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눈물로 씨를 뿌리던 그 계절이 거두어지는 때 — 고난이 은혜가 되는 이유

sangkist

어느 시절을 돌아봐도 은혜가 아닌 때가 없었다. 다만 그 당시에는 몰랐다. 눈물이 흐르던 그 계절이 씨를 뿌리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마른 땅처럼 느껴지던 그 날들이 사실은 준비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가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속도보다 언제나 조금 앞서 있다.

빗속에 피어나는 꽃, 고난 이후의 은혜
비가 지나간 자리에 꽃이 핀다. 고난 뒤에 오는 은혜는 언제나 더 깊고 향기롭다.

몇 해 전, 나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했다. 직장을 잃었고,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가 어그러졌으며, 몸도 마음도 바닥에 닿았다. 기도가 나오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렇다고 감사할 수도 없었다. 그냥 아팠다. 그냥 버거웠다. 교회에 나가면서도 예배 내내 어딘가 딴 곳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찬양이 들리지 않았고, 설교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 시절에 내가 붙들었던 것이 하나 있었다. 시편 126편이었다. 특히 5절과 6절. 그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뭔가 내 안에서 무너지는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세워지는 것 같기도 한 이상한 느낌이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 시편 126편 5-6절

씨를 뿌리는 행위와 눈물이 함께 있다는 것. 이게 단순히 시적 표현이 아니라 내 현실에 대한 정확한 묘사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나는 그때 울면서도 씨를 뿌리고 있었던 것이다. 의미 없어 보이는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 기도가 되지 않아도 새벽에 성경을 펴는 것, 마음이 없어도 교회의 자리를 지키는 것 — 그것들이 모두 씨 뿌리는 행위였다.

농부는 씨를 뿌릴 때 그 씨가 자라는 것을 보지 못한다. 흙 속에 묻힌 씨는 보이지 않는다. 싹이 올라오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농부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추위를 견디며, 혹시 씨가 죽어버린 것은 아닌지 조바심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봄이 오면 알게 된다. 그 씨는 죽지 않았다. 땅속 깊은 곳에서 준비하고 있었다.

황금 들판 수확의 계절
눈물로 씨를 뿌린 자리에, 마침내 황금빛 수확이 온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세신다. 시편 기자는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시고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시편 56:8)라고 고백했다. 흘려버려지는 눈물이 없다. 무의미한 고통이 없다. 하나님의 손안에서, 우리의 고난은 언젠가 누군가를 위한 은혜의 이야기가 된다.

시편 126편의 배경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70년의 포로 생활 끝에 돌아온 그들이 부른 노래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이것이 은혜의 본질이다. 너무 오래 기다렸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 실제처럼 느껴지지 않는 그 순간. 꿈꾸는 것 같은 그 기쁨.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계절은 어떤 계절인가? 이미 수확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여전히 눈물로 씨를 뿌리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만약 지금이 씨 뿌리는 계절이라면, 이것을 기억하라. 이 눈물이 헛되지 않다는 것. 씨는 지금도 땅속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 하나님의 때는 반드시 온다는 것.

C.S. 루이스는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 속에서 속삭이시고, 우리의 기쁨 속에서 말씀하시며, 우리의 고난 속에서 외치신다”고 했다. 때로는 그 외침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감당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외침이 들리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씨앗을 심고 계신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가장 어두운 시간에도.

그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지금, 나는 그 시절을 다르게 본다. 그때 내가 흘린 눈물들, 그때 내가 없는 힘으로 뿌렸던 씨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내가 상상도 못했던 방식으로, 하나님은 그 시간을 사용하셨다. 나는 지금 그 수확의 계절에 서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아직 씨를 뿌리고 있는 누군가에게 가 닿기를 바란다.

지금도 씨를 뿌리고 있는 당신에게 이 말을 건네고 싶다.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반드시. 하나님의 때는 늦지 않는다. 그분의 캘린더는 우리의 것과 다르지만, 그분은 단 한 번도 약속을 어기신 적이 없으시다.

씨앗이 땅속에 있는 시간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자. 농부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땅은 그냥 흙이다. 비가 와도, 햇빛이 비춰도, 땅의 겉모습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땅속에서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껍질이 부드러워지고, 싹이 자라며, 뿌리가 내려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이 변화가 마침내 지표면을 뚫고 나오는 것이다.

우리의 고통의 시간도 이와 같다. 겉으로는 아무 변화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고통의 땅속에서 일하고 계신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속도로. 나중에 돌이켜보면 알게 된다. 그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 사실 가장 많이 자라던 시간이었다는 것을.

요셉의 이야기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형들에게 팔려 이집트 노예로 끌려간 소년,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청년,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그 세월. 그 시간들이 모두 낭비였는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과정을 통해 한 사람을 빚으셨다. 그리고 마침내 그를 통해 수많은 생명을 살리셨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세기 45:5).

고통 중에 있는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인내나 더 강한 의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것은 단 하나,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 작은 신뢰일 수 있다. 그 신뢰가 씨앗이 되어, 언젠가 당신의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은혜가 될 것이다. 눈물이 어느 날 간증이 되고, 상처가 치유의 도구가 된다. 하나님의 경이로운 역설이다.

주님, 지금 씨를 뿌리고 있는 이들을 기억해 주소서. 눈물 속에서도 손을 놓지 않은 그들의 순종이 헛되지 않게 하시고, 그 씨앗들 위에 당신의 비를 내려 주소서. 기쁨으로 거두는 그 날이 반드시 오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