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아직 우리가 동심이었을 때는
시내마다 맑은 물이 흘렀고
우리 마음에도 순수가 넘쳐 흘렀지
까만 꽁보리밥 한 주먹에도 배불렀고
빛 바랜 무명옷으로도 얼마나 멋이 있었던가
달빛타고 스며드는 아카시아 향내만으로도
우리들의 사랑은 아름다웠고
고물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일일연속극에
온 동네 사람들이 웃고 울며 삶을 나누었다
식어버린 고구마
까맣게 재가 묻은 감자 몇 개만으로도
우리들은 시간의 흐름을 잊을 수가 있었으며
흐릿한 등잔불 아래에서도
부지런히 시를 써내려 갔고
아름다운 소설들을 읽으며 추억을 만들어 갔었다
지금
우리들의 얼굴에 주름살이 늘어가면서
시내마다 검은 물이 흐르고
우리들의 마음엔 어두운 욕망들로 가득하다
몇십만원짜리 식사로도 배부른 줄을 모르고
이태리제 수제양복을 입어도 멋을 모르지 않는가
샤넬 향수를 뿌려도
우리들의 사랑은 썩은 냄새만 나고
최신식 대형TV를 가지고도
3류 포르노 비디오나 보며
외롭게 죽어 가고 있다
기름이 흐르는 음식들
달콤하게 유혹하는 술 냄새로도
외로움을 달랠 수는 없으며
화려한 샹들리에가 밤을 낮 같이 밝혀도
우리들의 지식은 삭막해지고
냄새나고 썩은 이야기들만 쌓여가고 있다
우리들은 그렇게 사랑도 잃어버리고
낭만도 상실한 채
핏발 선 눈으로 밤새 컴퓨터 안을 방황하며
포르노 동영상이 뜨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죽음을 향해 달려드는 하루살이처럼
술에 취하고 향락에 취하여
내일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돌아가자
그 시절로 돌아가자
가진 것이 적을지라도
조금은 불편할지라도
소박한 사랑과 낭만이 있고
우리의 추억들이 숨쉬는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