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로서 교직에 몸을 담고 있는 박 선생은 결혼 적령기가 되어 맞선을 보게 되었다.
맞선 상대에게 결혼 후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럼요, 화가이신데 당연히 그림을 그려야지요. 제가 붓도 사주고 물감도 사주겠습
니다.”
그렇게 해서 결혼을 했다.
하지만 결혼 후 직장에 다니랴, 가정 일 하랴 그림을 계속 그린다는 것이 쉽지가 않
았다.
거기에다가 남편 직업상 이사를 자주 다니다보니 지금까지 그려놓은 그림마저
도 망가져 가고 있었다.
박 선생은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림을 계속 그려 전시회를 여는 게 그의 평생소원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남편에게 물었다.
“그림 그리는 것 어떻게 생각해요?”
남편이 대답했다.
“그거 한 마디로 사치지 뭐!”
그 말을 들으니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짐승하고 결혼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음먹었다.
‘이제 당신과는 끝이다.’
그 후론 늘 찬밥만 주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남편을 그런 마음으로 대한 후부터 자신의 몸이 급속도로 나빠
져 꼼짝도 못하게 되고 말았다.
급기야는 눈동자까지 풀려 다 죽게 되었다.
박 선생이 바라는 것은 큰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남편으로부터 ‘내가 군인이다 보니
1년에 한 번씩 이사하게 되어 당신의 꿈을 키워주지 못하는 점 정말 미안하오.’ 이 말
한마디를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박 선생이 의사소통법을 배웠다. 어느 날 전과는 달리 배운 대로 자신의
심정을 남편에게 전했다.
“여보, 이사를 너무 다니니까 작품이 다 망가져서 내 뼈가 깨지는 것 같아요.
작품전 한 번만 하고 그만 두고 싶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지금까지 그렇게 말을 해도 ‘그림, 그거 한 마디로 사치지 뭐!’
하고 말하던 사람이 비난하지 않고 안타까운 심정을 이야기하자 남편은 흔쾌히
“언제 기회 있으면 한번 엽시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박 선생은 지금까지 세 차례의 그림 전시회를 열었고 이제는 그림에 관
해서는 원도, 한도 없어졌다.
이따금 엉뚱한 질문을 하는 한 학생이 박 선생의 강의를 듣고서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짐승과 같은 남편에게 찬밥을 주면서 선생님도 함께 찬밥을 드셨어요? 아
니면 혼자 따뜻한 밥을 드셨어요?”
강의실 안은 온통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전 굶을 때가 많았어요.”
박 선생이 나지막한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남편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내가 말하는 법을 몰랐던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