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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돼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도로 죽일까 궁리하니, 이는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눅 22: 2)

오늘날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너무나 할 일이 많아 바쁘기 때문에 믿음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어렵다고 합니다.

성경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려 해도 온갖 쾌락과 유혹이 우리들을 놓아두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나라의 가치는, 보이는 물질의 가치 앞에 너무 이상적, 또는 허무맹랑하거나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도 십자가에 못박히는 세상에서 그보다 못한 우리가 신앙을 지킨다는 것은 여러 모로 어려운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를 무슨 방도로 죽일까(2절)” 하는 무리들이 있었고, 예수님의 제자인 가룟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 그들에게 예수님을 넘겨주고 돈을 받기로 약속했다고 전합니다(3∼5절).

오늘날에도 “예수를 무슨 방도로 죽일까” 하는 무리들은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예수님의 뜻을, 예수님이 선포하는 하나님나라를 방해하는 사탄의 세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의 제자를 자처하는 많은 이들에게 사탄이 들어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도 예수님을 죽이는 데는 돈이 가장 유용한 수단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예배드리고 기도할 시간도 없는 신자들, 하나님나라의 소망보다는 세상의 성공을 기뻐하는 사람들은, “예수를 무슨 방도로 죽일까” 노심초사하는 사탄의 세력의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돈과 예수님을 바꾸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렵지 않게 물질에 대한 욕심이 내 안의 예수님을 죽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뜻이, 그분의 사랑이 돈 때문에 팔려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 옛날 소크라테스는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철학자이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배부른 돼지의 인생을 살았기에 소크라테스가 위대했던 것이지만,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배고픈 돼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믿음도 잃어버리고 세상에서의 성공도 멀기만 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채워지지 않는 물질의 욕심으로 신앙을 버리거나, 도리를 버리거나, 사람을 버리기도 하지만, 돼지가 되어서라도 얻고 싶었던 것은, 정작 신앙 안에, 욕심을 채우기 위해 버렸던 사소한(?) 것들 안에 있는 것을 왜 모르는지 안타깝습니다.

하나님, 물질을 얻기 위해 주님을 버리지 않게 하소서.

행복이 오직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을 깨닫게 하소서.

오늘 하루도 믿음을 지켜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날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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