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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여, 상처 없는 척 하지 말라’


존 엘드리지는 그의 책 ‘마음의 회복’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남자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나는 상처가 없는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

당신 생각에 당신이 지금까지 아무리 즐거운 삶을 살았더라도 상처 입은 사람들로 가득한 상처 입은 세상에서 살고 있을 뿐이다.

당신 부모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완벽할 수는 없다.

어머니는 이브의 딸이고, 아버지는 아담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땅에서 살아갈 때 우리는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나는 남자가 아니기 때문에 남자의 마음 깊숙한 곳에 스며있는 상처와 그로 인한 왜곡된 인식의 틀을 다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내 주위에 있는 많은 남자들, 아버지, 형제들, 남편, 아들, 교회의 많은 남자들, 남성 목회자들을 통해 남자를 조금은 알거나 이해하고 있다.

특히 상처 입은 사실을 밝히며 상담하러 오는 남성들을 통해 그들의 내면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게 되었다.

부부상담을 받는 경우에도 대부분 남편들을 따로 상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나는 남자들이 얼마나 상처를 쉽게 받는지, 또한 그 상처를 인정하기 싫어하는지를 보면서 놀라곤 한다.

상담을 의뢰하는 쪽은 거의 대부분 아내들, 어머니들, 여자들이다.

여자들은 자신의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상대라는 것을 확인하면 곧바로 마음을 연다.

그리고 그들의 슬픔이나 아픔이나 상처를 쏟아내어 놓는다.

그러면 빠른 시간 내에 회복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남자들은 그렇지 않다. 가장 문제는 자신의 상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들은 약하고 지쳐있지만 강한 척 포장한다.

서툰 성급함으로 내면을 감추거나, 목소리 톤을 높이거나 지나치게 낮추면서 자신을 둘러싼 문제들이 다른 곳에서부터 원인이 되었다는 핑계거리를 늘어놓지만 결국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 감추어지고 숨겨진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오래도록 방치되어 있었던 결과로서 현재의 문제들이 드러나게 된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존 엘드리지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열아홉 살이 되었을 때 예수님을 만나면서 하나님이 나를 극적으로 구원해 주셨지만 그 상처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모든 상처가 반드시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내 가슴의 상처는 그대로 남아 치유되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다.”

남자들은 자신의 허허로운 마음의 빈자리와 상처를 들춰보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며 일에 매달리거나,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는 외톨이가 되거나,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어 주위의 사람을 위협하기도 한다.

존 엘드리지가 고백했듯이 자신의 상처 때문에 또 다른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살게 된 것이다.

그 상처가 만들어낸 거짓 자아가 다른 사람을 파괴하는 무기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특히 자신의 상처가 만들어낸 왜곡된 자아상에다 유교적인 가부장적 의식이 덧붙여져서 가족이나 약자를 힘들게 한다.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겉으로 성공을 거둔 남성 목회자의 경우에는 더욱 심각한 결과를 낳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수많은 연약한 소자들이 상처를 받게 되니 말이다.

나는 이메일이나 전화로 혹은 직접 대면함으로써 이러한 내용의 상담을 수없이 한다.

“목사님에게 심한 상처를 받았어요. 어떻게 목사님이 그럴 수 있지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큰소리로 엉엉 운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들이 목회자에게 거는 기대와 신뢰가 크면 클수록 상처는 심하게 남는다.

목회자라는 권위로, 아버지라는 권위로, 상사라는 권위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상처 줄 수 있는 권리가 조금도 없다.

주님은 “소자를 실족케 하는 사람은 맷돌을 매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라고 하시며 우리 모두에게 강력하게 경고하셨다.

왜냐하면 이 땅에는 자신의 상처를 그대로 걸친 채 이러저러한 권위의 가면 아래 수없는 소자들을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자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남편들, 아버지들, 목회자들, 높은 지위에 있는 권력자들.

그 모든 남자들에게 어머니 같은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마음으로 부탁하고 싶다.

제발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치유를 받으라고.

그리하여 타인의 작고 부서지기 쉬운 마음을 돌봐 주라고.

나는 남자를 성토하는 것이 아니다.

남자든 여자든 자신의 상처를 반드시 치유 받아야 한다.

그래야 이 땅에 더 이상 상처받는 아이들과 상처받는 어른들이 나오지 않을 테니까.

존 엘드리지의 책을 읽어보라.

그는 “상처받은 남자는 대체로 두 가지 현상을 보인다.

하나는 미친 듯이 행동하며 그 상처의 약점을 메우려하는 현상(폭력적인 남자)이고, 다른 하나는 위축되어 점점 소극적이 되어가는 현상(수동적인 남자)이다.

이런 두 가지 특징이 이상하게 뒤섞인 경우도 많다”고 한다.

최근에도 한 사람이 이메일을 보냈다. “목사님의 칼럼을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제 아내와의 불화 때문에 상담을 받고 싶습니다.

제 아내는 저와 사는 것이 지겹고 무섭다고 합니다. (…)

저는 열심히 직장생활을 해서 가족을 부양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물론 제가 좀 무뚝뚝하기는 합니다만 제가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자기의 문제를 드러내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다.

이미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고 있다. 아무 상처가 없는 척, 용감한 척, 훌륭한 인간인 척 가장하는 위선을 접고 하나님 앞에서 모든 가식을 벗어버리고 어린아이가 되어 서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 은밀한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시며 진정한 남자로, 태초에 지음 받은 순수하고 사랑이 많은 아담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실 것이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나는 내 주위에서 수많은 훌륭한 남성들도 만나고 있다.

그분들은 자신의 약점과 상처를 치유 받고 회복되고 극복한 남성들이다.

그분들을 만나면 부적절한 권위의식을 느낄 수 없다.

폭군적인 이미지나 위협도 전혀 느낄 수 없다.

오히려 편안함과 아버지 같은 따스함이 느껴진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대부분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상처와 왜곡된 자아 이미지를 용감하게 치유 받고 몸부림치며 회복의 길을 걸어 왔는지를 알게 된다.

그분들이 너무나 존경스럽다.

그러나 아직도 다른 사람을 위협하는 거짓 자아와 각양의 폭력으로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남자가 많다.

그래서 상처받고 두려움에 떠는 아내들과 여자들과 아이들이 많은 것이다.

제발,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치유를 받아야 한다.

적어도 존 엘드리지가 말하는 남자의 회복에 주목해 보자.

그러면 자신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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