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좇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1-23)
요한이 성령을 통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를 봤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천국을 봤다.
그리고 멸망당할 적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들의 정체나 결말도 봤다.
그리고는 기이하게 여겼다고 했다(계17:6,8) 이 말은 ‘거참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라는 뜻이다.
그가 생각하던 적그리스도가 아니고 음녀가 아니라는 뜻이다.
전혀 뜻밖의 존재를 보고 어리벙벙해 한다.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가보니 마땅히 올 사람은 안 오고, 안 와야 될 사람이 와있더라’고 말을 한 적도 있다.
그곳에서 의외의 일이 벌어진다는 뜻이다.
그만큼 하나님의 의의 기준과 인간의 기준이 다르다는 말이다.
마7장은 ‘성령을 구하라 그리고 좁은 길로 가라, 그 다음 좋은 나무와 반석위에 집을 짓는 자’로 연결이 된다.
바로 그리스도의 의가 자신에게 이루지는 과정이다.
그런데 ‘주여 주여’ 하는 자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좇아내고 권능을 행한 사람을 천국에 입장금지를 시키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나 가만히 생각하면 ‘주여 주여’ 하고 부르는 사람은 아직 그리스도와 하나가 안 된 것이다.
그리스도가 아직 2인칭이 되어 있다.
자기화가 아직 안 된 것이다.
그리고 선지자 노릇하고 주의 이름을 빌려 귀신을 좇아내고 권능을 행하는 일은 아직 자신의 일이 아니다.
노릇만 했을 뿐이다.
마25장의 양과 염소의 비교에서 양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는데 그것이 주님은 당신의 일이라고 하신다.
근데 염소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주의 일을 하려고 벼르기만 할 뿐 정작 행함이 없다.
노릇만 할 작정이다.
달란트(하나님의 가치)가 자기의 것이 안 되었다.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값(달란트)이 된다.
이것이 바로 영광이다. 그 다음부터는 거기에 걸 맞는 삶이 나온다.
이것이 바로 달란트 장사다.
따라서 ‘주여 주여’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분은 우리 안에서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한 영과 한 몸이 되었다.
이런 사람은 능동적으로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서고, 거기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며,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들을 섬긴다.
삶의 열매로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좋은 나무가 된 증거이다.
그리고 주의 일을 하기 위해 노릇을 할 필요가 없다. 주의 사역이 나의 일이고 나의 일이 주의 일이다.
의무감으로 노력할 필요가 없다.
이심전심이다.
만약 율법의 의를 스스로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신자 노릇을 한다든가 주의 이름을 빌려서 주의 일꾼노릇을 한다면 자신을 우리 범죄함을 위해 십자가에 내 주시고 우리의 의를 위해 살아나시고 지금도 살아계시며 성령을 통해 하나가 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거부한 불법이다.
잘못해서 불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생각과 방법과 맞지 않으므로 불법이다.
따라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입 맞추고 성령 안에서 그 분을 기준을 삼아 그 분이 거하실 집으로 지어져 가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의이며 천국의 패스포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