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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아침, 빗소리 속에서 들은 하나님의 말씀

sangkist

유월(六月)이 왔습니다. 달력에서 숫자 6이 고개를 내밀던 날, 창밖으로는 빗줄기가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초여름의 비는 봄비와는 다른 무게가 있습니다. 조금 더 묵직하고, 조금 더 오래 머뭅니다. 유리창에 맺히는 빗방울 하나하나가 제 시선을 잡아두었습니다.

그날 아침은 유난히 일찍 눈이 떠졌습니다. 알람도 아니고, 소음도 아닌, 그냥 눈이 열렸습니다.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평소와 달랐고, 세상이 아직 잠든 그 시각에 홀로 깨어 있다는 느낌이 이상하게 고요했습니다. 커피를 내리고, 성경을 펼치고, 빗소리를 들었습니다.

유월의 아침 빗소리 하나님의 말씀
유월의 아침 — 빗소리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내며 사막에 강을 내리니

— 이사야 43:19

이사야 43장을 읽다가 손이 멈췄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선지자 이사야가 이 말씀을 전할 당시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미래는 어둡고, 희망은 보이지 않는 시절.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새 일을 하겠다고. 이미 행하고 있다고.

나는 이 구절 앞에서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유월의 빗소리가 배경음악처럼 흘렀고, 커피 향이 방 안을 채웠습니다. 새 일이란 무엇일까. 내 생각으로는 상상도 못 했던 방식으로 열리는 길. 당연히 막혔을 광야에 뚫리는 통로. 그것이 하나님의 방식이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저는 요즘 어떤 막힌 벽 앞에 서 있습니다. 오래된 기도 제목이 하나 있는데, 아직도 응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가끔은 하나님이 들으시는지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솔직히 그렇습니다. 신앙이 오래되어도, 기도를 많이 해도, 의심의 그림자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날 아침, 빗소리 속에서 읽은 이 구절이 마음에 꽂혔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이 물음은 책망이 아닙니다. 놀라움을 함께 나누고 싶은 하나님의 초대입니다. ‘보라’는 명령어에는 긴박함이 담겨 있습니다. 이미 시작된 일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유월의 비가 내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대지가 목마르기 때문입니다. 여름의 열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뿌리들이 충분히 수분을 머금게 하기 위해 하늘은 이 계절에 비를 내립니다. 우리 눈에는 그저 비가 올 뿐이지만, 땅 아래에서는 수백만 개의 뿌리가 그 물을 끌어당기는 일이 일어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이 준비됩니다.

기도도 그런 것일 수 있습니다.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이미 광야에 길을 내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사막에 강줄기가 준비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 일이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알 수 없지만, ‘이미 나타낼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수 있습니다.

새벽 빛 은혜의 아침
새벽의 빛 — 막힌 광야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

성경의 이 구절이 기록될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역사적으로 처참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선민이라는 자부심이 무너지고, 성전이 파괴되고, 고향을 잃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절망의 자리에서 ‘새 일’을 선언하십니다. 과거에 행하신 출애굽보다 더 놀라운 일을 행하시겠다고.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시겠다고.

나는 이 역설이 좋습니다. 길이 없는 광야이기 때문에 길을 내신다는 것. 강이 있을 수 없는 사막이기 때문에 강을 내리신다는 것. 하나님은 가능성이 있는 곳에서 기적을 행하시는 게 아닙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바로 그 자리에서 역사하십니다.

빗소리는 한 시간쯤 후에 잦아들었습니다. 구름 사이로 희미한 햇살이 스며들었고, 나뭇잎들이 빗물을 머금은 채 반짝였습니다. 마당의 작은 풀들이 조금 더 푸르러 보였습니다. 그 순간이 마치 하나님의 답장 같았습니다. 말은 없었지만, 뭔가가 마음속에서 조금 열렸습니다.

나는 성경을 덮으며 생각했습니다. 오늘 이 비가 내린 것은 우연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 고요한 아침에 일찍 깨어난 것도 우연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 구절 앞에서 손이 멈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빗소리를 통해, 커피 향을 통해, 아무도 깨어 있지 않은 이른 아침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그 말씀이 오늘도 나의 벽 앞에서 메아리칩니다. 내가 아직 보지 못하는 곳에서, 하나님의 일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유월의 비가 뿌리를 적시듯, 그분의 은혜가 내 기다림의 뿌리를 적시고 있습니다. 그것을 아직 볼 수는 없지만, 믿을 수는 있습니다. 그 믿음이면 오늘 이 아침은 충분합니다.

당신의 광야에도 오늘, 길이 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