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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귀기의 기본원칙 7가지


영국에서 만든 한국 안내서에 ‘한국에서 기업을 성공시키려면
개인적인 인맥을 파고 들라’고 했을 정도로

우리네 풍토에서는 ‘사람과 사람의 인연’을
어떻게 맺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공여부가 판가름 나게 된다.

실제로, 우리의 주위를 잘 살펴보고 분석해 보면
내로라하는 사람치고 독불장군처럼 ‘나 홀로’ 성장한 사람은 거의 없다.

물론,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을 의도적으로 사귀고

인연을 계산적으로 관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간교하고 서글프고 무서운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술수적·책략적·목적성 인간관계는
혐오스런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인생살이에서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라면,

그 인연을 더욱 돈독히 하고 잘 살려나가는 그 자체를
결코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듯 사람을 잘 사귀고 인연을 잘 살려나가기 위한
기법과 원칙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무궁무진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필자가 인테크 이론에 입각하여 개발한

사람 사귀기의 기본원칙 7가지를 소개한다.
유념하고 실천하여 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1) 일부러 생각을 바꿔라.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일부러’,
‘의도적으로’라는 의미가 포함된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도
당신의 생각이 저절로 바뀌지는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고착되고 굳어진다.
만약 남편과의 사이가 좋지 않다고 치자.

이런 경우 세월이 지나면 저절로 사이가 좋아지고
사랑이 두터워질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이다.
인간의 심리는 증폭되고 에스컬레이트되는 습성이 있어서

한번 밉게 보고 싫어지게 되면
시간이 갈수록 더욱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친구와의 사이도
이웃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뭔가 갈등의 앙금이 있고, 인간관계가 친밀하지 못하다면
세월의 흐름에 방치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

그 첫 단계이자 핵심이 생각을
‘일부러’ 바꾸는 것이다.

만약 이웃집과 아옹다옹하는
불편한 사이라고 하자.

그러나 눈 흘기며 살게 아니라 친해지고 싶다면
당신 자신이 먼저 생각을 확 바꾸는 것이다.

“저 사람과 가깝게 한 번 지내보자.
그러면 저 사람도 뭔가 나를 다르게 대할 것이다.

내 입장만 내세울 게 아니다.
저 사람이 먼저 나에게

한풀 꺾여 들어오기를 기다릴 게 아니라
까짓 것 내가 한 번 죽어주자”

이렇게 일부러 마음을 싹 바꾸고 접근해 보라.
곧 신천지가 전개될 것이다.

인생을 바꾸고 싶으면 먼저 생각을 바꿔라.
인간관계를 바꾸고 싶으면 일부러 생각을 먼저 바꿔라.

“사고방식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는 것,
이것이 금세기 인류최대의 발견이다”

  • 하바드 대학의 심리학교수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의 충고가 아니더라도

생각이 바뀌면 세상이 바뀌고
인생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2) 이왕이면 화끈하게

알고 지낸다고 다 아는 게 아니다.
알기 때문에 차라리 모르는 것만 도 못한 경우도 많다.

친구들끼리 모여서 그 자리에 없는 누군가(K씨라고 하자)를 대상으로
그의 신상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그 K씨를 전혀 모르는 사람은
K씨를 칭찬하지도 않지만 험담하지도 않는다. 모르니까.

그러나 K씨를 잘 아는 사람은 두 패로 나뉠 것이다.
칭찬하는 부류와 험담하는 부류로.

만약 K씨에 관한 험담이 이야기의 주류라면
이럴 때 K씨에 대하여 잘 알면 잘 알수록

험담의 강도는 강해진다.
그의 약점까지도 잘 아니까.

이처럼 사람을 많이 알거나
잘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잘 안다는 게 나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사귀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왕 사귈 바에는 화끈하게 사귀어야 한다.
그래야 아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사람을 사귐에 있어서는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부부관계든 친구관계든 이웃관계든,
서로 만난 인연을 소중이 여기고

이왕이면 까짓 것 화끈하게 사귀는 거다.
그것이 인간관계의 요령이다.

(3) 3한 4온 법칙에 유념하라.

처세에 관한 동서의 고전들은 거의 모두가
‘덕 있는 사람이 되라’, ‘용서하라’, ‘참아라’, ‘베풀어라’ 등을 말한다.

