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툇마루에 앉은 오후 — 햇살 가운데 머무시는 분을 만나며

sangkist

늦은 점심을 마치고 툇마루에 나가 앉았습니다. 한낮의 햇살은 아직 마당의 풀잎 위에 길게 흩어져 있었고, 마루의 나무 결은 사람의 손길과 시간이 어우러져 만들어 낸 깊은 색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손에 든 책은 잠시 옆에 내려놓았습니다. 그저 그 자리에 앉아 햇살이 천천히 옮겨가는 것을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머릿속에 아직 끝나지 않은 일들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보내야 할 메시지, 정리해야 할 자료, 다음 주에 만나기로 한 사람의 얼굴.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모든 것들이 조금씩 잦아들었습니다. 마치 잔잔한 호수에 잠시 던져졌던 작은 돌멩이의 파문이 천천히 잦아드는 것처럼.

오후의 햇살이 나무 사이로 스미는 풍경

고요함이 가르쳐 주는 것

현대의 삶은 멈춤을 잘 허락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오히려 죄책감 같은 것이 마음 한 켠에서 고개를 듭니다. ‘이 시간에 다른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괜찮을까.’ 그 작은 압박은 우리의 영혼을 끊임없이 떠밀어 다음 일감으로 옮겨가게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떠밀려 살아가는 동안 우리 안에서 천천히 자라야 할 무엇인가가 자라지 못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머무는 시간’이라는 작은 텃밭과 같은 것입니다. 그 텃밭은 분주함의 그늘 아래에서는 시들고 맙니다. 햇살이 길게 비치는 자리, 사람의 손길이 자주 닿는 자리, 무엇보다 시간이 흐르도록 그저 기다려 주는 자리에서 그 텃밭은 비로소 자랍니다. 가만히 앉아 햇살이 옮겨가는 것을 바라보는 그 무용해 보이는 시간이, 사실은 우리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양분이 됩니다.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 시편 46장 10절

이 말씀이 그 오후에 자꾸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가만히 있어’라는 짧은 한 마디. 그것은 단순히 행동을 멈추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우리의 분주한 손길이 결국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뜻이기도 하고, 그분이 일하고 계신 자리에 우리의 시끄러운 손가락을 들이밀지 말라는 부탁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멈춰 서야 한다는 친절한 일러줌입니다.

알다, 라는 동사가 성경에서 가지는 무게는 사뭇 다릅니다. 단순히 머리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라, 마음으로 누군가의 존재를 깊이 인지하는 일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안다는 것은, 결국 그분의 자리와 나의 자리를 분명하게 구분하는 일입니다. 내가 신이 아니라는 사실, 내가 모든 일의 결과를 손에 쥘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자리에 그분이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 그 세 가지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곧 ‘안다’는 일입니다.

한낮의 작은 빈자리

툇마루에 앉아 있는 동안 옆에 있던 작은 화분 안에서 들풀 하나가 흔들렸습니다. 누가 심은 적도 없는데 어디선가 씨앗이 날아와 그 작은 흙 안에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그 가느다란 줄기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영혼 안에서 자라는 것들도 그런 것이 아닐까. 누가 일부러 심은 적이 없는데도 어느 날 보면 마음 한 켠에서 작은 푸르름이 자라고 있는 것. 그 푸르름은 우리가 잠시 가만히 있을 때, 그 빈자리에서 비로소 자라기 시작합니다.

고요한 들녘과 머무는 정적

분주함이 우리 마음의 흙을 너무 자주 갈아엎으면 그 작은 푸르름은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일부러 빈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누구도 침범하지 않는 작은 시간의 빈자리. 핸드폰을 잠시 내려놓고, 책상에서 일어나, 햇살이 드는 자리에 앉아 그저 그 햇살을 바라보는 시간. 그 시간이 곧 우리 안의 들풀을 자라게 하는 흙이 됩니다.

오후가 가르쳐 준 한 가지

해가 조금씩 옮겨가면서 마루 위의 빛도 조금씩 자리를 바꾸어 갔습니다. 처음에는 발 끝에 머물던 햇살이 어느새 무릎까지 올라왔고, 또 한참 뒤에는 가슴께까지 닿아 있었습니다. 그 느린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알게 된 것 하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단숨에 모든 것을 바꾸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그 자리에 가만히 머무는 동안 천천히 옮겨오시는 분이라는 것.

그 오후에 저는 어떤 큰 결심을 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깊은 깨달음을 새로 얻은 것도 아닙니다. 다만 가만히 앉아 있는 동안 마음 한 곳이 다시 비워졌고, 그 빈자리에 햇살처럼 천천히 스미시는 어떤 임재를 느꼈을 뿐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은 그것입니다. 무엇을 해내는 시간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에게 천천히 임하시도록 자리를 비워두는 시간.

다시 저녁이 되고 마루 위의 햇살이 사라질 무렵, 저는 일어나 마당을 한 바퀴 걸었습니다.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무엇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무엇인가 한 가지가 분명해진 듯한 가벼움이었습니다. 가끔은 가만히 앉아 있는 일이, 가장 깊이 일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그 사실 하나가 그날 오후 제 안에 남았습니다.

다시 마루 위에 앉아서

며칠이 지난 뒤, 같은 오후 시간에 다시 그 마루에 나가 앉았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첫날의 감정이 그대로 돌아오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마음의 자리는 매일 같지 않고, 같은 햇살이라도 우리를 만나는 방식이 늘 같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었습니다. 그날의 빈자리가 마음 한 켠에 작은 흔적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그 흔적은 일상의 분주함 속에서도 마음 한 구석에 작은 의자처럼 놓여 있어, 잠시 앉아 쉬어갈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어떤 회의 중간에 잠시 숨이 가빠올 때, 그 마루의 햇살이 떠올랐습니다. 답장을 보내야 한다는 압박이 가슴을 누르던 어느 저녁, 그 빈자리가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그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제 일상의 호흡에 천천히 스며들었습니다.

주께서 만드시는 마음의 자리

가만히 있는 시간을 처음 만들어 보면 그 시간이 어색하고 길게 느껴집니다. 무엇인가 해야 할 것 같고, 가만히 있는 것이 곧 시간 낭비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 어색함을 잠시 견디고 나면, 마음 안에서 천천히 자리가 비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결코 무의 자리가 아니라, 누군가 그곳에 머무시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주께서는 시끄러운 곳에서도 분명히 일하시지만, 우리가 그분의 일하심을 알아채는 자리는 대개 고요한 자리입니다. 마음에 너무 많은 소음이 가득 차 있으면 그분의 음성은 자주 묻히고 맙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어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알라는 시편 기자의 권면은, 결국 우리에게 그분을 알아챌 자리를 마련하라는 다정한 부탁입니다.

오늘도 누군가의 오후가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분주함의 한가운데서도 잠시 마음의 마루로 나가 앉아, 가만히 햇살이 옮겨가는 것을 바라보는 시간이 있기를. 그리고 그 시간이 곧 우리 영혼의 호흡이 되기를. 작은 빈자리가 결국 가장 깊은 만남의 자리가 될 수 있음을, 그 오후의 햇살이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