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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자리에서 돋아난 새싹 — 상처와 회복을 통해 깊어지는 신앙

sangkist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삶이 완전히 무너진 날부터였다. 열심히 쌓아올린 것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몸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기도도 나오지 않았다. 하나님이 정말 계신지, 계신다면 왜 이런 일이 허락되었는지, 그 물음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도 손에 펜을 들었다. 말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글로 쏟아냈다. 그것이 내 영성 일기의 시작이었다.

무너진 자리에서 핀 꽃, 하나님의 회복

첫 번째 일기는 원망이었다. 하나님을 향한 질문, 아니 항의였다. 왜 이런 일이 저에게 일어났습니까. 저는 열심히 살았습니다. 기도했습니다. 드렸습니다. 그런데 왜. 솔직히 쓰는 것이 두려웠다. 이런 마음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도 되는 것인지. 그런데 시편을 펴면서 용기를 얻었다. 다윗도 이런 기도를 했다. 욥도 했다. 예레미야도 했다. 하나님 앞에서 솔직한 것이, 아름다운 말로 포장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 시편 28:1

두 번째 일기에는 눈물이 번졌다. 글씨가 번지도록 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울고 나서 조금 가벼워졌다. 하나님이 내 눈물을 담아두신다는 말씀이 생각났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라는 시편 56편 8절의 말씀. 그분이 내 눈물을 세고 계신다는 것. 내 고통이 그분에게 보인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혼자가 아닌 것 같았다. 수천 년 전 다윗의 눈물이 하나님의 병에 담겼듯이, 나의 눈물도 그분이 거두어 가신다는 믿음. 그 믿음이 나를 버티게 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일기가 쌓여갔다. 변화는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주 조금씩, 거의 눈치채기 어려울 만큼 조금씩, 내 안에서 무언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원망이 질문으로 바뀌었다. 왜 이런 일이 있어야 하나에서 이 일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로. 그것이 첫 번째 변화였다. 작지만 그것은 분명한 변화였다.

고난 후 찾아온 빛, 숲 속의 영적 회복

무너진 자리에서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내가 완벽하게 쌓아올린 것들이 사라지자, 오히려 더 중요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것들을 붙들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 가족의 따뜻함, 작은 위로의 말 한마디, 아침 햇살의 아름다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가장 귀한 것들은 남아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거기 있었는데 내가 못 보고 있었다. 무너져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였다. 예전에는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기도하면 원하는 결과를 주시는 분. 그런데 무너진 자리에서 나는 다른 하나님을 만났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도, 여전히 선하신 분. 내 계획이 아닌 그분의 계획을 신뢰하는 것, 그것이 진짜 믿음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 믿음은 편안한 시간이 아니라, 고통의 한가운데서 단련되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그 시절의 나와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이다. 상처는 여전히 있다. 아물었지만 흉터가 남아있다. 그러나 그 흉터는 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살아남았다는 증거다. 회복의 증거다. 하나님이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증거다. 무너진 자리에서 돋아난 새싹처럼, 내 신앙은 그 고난을 통해 이전보다 훨씬 더 깊고 강하게 자랐다.

무너진 자리에서 회복을 경험한 사람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본다. 고통을 모르는 사람은 고통받는 이의 곁에 서기 어렵다. 그러나 자신의 깨어짐을 경험한 사람은 다른 이의 깨어진 자리에서 함께 앉을 수 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을 사용하시는 방법 중 하나다. 내가 경험한 회복이, 지금 무너지고 있는 누군가에게 희망이 된다. 내 상처의 흉터가 그들에게 이것도 지나간다는 살아있는 증거가 된다.

영성 일기를 쓰면서 가장 많이 배운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낭비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것은 반드시 어딘가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고통까지도, 상처까지도, 실패까지도. 그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의 손안에서는 낭비되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일기를 쓴다. 좋은 날도, 힘든 날도. 하나님 앞에 그날의 나를 솔직하게 내어놓는다. 영성 일기를 쓰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오늘 단 한 줄부터 시작해보라. 오늘은 힘들었다. 그래도 여기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신앙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어놓는 것, 그 작은 행위가 쌓여서 깊은 신앙이 된다. 무너진 자리가 두렵지 않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당신의 삶이 무너지고 있다면, 혹은 이미 무너진 자리에 서 있다면, 이것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무너진 자리가 끝이 아니다. 그곳에서 가장 깊은 뿌리가 내려진다. 그리고 그 뿌리 위에서, 전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 핀다. 하나님은 당신의 무너진 자리를 알고 계신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 일을 시작하고 계신다. 이사야 43장 19절의 말씀처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내며 사막에 강을 내리니. 광야 같은 당신의 자리에 하나님이 길을 내고 계신다. 사막 같은 그 메마른 곳에 강물이 흐를 것이다.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이 아직 일하고 계신다.

상처를 치유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감사다. 무너진 자리에서 감사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아니, 처음에는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억지로라도 하루에 한 가지씩 감사한 것을 찾다 보면, 어느 순간 감사가 불평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살아있는 것이 감사하고, 오늘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것이 감사하고, 나를 걱정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이 감사가 쌓일 때, 고통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된다. 고통 옆에, 은혜도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 고통이 오히려 은혜였음을 고백하게 될 날이 온다. 무너진 자리에서 돋아난 새싹처럼, 당신의 신앙도 반드시 더 아름답게 자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