심지어 ‘원수를 사랑하라’ 하고,
‘왼쪽을 맞으면 오른쪽도 내밀라’고 까지 한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현들의 말씀일 뿐 현실은 그렇질 못하다.

왼쪽을 맞고 오른쪽을 내밀면 그 쪽 또한 얻어 터질 뿐이다.
인간관계에서 베푸는 것은 중요하다.

덕이 있는 사람이어야 주위에 사람이 모이고
참는 자에게 복이 돌아오는 것도 맞다.

원수까지는 몰라도 주위의 동료 정도는 사랑할 수 있어야
인간관계에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일방적일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계속 참기만 해보라.

당신을 성인군자로 높이 떠 받들어주는 게 아니라
바보천치로 여길게 뻔하다.

그래서 나는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3한 4온법칙’을 주장한다.
성현들께서는 혀를 차실지 모르지만.

즉, 사람은 따뜻한 면이 있는 반면에
차가운 면도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온화한 면이 있는 반면에 냉랭한 측면이 있어야 하며,
부드러운 점이 있는 반면에 옹골차게 다부진 면 또한 있어야 한다.

둥근 면이 있으면 서슬 퍼런 날카로움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다.

그래야 오히려 제대로 평가 받는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차가움으로만 똘똘 뭉친 사람도 없으며 따뜻하기만 한 사람도 없다.
문제는 더 차갑냐, 덜 따뜻하냐의 차이이다.

여기서 한가지 지적해둘 것은 3한 4온 –
즉 따스함(온)이 차가움(한)보다는 좀 더 강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우리나라 겨울 날씨가 3한 4온이 아니라
4한 3온이었다면 그 분위기가 훨씬 더 냉랭하고 썰렁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차가운 면이 더 많은 사람(4한 3온)과
따뜻한 면이 더 많은 사람(3한 4온)과의 차이는 엄청나다.

3한 4온 – 인간관계에 있어서
유념해야 할 하나의 법칙이다.

(4) 사람 사귀기를 즐겨라.

인간관계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다.
그 관계의 깊이는 만남의 횟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인간관계의 질과 양과 깊이와 폭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얼마나 자주 많이 만났느냐에 비례한다.

인간관계에 성공하려면
만나는 사람의 절대 수를 늘려야 하고,

만남의 횟수 또한 늘려야 한다.
이건 상식이지만 그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하려면 보통이상의 노력이 필요하고 시간이 소요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금전적 지출 또한 만만치 않게 된다.

인간관계에 탁월한 S씨의 경험담에 의하면
50명 정도만 깊이 사귀어도 공휴일에 자기 시간이 없을 정도가 된다고 한다.

함께 운동도 해야 하고
술도 같이 마셔야 하고, 식사도 함께 해야 하며,

결혼이다 회갑이다, 상을 당했다 등등
‘꺼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적 풍토에서 사람을 잘 사귀려면
무엇보다도 사람 사귀기를 즐기는 성격을 가져야 한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던 케네디 2세가
(그는 그 후 비행기사고로 사망하였음)

“사람 만나기를 즐겨 하지 않으면 대성할 수 없다”고 한 것을 보면
인간관계의 법칙은 동서양이 마찬가지인가 보다.

만약 사람 사귀기를 즐겨 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라면
일부러라도 사람 사귀기를 즐기려고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절대로 인간관계에 성공할 수 없다.

(5) 오해하고 있지 않나 반성해보라.

‘동방의 등불 코리아’로 잘 알려진
인도의 시인 타골에 얽힌 에피소드로 이런 것이 있다.

어느 날, 집안 일을 봐주는 하인의 출근이 늦어지자
타골은 은근히 화가 나기 시작하였다.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그가 나타나지 않자
타골은 “이 녀석 나타나기만 하면 혼내 주리라” 작정 하였으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참지 못할 분노로 변해 버렸다.

오후 늦게야 모습을 드러낸 하인에게 타골은
다짜고짜 자기의 집에서 나갈 것을 명령하였다.

