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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뀌어도 — 유월 비 내리는 날, 믿음의 시간을 걷다

sangkist

유월의 빗소리가 창밖을 두드린다. 세상은 젖어들고, 나는 조용히 창가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들고 먼 산을 바라본다. 하늘이 낮게 내려앉은 날이면, 이상하게도 생각은 오히려 높고 깊은 곳을 향해 오른다. 비 오는 날은 묘하게 사람을 자기 자신 안으로 이끄는 힘이 있다. 소란하던 마음도 잦아들고, 오랫동안 바쁨에 밀려 뒤로 미뤄두었던 질문들이 고요히 떠오른다. 나는 오늘 이 빗소리 속에서 오래된 질문 하나를 꺼내 든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내 믿음은 지금 어느 계절에 서 있는가.

유월 빗소리 속에서 믿음의 계절을 묵상하다

믿음이란 무엇일까. 오래된 질문이다. 헬라 철학자들은 그것을 지적 확신이라 했고,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불확실성 속의 도약이라 했다. 루터는 그것을 신뢰라고 했고, 칼빈은 지식과 신뢰의 결합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나는 오늘 빗속에서 그것이 계절처럼 변해가는 것임을 느낀다. 어느 하나의 정의로 다 담을 수 없는 살아있는 무언가. 내 안에서 숨 쉬고 자라고 때로는 시들기도 하는 생명 같은 것.

봄의 믿음은 연약하고 풋풋하다. 처음 교회 문을 열던 날의 그 두근거림, 성경을 처음 펼쳤을 때의 그 경이로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이 처음으로 가슴에 꽂히던 그 순간. 그것은 꽃잎처럼 아름답지만 쉽게 시들기도 한다. 환경이 어려워지거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봄의 믿음은 쉽게 흔들린다. 뿌리가 아직 깊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봄의 믿음을 폄하하지 않는다. 꽃이 없으면 열매도 없다. 처음의 설렘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다.

여름의 믿음은 뜨겁고 굵다. 기도가 불처럼 오르는 시간, 예배 가운데 눈물이 강같이 흐르는 때. 새벽 기도를 빠지지 않고, 성경 통독을 이어가고, 전도의 열심이 타오르는 계절. 그러나 그 뜨거움은 때로 나를 지치게 하기도 한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어느 순간 나를 위한 종교적 성취로 변질되는 것을 느낄 때, 나는 한걸음 물러서야 했다. 더 많이 하면 더 사랑받는다는 착각, 내가 열심히 할수록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그 왜곡된 방정식. 여름의 믿음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행함은 사랑의 증거이지 사랑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가을의 믿음은 익어간다. 오랜 세월 하나님과 동행하며 쌓인 흔적들이 노란 낙엽처럼 쌓인다. 응답된 기도들,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섭리들,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보니 그 안에도 하나님의 손이 있었음을 발견하는 경험들. 풍성하지만 동시에 저무는 것들을 바라보는 쓸쓸함도 있다. 그러나 그 쓸쓸함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름답다. 내가 작아질수록 그분이 크게 보이기 때문이다. 가을은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내가 이룬 것들이 아니라, 그분이 이루신 것들을 더 선명하게 보게 된다.

주께서 내 앞에 상을 베푸시고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기름을 부으시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 시편 23:5

그리고 겨울의 믿음. 이것이 가장 깊은 믿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는 계절, 기도가 천장에 부딪히는 것 같은 메마름 속에서도 여전히 그분을 향하는 것. 그것은 감정이 아니다. 확신이다. 겨울나무가 빈 가지를 하늘로 들고 봄을 기다리듯, 메마른 영혼도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어놓는다. 다윗이 이 시편을 썼을 때, 그는 아마도 사막 한가운데 있었을 것이다. 원수들이 에워싼 가운데에서도 그는 하나님이 상을 차려주신다고 노래했다. 이것이 바로 겨울의 믿음이다.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신뢰하는 것.

나는 오랜 기간 겨울의 계절을 지낸 적이 있다. 직장을 잃고, 건강이 무너지고,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가 끊어지던 시간. 매일 새벽 기도를 해도 하늘은 침묵하는 것 같았다. 성경을 펼쳐도 말씀이 살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믿음이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님을 알았다. 느껴지지 않아도 붙들어야 하는 것, 보이지 않아도 걸어야 하는 길.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러 올라가던 그 모리아 산의 새벽처럼, 설명할 수 없어도 순종하는 것. 그것이 겨울의 믿음이다.

창가에서 묵상하며 믿음의 계절을 생각하다

그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그리고 지나온 계절을 돌아보니, 하나님은 그 침묵 속에서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셨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내가 기대하지 않은 경로로. 요셉이 구덩이 속에 있을 때도, 감옥 안에 있을 때도, 하나님의 손은 그를 떠나지 않으셨던 것처럼. 겨울을 지난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그 계절이 실은 가장 깊이 뿌리 내리는 계절이었음을. 바람이 없으면 뿌리가 깊어지지 않는다는 나무의 비밀처럼, 고난 없이는 믿음도 깊어지지 않는다.

유월의 빗소리는 계속된다. 나는 창문에 맺히는 빗방울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믿음도 이 빗방울과 같지 않을까.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스며들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뿌리를 적시며, 마침내 계절을 바꾸는 힘. 비가 내려야 꽃이 피고, 기다림이 있어야 수확이 온다. 고요함이 있어야 소리가 들리고, 비워짐이 있어야 채워진다. 하나님의 방법은 늘 그러하다. 우리가 예상하는 방식이 아닌, 훨씬 더 깊고 넓은 방식으로.

나의 믿음이 지금 어느 계절에 있든, 그것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봄의 설렘도, 여름의 뜨거움도, 가을의 성숙도, 겨울의 인내도—모두 그분이 나를 빚어가시는 손길이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빚듯, 그분은 내 믿음의 모든 계절을 통해 나를 빚어가신다. 그 손길이 때로 차갑게 느껴져도, 그것은 더 아름다운 것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다.

오늘 이 빗소리 속에서 나는 기도한다. “주님, 제 믿음의 계절이 어디에 있든, 당신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봄이든 여름이든 가을이든 겨울이든, 모든 계절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비가 땅을 새롭게 하듯, 당신의 은혜로 오늘의 나를 새롭게 하소서. 제가 어느 계절에 있는지보다, 당신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 하나로 오늘을 살아가게 하소서.”

창밖의 비는 여전히 내린다. 그리고 나는, 이 빗소리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잔잔하고, 부드럽고, 그러나 온 세상을 적시는—그분의 사랑처럼. 믿음의 계절은 변해도, 그분은 변하지 않으신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 그것이 나의 닻이요, 나의 집이요, 나의 소망이다. 오늘도 이 빗소리 속에서 그 소망을 붙들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