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패권을 꿈꾸는 한나라의 유방은 초나라 항우라는 커다란 벽에 막혀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항우의 책사인 범증은 유방과 그의 휘하인 장량, 진평 같은 사람들에게는 크나큰 골칫거리였습니다.
범증 때문에 ‘홍문의 잔치’에서 목이 날아갈 뻔 했던 일, 장량의 계책으로 겨우 목숨을 구해 도망칠 수 있었던 치욕을 생각하면 유방은 잠을 이루기조차 어려운 지경이었습니다.
진평이 나서 유방에게 이간책을 쓸 것을 건의하였고 그것이 훌륭한 계책이라 생각한 유방은 즉시 막대한 양의 황금을 진평에게 주었습니다.
그 황금은 당연히 항우와 참모진의 분열을 일으키기 위한 황동비였습니다.
진평은 유방이 내린 황금으로 초나라의 장수들을 매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입을 통해 이상한 소문이 초나라 진영에 퍼져 나갔습니다.
그것은 범증과 더불어 항우 진영의 가장 중요한 장수로 유방을 괴롭혔던 종리매가 자신의 공로에 비해 터무니 없는 처우를 받고 있는데 불만을 품고 세력을 규합해 항우에게 반기를 들려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문에 불쾌해진 항우는 마침내 종리매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진평에게 또 하나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항우의 사자가 유방에게 왔습니다.
유방은 진평의 계책에 따라 진수성찬을 차리고 사자를 맞았습니다.
사자가 항우의 명을 받들어 왔다고 하자 유방은 짐짓 놀란 척 말했습니다.
“아니 그대를 보낸 것이 아부(존경하는 이란 뜻으로 여기서는 범증을 이르는 말)가 아니고 항왕이란 말인가? 여봐라.
그렇다면 이 상을 물리고 간단한 상을 내어오도록 하라.”
사자는 몹시 불쾌해져서 항우의 진영으로 돌아와 자신을 겪은 일들을 소상히 보고하였습니다.
이에 항우의 의심은 종리매에 그치지 않고 이제까지 믿고 의지했던, 그리고 가장 존경했던 범증에게까지 이르렀습니다.
“아니 저 영감이 나 모르게 유방과 내통을 하고 있었던 것이란 말이지.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군.”
그것을 모를 범증이 아니었다.
세상의 이치를 꿰뚫어 볼 줄 아는 범증은 오래 전 항우의 숙부인 항량의 초빙으로 초나라에 오면서 밤하늘의 별을 보고 초나라의 운명을 짐작하고 있었던 터였습니다.
“신은 이제 너무 늙고 병약하여 더 이상 주군을 모실 수 없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 죽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라는 말과 함께 낙향하던 범증은 화병으로 생긴 등창이 터져 죽음을 맞았습니다.
진평의 반간계는 적중하여 유방의 근심을 없애고 마침내 대역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천하의 패권은 이처럼 항우의 의심병으로 그를 버리고 유방을 향해 방향을 틀고 말았습니다.
구성원 상호간의 신뢰는 조직에 있어 언제나 강조되는 것입니다.
서로 믿는 바가 없으면 그 조직은 필경 몰락의 길을 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리더의 의심병은 조직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충성을 다하고 자신을 위해 온갖 지혜와 정성을 다한 범증을 엉뚱한 일로 의심하여 그 마음을 떠나게 하고 마침내 실패를 자초한 항우는 그저 단순히 역사 속의 인물일 수만은 없습니다.
오늘날의 조직안에서도 옛날 초나라 진영안에서 벌어졌던 그 불행했던 의심병은 고개를 숙일 줄 모르고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의심이 많은 리더는 결국 그 화를 자신이 먼저 입게 됩니다.
의심은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고 잦은 물갈이로 조직의 안정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병입니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즐겨썼다는 “의심되는 사람은 쓰지 않고,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
(疑人莫用 用人勿疑 ? 명심보감 11편 성심편에서)는 말을 항상 새겨야 할 잠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