그러자,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나가던 하인은
뒤 돌아서서 마지막 인사를 올리며

“주인님, 정말 죄송합니다. 어젯밤 제 딸년이 죽어서……” 라며
말을 잇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 충격적인 사건 이후 타골은
어떠한 경우라도 상대방의 사정을 알아보지 않고는

남을 탓하거나
독단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이의 말과 행동이 당신의 비위에 거슬려
속 앓이를 해야 할 경우라면

한번쯤 ‘내가 지금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저럴만한 사정이 있어서 저럴 거라’고 생각을 전환해 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엄청난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걸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지금 너무 옹졸하고 편협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면 세상사를 대하는

당신의 태도가 훨씬 여유로워지고
남을 보는 당신의 시선이 부드러워짐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남을 본다는 것은 일면만의 관찰이요
단편적인 평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상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편견과 오해로 남을 평가하는 수가 흔하다.

따라서 인간관계에 성공하려면 당신의 타인에 대한 평가가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반성이 늘 앞서야 한다.

(6) 육체적 접촉을 강화하라.

인간관계의 극치는 사랑이 있는 sex이다.
육체적 접촉이야말로 친밀한 인간관계의 전형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육체적 접촉’을 강조하는 것이
늘상 sex만 하며 살라는 의미는 아니다.

부부가 아닌 사람들이 육체적 접촉을 강화했다가는
무슨 낭패를 당할지 모른다.

여기에서의 ‘육체적 접촉’이란 함께 어울리는 것을 의미한다.
즉, 스킨십(Skinship)이다.

인간관계가 돈독해지려면
함께 어울리는 것만큼 좋은 게 없는 것이다.

‘사회를 이루는 근본요소는
사람들의 동류의식(同類意識)’이라는 말이 있다.

즉, 사회는 그 구조상 어떤 범주로 묶이거나
분리되면서 생활하게 되는데 그 근본은 동류의식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공통된 생각과
연관을 가지고 집단을 형성하며,

동일집단 내의 사람들끼리는
서로 융합하기가 쉬워 인간관계의 형성이 용이하나,

집단이 다를 때는 서로 반목하므로
인간관계 형성에 장애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원활히 유지하려면,
상대방이 속해 있는 집단의 성격에 당신을 접근시킴으로써

상대로 하여금 당신이 같은 부류(部類)의 사람임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당신이 성장해온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상대방과 같을 때는 별다른 저항 없이 상대에게 접근할 수 있겠으나,

그렇지 못할 경우 상대방에게 나를 접근시킨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문제다.
그렇다고 해서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동류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방법은 같이 어울리고 함께 행동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상대방의 동류의식을 자극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상대방에게 파고들어 원활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싶거든
동류의식을 갖게 하라.

그리고 동류의식을 갖게 하고 싶거든
상대방과 함께 행동하는 노력을 주저해서는 안된다.

(7) 칠칠치 못한 사람까지 포용하라.

사람들은 끼리끼리 어울려 살며
‘그들만의 세상’을 형성한다.

상류층은 상류층대로의 세상이 있으며
서민들은 또 그들 나름의 세상이 있다.

상류층들이 생각할 때 서민들의 삶이 구차하고 피곤하고
조금은 너저분하게 생각될지 모르나 천만의 말씀이다.

서민들에게는 서민만의 체취와 분위기와 그리고 그들만의 행복이 있다.
상류층이 전혀 맛볼 수 없는 ―.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타인을 자기의 잣대로 평가하곤 한다.
그래서 상대가 변변치 못하다고 생각되면

업신여기고 깔보고 홀대하고 차별한다.
이처럼 멍청한 일이 없을 것이다.

사람을 사귐에 있어서 마음속에 확실히 담아둘 기준의 하나는
어떤 경우라도 사람을 깔보거나 차별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이 뛰어나다는 것이 무엇을 기준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칠칠치 못하다는 것 또한 어떤 기준에 의한 것인가.
일류대학을 나오면 뛰어난 건가.

IQ가 높으면 뛰어난 건가.
EQ가 높으면 뛰어난 건가.

적어도 인간관계에서는 일류대학도,
IQ도, EQ도 별다른 의미가 있지 못한다.

일류대학 출신이 부부관계가 더 좋다는 법도 없으며
사법고시 합격자가 동료와의 인간관계가 더 좋다는 보고도 없다.

오히려, 수년 전
서울의 대기업 사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을 보면

머리 좋기로 소문난 모 일류대학 출신자가
회사 내에서의 인간관계에 문제점이 많다는 분석이 나왔었다.

인간관계는 그 누구든 포용할 수 있는
넉넉함을 가지고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누구든지 포용할 수 있으려면
소위, 칠칠치 못한 사람까지도

한 인격으로서 존중할 줄 알아야만 한다.
그들만의 세상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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