 똑같지 않습니다. 그는 더 겸손해지고, 더 따뜻해지고, 같은 자리에서 넘어진 다른 이를 알아보는 눈을 갖게 됩니다. 자기 무릎의 흉터를 아는 사람만이, 남의 흉터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넘어짐은 끝내 누군가를 일으키는 손이 되어 갑니다. 받은 은혜가 그저 내 안에 머물지 않고, 또 다른 넘어진 자리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오늘 혹 어두운 데에 앉아 있는 분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이 한 문장을 가만히 붙들면 좋겠습니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지금 일어날 힘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그 말을 믿는 것만으로 이미 일어섬은 시작되었습니다. 빛은 이미 어둠을 향해 오고 있고, 그 빛은 반드시 당신의 무너진 자리에 닿을 것입니다.

안개가 산을 다 가린 아침에도 해는 떠 있습니다. 보이지 않을 뿐,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흐르면 안개는 걷히고, 가려졌던 빛이 산등성이를 따라 천천히 번집니다. 우리의 어둠도 그렇게 걷힐 것입니다. 넘어진 자리는 결코 마지막 자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다시 일어서는 사람의 첫 자리입니다.

베드로를 생각해 봅니다. 그는 누구보다 큰소리를 쳤던 제자였습니다. 모두가 주를 버려도 자기는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그것도 세 번이나 주를 모른다고 부인하며 무너졌습니다. 닭이 우는 소리를 들으며 밖으로 나가 통곡하던 그 밤, 베드로는 아마 다시는 일어설 수 없으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실패가 너무도 분명했기에, 변명할 여지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그 무너진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를 책망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아침 식사를 차려 놓고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부인했던 횟수만큼, 세 번 다시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것은 추궁이 아니라 회복이었습니다. 넘어진 자리에 정확히 찾아오셔서, 그 자리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를 다시 세우시는 분은 우리의 실패를 들추기보다, 그 실패 위에 새로운 사명을 얹어 주십니다.

그러니 넘어짐의 깊이를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떨어진 그 깊이보다, 우리를 향해 굽혀 내려오시는 그분의 손이 언제나 더 깊은 곳까지 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닿을 수 없는 바닥은 있어도, 그 손이 닿지 못하는 바닥은 없습니다. 어떤 어둠도 그 빛보다 짙지 않고, 어떤 넘어짐도 그 일으키심보다 깊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또 넘어질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어제도 넘어졌고, 내일도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일곱 번 일어나는 사람이라는 것을. 넘어진 횟수가 우리를 규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규정하는 것은,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려는 마음과 그 마음을 붙드시는 손입니다. 그 손을 신뢰하며, 오늘도 가만히 무릎을 펴고 일어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