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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한 마리를 찾으시는 그 손 — 누가복음 15장, 끝까지 찾으시는 사랑의 강해

sangkist

누가복음 15장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세 비유로 구성된 한 편의 교향곡입니다. 잃은 양 한 마리, 잃은 드라크마 한 닢, 잃은 아들 한 사람. 세 비유는 각기 다른 풍경을 보여주지만, 그 모든 풍경의 중심에는 단 하나의 주제가 흐릅니다. “잃어버린 한 사람을 끝까지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오늘은 그 첫 번째 비유, 잃은 양 한 마리의 이야기 앞에 다시 서 보고자 합니다. 익숙한 본문일수록 우리는 그 가장자리만 더듬다가 중심을 놓치곤 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천천히, 첫 줄부터 다시 듣고 싶은 본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시작하십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누가복음 15장 4절

이 비유는 본래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오는 모습을 비판하던 바리새인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종교적 정결을 지키는 사람이 어떻게 부정한 자들과 한 식탁에 앉느냐는 것이 그들의 항변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은 잃은 양 한 마리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한 사람을 위해 아흔아홉을 잠시 두고 떠나는 목자처럼, 하나님 나라의 셈법은 우리의 셈법과 다르다고 말이지요.

들판 위의 목자와 양 떼

일반적인 우리의 효율 감각으로 보면,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러 들에 아흔아홉 마리를 두고 떠나는 목자의 행동은 어리석어 보입니다. 한 마리를 잃지 않은 안전이 더 합리적이고, 다수를 지키는 것이 더 큰 책임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여주시는 그림은 다릅니다. 한 마리는 단지 통계의 한 점이 아니라, 이름을 가진 존재이며, 목자의 음성을 알고 따르는 한 생명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한 마리를 위해 모든 것을 거십니다. 이것이 인간이 도무지 흉내 낼 수 없는, 그러나 우리가 끝없이 흉내 내야 할 사랑의 모양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놓치기 쉬운 사실이 있습니다. 잃은 양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양은 시력이 약하고 방향 감각이 부족해서, 풀을 뜯다 보면 어느새 무리에서 멀어져 있습니다. 자기가 길을 잃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그저 한 입, 또 한 입, 풀을 따라 머리를 숙이다 어느 골짜기 끝에 서 있게 됩니다. 그제야 두려움 속에서 매에 매에 우는 소리를 냅니다. 이것이 죄인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큰 결심으로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한 입씩의 욕심과 한 걸음씩의 외면 속에서 어느새 길을 잃습니다.

이 본문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첫 번째 위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길을 잃었다는 사실조차 모를 때, 그분은 이미 우리를 찾으러 떠나셨다는 것. 우리가 우리의 부재를 알아차리기 전에 그분이 먼저 우리의 빈자리를 알아보신다는 것. 그래서 회개는 우리의 첫걸음이 아니라, 그분의 발걸음이 우리에게 닿은 결과입니다. 우리가 무릎을 꿇기 전에 이미 그분의 무릎이 우리를 향해 휘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유의 진짜 주인공은 잃은 양이 아니라, 그 양을 찾아 떠나신 목자이십니다. 헬라어 본문에서 “찾아내기까지”는 단호한 결단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길이 얼마나 험하든, 발이 얼마나 다치든 — 찾을 때까지는 돌아오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사랑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어디까지 갔는지를 묻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떠난 자리가 얼마나 깊은 골짜기인지를 따지지 않으십니다. 다만 가서, 찾고, 안으십니다.

목자의 어깨에 얹힌 어린 양

마침내 발견된 양은 목자의 어깨 위에 얹힙니다. 끌리지 않고, 야단맞지 않고, 단지 얹혀집니다. 어깨 위는 가장 안전한 자리이며, 동시에 가장 큰 사랑의 자리입니다. 회개한 자에게 주님이 처음 하시는 일은 책망이 아니라 메심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들로 끌고 가지 않으시고, 우리를 어깨 위에 얹어 옮기십니다. 우리가 다시 길을 잃을까 염려해서 그 어깨를 그렇게 단단하고 따뜻하게 만드셨습니다. 그 어깨 위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자신의 무게를 그분께 맡기는 법을 배웁니다.

“내게 즐거워하라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누가복음 15장 6-7절

찾으신 후 목자가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잔치를 여는 것입니다. 친구와 이웃을 부르고, 함께 기뻐해 달라고 청합니다. 한 사람의 회개 위에서 하늘이 통째로 흔들리는 기쁨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천국의 정서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의로움의 명단이 길어지는 곳이 아니라, 돌아온 한 사람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잔치가 열리는 곳입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을 셈하는 일로 만들지만, 천국은 셈이 아니라 잔치로 이루어집니다.

오늘 이 본문 앞에서 우리는 두 가지 자리를 동시에 마주합니다. 하나는 잃었던 양의 자리. 다른 하나는 찾으시는 목자의 자리. 우리는 모두 한 번쯤은 길을 잃은 양이었고, 그 자리에서 메이심을 입은 자입니다. 그렇기에 동시에 우리는 누군가를 어깨에 얹어 옮기는 작은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가정 안에, 우리 직장 안에, 우리 교회 안에, 지금도 자기가 길을 잃은 줄 모르는 한 마리의 양이 있습니다. 그를 위해 아흔아홉을 잠시 두고 떠날 마음, 그 마음이 강해의 결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한 사람을 찾아 나설 때 우리는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한 영혼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딜 때, 그 길은 우리가 처음 만든 길이 아닙니다. 이미 그분이 먼저 그 길을 걸으셨고, 우리를 그 발자국 위로 부르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람을 찾는 일은 우리의 사명이 아니라 그분과 함께하는 동행입니다. 동행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어깨를 가볍게 하고, 우리의 발걸음을 단단하게 합니다.

주님, 오늘도 어딘가에서 매에 매에 울고 있을 한 마리의 양이 있다면, 부디 저를 그 자리로 보내 주십시오. 어깨가 단단하지 않아도, 발걸음이 더디어도, 그저 그를 끝까지 찾아내는 한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저 자신이 다시 길을 잃었을 때 제 이름을 부르며 오시는 그 목자의 음성을 잊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 음성 한 자락이면 저는 어디서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