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자아의 죄들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나를 자랑하지 않게 되었고, 우리 자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이런 과정에서 스스로 겸손하게 되었고, 공개적으로 제단으로 나아가 우리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기도했을 것이다.
좋다! 그런데 바로 이제부터 정말 조심해야 한다. 우리 자신을 의지하는 마음이 우리가 겸손하게 된 이후에 오히려 더 강력하게 침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전보다 더 좋은 토양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 우리의 죄들을 버리고 우리의 뜻을 포기하고 우리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겸손해진 다음, 오히려 우리의 자기신뢰(自己信賴)는 재빨리 우리의 깊은 곳에서 아주 달콤한 위로의 말을 속삭인다. 이런 속삭임을 들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이 속삭임이 성령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할 때에 실상은 약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깊은 곳으로 파고드는 이런 속삭임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할까?
○ 이렇게 속삭일 것이다. “너는 정말 먼 길을 달려왔다. 이제 너는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앞섰다. 너는 죄를 버렸고 스스로 겸손하게 되었다. 너는 저 무기력한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에 이제는 강한 자이다. 많은 것들을 극복했고 나쁜 친구들을 끊었고 대가를 지불했으므로 이제 너는 자신을 믿어도 된다. 너는 지금 잘 나가고 있다. 이제는 승리를 얻을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도움으로 말이다.” 나는 이런 것을 가리켜 ‘등을 살살 긁어주며 아첨하는 것’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런 것은 부드럽게 위로하고 감싸주기 때문에 우리를 아주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데, 우리의 자아는 언제 이 방법을 써야 할 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 그러나 경계하라! 이것은 자기신뢰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사실 평균적 그리스도인들이 느끼는 거의 모든 기쁨은 자아가 아첨하면서 등을 살살 긁어주는 데서 오는 기쁨이다. 자아가 당신에게 “너는 상당히 괜찮은 존재야!”라고 말하며 등을 살살 긁어줄 때에 조심하라! 당신은 지금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모르고 그냥 아무 문제가 없다고 느낄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느끼는 것은 죽기를 거부하는 자아가 당신을 위로하고 당신의 등을 살살 긁어주고 당신에게 아첨하기 때문이다.
○ 당신은 자기신뢰가 사라졌다고 믿지만 그것은 아직도 버티고 있다. 우리의 이런 모습을 볼 때 낙심할 수밖에 없지만 이런 점에서 우리는 날마다 회개하고 용서를 받아야 한다. 로렌스 형제는 말했다. “잘못을 범하면 나는 주께 곧바로 나아가 ‘주님, 제가 바로 이런 존재입니다. 주님이 저에게 용서와 도움을 베풀지 않으신다면 저는 이런 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본래 이런 존재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드린다. 그러면 주님이 나를 용서하셨고 나는 바로 거기서 새롭게 출발했다.”
○ 감사하게도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적 성장과 진보에 지극히 관심이 많으시기 때문에 우리 곁에 서서 성실함으로 우리를 가르치고 훈련하고 징계하신다. 오늘도 성령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기신뢰에 빠지지 않도록 인도하실 것이다.
출처 : A.W.토저 하나님편인가, 세상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